지난 22일 한강 하구에 있는 김포 전류리 포구 고깃배에서 조유미 기자가 그물에 걸린 뱀장어를 골라내고 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자연산 뱀장어의 힘은 대단했다. “어이쿠, 엄마야.” 잡았다 싶으면 미끌 또 미끌. 뱃머리로 끌어올린 뱀장어를 대야에 옮기려다 번번이 실패했다. 굵직한 몸을 꽈배기처럼 비비 꼬아대며 강력하게 저항한다. 그러나 귀한 녀석들을 놓칠 순 없다. 1㎏짜리 한 마리가 꿈틀거리더니 내 턱을 치며 튀어 올랐다. 난 또 엄마를 찾았다. “엄마야!” 지켜보던 선장님이 말했다. “거, 그래도 덥석덥석 잘은 잡네. 안 징그러워요?”

한강에도 어부가 있다. 그물 쳐서 고기 잡는, 어촌계에 소속된 ‘진짜 어부’다. 한강이라고 하면 ‘뚝섬·여의도 한강공원’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은 총연장 494.44㎞로 한반도에서 넷째로 긴 강. 도시인에겐 산책로와 휴식의 강이지만 어부들에겐 삶의 터전이다. 이맘때면 철을 맞은 새우와 참게, 뱀장어 조업으로 어부들 손길이 바빠진다.

[아무튼주말 -한강어부 체험 영상 -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김포 전류리 포구는 한강 하구에 있는 유일한 포구다. 서해로 나가는 마지막 길목이자 한국의 최북단·최전방 어장. 북한 개풍군과 마주 보는 군사 지역으로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구역 안에 있어 허가받은 어민만 조업할 수 있다. 군의 허가를 받아 지난 22일 ‘한강 어부’의 하루를 체험했다.

김포 전류리 포구 인근에서 조업하는 고깃배 모습. 전류리 포구는 서해로 나가는 마지막 길목이자 한국의 최북단·최전방 어장.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40년차 어부 장성환(64)씨(왼쪽)가 '사랑호'를 몰고 있다. 장씨는 전날 야간 조업을 마치고 배 위에 마련된 좁은 공간에서 잠을 잤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매년 이맘때는 참게와 함께 ‘한강 새우’라 불리는 손가락 두세 마디 길이의 중하 대목. 이날은 비가 내려 새우 조업이 취소됐다. 대신 한강 뱀장어를 잡기로.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나부끼는 붉은 깃발의 의미

오전 7시 30분, 전류리 포구에서 만난 28년 차 어부 조선녀(60)씨가 빗물로 불어난 물살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새우 대목인데 잊을만하면 비가 오네. 이러면 새우가 안 나와요.” 그는 ‘사랑호 1·2’ 두 척의 부선장이자 전류리 포구 어촌계 어부 24명 중 유일한 여성.

매년 이맘때 한강에서는 참게와 함께 ‘한강 새우’라는 손가락 두세 마디 길이의 중하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특히 새우잡이 배는 한번 나가면 4~5시간 조업해 새우를 삽으로 퍼낼 정도로 쌓아 돌아온단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새우가 그물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수온과 염도 등이 달라져 새우의 활동량이 줄기 때문이다. 당초 이날 새우잡이를 할 예정이었지만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진 비로 새우 조업은 취소됐다.

하지만 한강의 어종은 많고 많았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데 조씨가 “목표는 한강 뱀장어”라고 했다. 장어? 군침이 싹 도네. 전류리 포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하루 두 번 교차하는 기수역으로 생물 다양성이 높다. 특히 숭어와 뱀장어는 사철 내내 잡힌다. 그중에서도 여름부터 초가을은 뱀장어 활동이 왕성해 어획량이 늘어나는 시기. “이 무렵 가장 힘이 좋다”고 한다.

조씨를 따라 1.1t급 작은 배에 올랐다. 이 배를 타고 주머니 모양 어망(漁網)을 끄는 근처의 큰 배(7.9t급)로 옮겨 탄다. “어라, 멀리 안 나가네요.” 내가 말했다. 큰 배는 육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었다. 북한과 인접한 수역이기 때문에 어로 한계선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한계선 가까이 가는 경우도 드물다. 강 한가운데 정박된 배들의 선단에는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군부대에 ‘우리 측 고깃배’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시였다.

◇여기 뱀장어 없는 것 같은데요

“여기 아무래도 물고기 없는 것 같은데요.”

배 바닥의 활어 수조를 뜰채로 휘저으며 내가 말했다. 약간 맹해 보였을 것이다. 전날 밤 야간 조업한 뱀장어와 숭어를 보관한 어창(魚艙)이라는데, 아무리 휘저어도 빈 뜰채만 올라왔다. 어창의 물고기는 싱싱할 때 드럼통에 담아 육지 수조로 옮겨야 한다. 조씨가 “물고기가 빠져나가기 딱 좋게 채를 휘젓고 있다”며 “앞쪽으로 고기를 몰아낸 다음 좌측으로 빠르게 휘저어야 잡힌다”고 했다.

조유미 기자가 배 안의 어창을 뜰채로 휘젓고 있다. 아무리 휘저어도 뱀장어 꼬랑지조차 걸리지 않았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결국 도움을 받아 건진 두툼한 장어들. 전날 밤 야간 조업으로 잡힌 녀석들이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눈이 노란 참숭어는 몸길이가 50cm는 족히 넘어 보였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연이어 실패해 실망감에 빠질 무렵 조씨가 등 뒤로 뜰채를 함께 잡아 줬다. 그제야 물고기가 올라왔다. 퍼덕이는 숭어는 성인 허벅지 굵기만 했다. 눈이 노란 참숭어였다. 몸길이가 50㎝는 넘어 보였다. 어휴, 무거워. 몇 번을 놓치고 쩔쩔매는데 40년 차 어부 장성환(64)씨가 “이 정도는 큰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사랑호 선장이자 조씨의 남편. 장씨는 전날 야간 조업을 마치고 배 위에 마련한 좁은 공간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또다시 조업에 나섰다. 아버지에 이어 2대째 한강에서 어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밤사이 비가 오면 그물을 치기 전 할 일이 늘어난다. 상류에서 떠내려 와 그물에 걸린 나뭇가지나 수초 등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이어 장씨가 권양기(그물 등을 올리거나 내리는 기계)를 조작해 조류가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그물을 내리기 시작했다. 수심은 5~10m 사이. 장어잡이는 입구가 넓으면서 갈수록 좁아져 닫히는 구조의 그물(안강망)로 한다. 그물은 물살을 받으면 삼각형 깔때기를 수평으로 눕힌 모양으로 펼쳐진다. 물살을 타고 가던 뱀장어 등은 입구로 들어와 옴짝달싹 못 하고 갇힌다.

얻어 걸린 참게 두 마리. 알이 가득 차 고소함이 일품이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조유미 기자가 참숭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그물을 치고 3시간 정도 기다린다. “김씨, 장어탕 먹어!” 조씨가 새참으로 가져온 장어탕을 가스 버너에 올려 끓이기 시작하자 장씨가 외쳤다. 근처에서 조업하던 45년 차 어부 김영식(69)씨가 “뭐여, 장어탕?”이라며 냉큼 배를 끌고 와 옮겨 탔다. “1㎏당 16만~17만원씩 하는 귀한 것”이란다. 나도 사이에 끼여 한 점(사실 두 점) 먹었다. 비린내도 없이 입에서 녹았다. 이래서 자연산, 자연산 하는 건가. 먹고 힘내서 열심히 잡으라는 의미렷다.

믹스 커피 마시며 잠시 담소. 조씨는 “뱃일을 도와달라”는 남편 말에 배를 타기 시작했다. 일부 뱃사람 사이에는 아직도 “여자가 배를 타면 고기가 안 잡힌다”는 옛말이 있지만, 남편은 연연하지 않았다고. 통상 조업은 7~8일에 한 번 나가지만 그물을 내리면 새우와 참게가 올라오는 9·10월에는 매일 배를 탄다. 배 위에서 살다시피하는 남편 끼니를 챙겨 이른 새벽 배를 타고, 점심 무렵에는 직접 운영하는 포구 근처 횟집으로 싱싱한 활어를 옮겨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그에게 “고되지 않으냐” 묻자 선녀처럼 빙그레 웃기만.

보자, 여기 어디 뱀장어가 있나~.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배 위로 온갖 물고기가 와르르 쏟아졌다. 잉어와 농어, 눈과 눈 사이 ‘임금 왕(王)’ 무늬가 새겨져 조선시대 수라상에 올랐다는 웅어도 간혹 보였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이날 잡은 장어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용수철 같은 힘의 상징

장씨가 양망기(그물을 걷어 올리는 기계)를 조작해 그물을 올렸다. 어망이 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듯하더니 배 위로 온갖 물고기가 와르르 쏟아졌다. 잉어와 농어, 눈과 눈 사이 ‘임금 왕(王)’ 무늬가 새겨져 조선 시대 수라상에 올랐다는 웅어도 간혹 보였다. 장씨가 “비가 오면 물이 섞여서 그러는지 더 다양한 고기가 잡힌다”고 했다.

“앗, 뱀장어다!” 펄떡이는 뱀장어가 하나, 둘, 셋…. 열다섯 마리는 넘어 보였다. 뒤엉킨 수초와 진흙, 부유물 속에서 장어만 골라 대야로 옮겨야 한다. 혹여 놓칠까 장갑 낀 손으로 재빠르게 잡았지만 용수철처럼 튕겨 나와 바닥을 치며 꿈틀댄다. 피부 아래 단단한 근육의 힘이 그대로 전해졌다. 끈끈한 점액질을 분비해 더 미끄러진다. 갈매기 떼가 “끼룩”대며 귀신같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물고기를 노리는 것일 터.

당일 잡은 고기는 싱싱할 때 육지 수조로 옮긴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사랑호 조선녀(60) 부선장과 함께 드럼통 속 장어 수조로 옮기기.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기껏 잡은 물고기를 빼앗길 순 없어 손길이 바빠지는데, 장씨가 “장어 빼고 다 놓아줄 것”이라고 한다. “잉어도요?” 내가 물었다. 크기가 방어만 했다. 장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낑낑 들어 물속으로 첨벙. 새끼 황복과 동자개(빠가사리) 등도 골라 첨벙, 첨벙. 쑥쑥 커서 나중에 엄마 데리고 오렴(?).

오후 1시쯤, 조업을 마치고 뱀장어를 드럼통에 담아 육지로 옮겼다. 꽤나 묵직해 팔이 저렸지만 그 나름대로 만선이라 뿌듯. 붉은 깃발 나부끼는 최전방 포구에서 한강은 어부들의 땀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앞으로 뱀장어를 먹을 때마다 장어의 출신지가 궁금할 것 같다. “이모, 이 장어… 한강에서 잡은 거예요?”

조유미 기자가 고깃배 위에서 북한 개풍군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