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관광지에 있는 편의점 CU 매장에는 지난 7월부터 김밥을 사러 오는 외국인들이 부쩍 늘었다. 7~8월 CU에서 해외 결제 수단으로 김밥을 구매한 건수는 작년 같은 기간의 3배가 됐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6월 20일 공개된 이후 나타난 현상으로, 케데헌 주인공이 좋아한 김밥을 맛보려는 외국인들이다.
농심이 넷플릭스와 협업해 지난달 29일 농심몰에서 출시한 ‘케데헌 한정판 신라면’ 1000세트는 판매가 시작된 지 1분 40초 만에 완판됐다. 신라면컵 디자인에 케데헌 주인공인 루미·미라·조이 캐릭터를 입힌 것으로 캐릭터당 2개씩 총 6개가 들어 있는 세트다. 해외에서도 이 한정판을 “사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케데헌 흥행이 불러올 경제적 파급 효과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한 서울 명소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기업들은 케데헌을 활용한 글로벌 마케팅 방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케데헌의 경제 효과가 수조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외국인 관광객 23.1% 급증
7월 한 달간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36만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3.1% 늘었다. 서울시는 ‘케데헌 열풍’의 결과로 해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6월 낸 보고서에서 올해 외국인 관광객이 역대 최고치인 2009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노시연 연구위원은 “케데헌의 인기를 따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관광객 수는 이를 상회할 수 있다”며 “올해·내년에 걸쳐 관광객 유입 등 낙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케데헌 공개 직후 ‘한국’ 검색량은 거의 2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작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직후 ‘한국’ 검색량보다도 많다. ‘Korea Food’ 검색량 역시 케데헌 이후 75% 증가하는 등 사상 최고 수준이다. 글로벌 예약 플랫폼 클룩에 따르면 6월 20일부터 8월 10일까지 예약 데이터를 직전 두 달과 비교했을 때 세신 상품은 11%, K팝 댄스 클래스는 40%, K팝 아이돌 스타일링 체험 상품은 200% 늘었다.
7~8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외국 관람객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9% 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뮷즈인 ‘까치호랑이 배지’는 7월 한 달간 3만8140개 팔렸다. 5월엔 80개, 6월엔 160개가 팔렸다. 케데헌에 나오는 호랑이와 까치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판매량이 갑자기 늘어난 것이다. 외국인들도 구매 대열에 대거 합류했다.
가을 축제를 앞둔 지자체도 ‘케데헌 특수’를 노리고 있다. 26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상주세계모자페스티벌은 ‘갓’을 앞세웠고, 김천은 다음달 25~26일 열리는 ‘김밥축제’ 장소를 넓히고 셔틀 운행 규모를 늘리는 등 확대 개편했다. 구미라면축제는 11월 7~9일 열린다.
1세대 아이돌 장관 시대
정부의 정책적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 교류 위원회’가 신설되고, 1세대 아이돌 격인 박진영 JYP 대표가 공동위원장에 임명됐다. K컬처를 국가 성장 동력, 미래 먹거리로 육성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됐다. 정부는 ‘K관광 혁신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켜 케데헌 열풍을 비롯한 K컬처 확산을 관광 상품으로 연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때 출입기자들에게 나눠준 비표에는 케데헌 속 캐릭터 ‘더피’가 그려져 있었다.
K콘텐츠 지원을 위한 입법도 활발하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설화·전통놀이·한복 등 전통문화를 결합한 케이팝, 웹툰,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을 ‘전통융합콘텐츠’로 규정하고 정부의 지원 근거를 명시한 이른바 ‘케데헌법(콘텐츠산업 진흥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7월 ‘K컬처 복합거점지구’ 지정 근거를 만든 이른바 ‘K컬처 3법’을 냈다. 케데헌 열풍 같은 현상이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이다.
딜로이트컨설팅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국내 콘텐츠 투자는 2016~2020년 약 5조6000억원의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와 1만6000개 일자리 창출 효과를 유발했다. 케데헌과 ‘오징어게임’ 등 메가 히트작이 이어지면서 파생 효과는 더 확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2021년 기준 124억5000만달러로, 통계 집계 이후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변진호 이화여대 교수(경영학)는 “한국이 가진 융통성·개방성을 살리면 케데헌 열풍 같은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며 “규제를 줄여 K컬처를 기반으로 글로벌 감성을 실험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