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때문에 살 수 있었다!’ BTS의 글로벌 팬덤 아미들은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 이유는 비주류로서 죽고 싶을 만큼 차별받던 이들이 대부분 BTS의 팬이 됐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메시지를 담은 BTS의 노래는 그저 음악의 차원을 넘어 그들의 삶을 위로하고 구원하는 힘을 발휘했다.
K팝에 드리워진 구원의 이미지는 그래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무당의 후예들을 등장시키게 된 계기가 됐다. K팝이 춤과 노래로 대중을 구원하듯이, 무당들 역시 춤과 노래가 섞인 굿으로 마음이 아픈 이들을 치유한다. 무당은 서구의 구마사제처럼 귀신(악령)과 싸우는 존재가 아니다. 대신 원귀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한 상 잘 차려 먹인 후 노잣돈을 얹어 가야 할 곳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파이터가 아니라 카운슬러에 가깝고, 킬러가 아닌 힐러다. 그래서 작품 속 무당의 리더에 해당하는 루미는 저승사자 모습의 적수 진우와 싸우지 않는다. 대신 그 영혼을 구원해줄 뿐.
케데헌이 보여주듯, 무당이 가진 힐러이자 카운슬러의 면모는 최근 들어 젊은 세대들이 무속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다. 대학로나 해운대, 전주 한옥마을처럼 젊은 세대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점집’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삼삼오오 점을 보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K컬처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요즘에는 아예 ‘외국어 가능’ 간판을 단 점집들도 적지 않다. 젊은 세대에게 무속은 무겁지 않다. 기분 전환을 위해 가볍게 찾고 때론 고민 상담에 가까운 카운슬링을 받는다. 무속인들도 마찬가지다. 위압적인 모습이 아니라 상담하듯 친절하게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조언을 해준다.
이러한 현실적인 변화 때문일까. 최근 K콘텐츠에서 무당은 훨씬 발랄해졌다. 1970~1980년대만 해도 ‘미신 타파’의 분위기 속에서 무당들은 ‘저주받은 존재’로 그려지곤 했지만, 최근에는 롱코트 휘날리며 귀신과 맞서는 수퍼히어로(파묘)이자, 저주받은 연인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인물(견우와 선녀)로도 그려진다. ‘신들린 연애’ 같은 연애 프로그램에서는 무속인들을 우리와 똑같이 ‘사랑하고 사랑받고픈 존재’로 다루기도 한다. ‘전설의 고향’에 단골로 출연하던 오싹한 저승사자의 이미지가 ‘도깨비’의 세련된 모습으로 재해석되듯, 무당의 이미지도 확연히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무속에 대한 무거운 시선은 남아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주술 의혹을 소재로 한 정치 풍자극으로 조악한 연출에도 무려 78만 관객을 모았던 ‘신명’ 같은 작품이 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다르다.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무속은 카운슬러 역할을 대리해주는 존재가 됐다. 종잡을 수 없는 미래의 답답함을 무속은 훨씬 직관적인 답변과 상담으로 다독여 준다.
무속이 때로는 무겁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엇나간 욕망 때문이 아닐까. 주술적인 힘까지 동원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욕망. 그런 점에서 일상 카운슬러로 발랄해진 무속의 귀환은 반가운 점도 있다. 작지만 숨통 하나를 틔워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K팝 팬들이 노래 한 곡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듯이 누군가에게는 구원일 수도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