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다’를 뜻하는 영어 단어 ‘give’와 독일어 ‘geben’은 어원이 같다. 명사형은 ‘gift’와 ‘Gift’로 모두 ‘선물’이란 뜻이다. 영어와 달리 독일어에는 ‘선물’ 말고도 ‘독(毒)’이라는 뜻이 있다. 즉 ‘선물’일 수도 있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림은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선물로 활용하기에 좋은 수단이다. 가끔은 그것이 독이 되기도 한다. 유명 화가의 비싼 그림이 ‘선물’로 활용되다 보니 대작(代作)과 위작(僞作) 양산이 어제오늘이 아니다.
중국 최고의 화가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사람이 동기창(董其昌·1556~1636)이다. 예부상서까지 지낸 그는 살아서는 미술계의 종장으로 추앙받았으며, 죽어서는 황제부터 돈 많은 상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동시에 대작과 위작의 대명사였다. 권세가들이 정중히 작품을 청해도 동기창은 대부분 다른 사람을 시켜 그리게 하였다. 때로는 노비들이 가짜 그림을 갖고 와서 부탁해도 흔쾌히 서명해 주었다. 또 돈과 여색을 밝히는 데 부끄러움이 없었다.
‘동기창의 악행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익명인이 소설을 썼다. 소설 내용은 노래로도 만들어져 삽시간에 퍼졌다. 동기창은 인근에 사는 범창이란 서생을 지목하였다. 범창은 한사코 부인하였으나, 동기창은 끝까지 추궁하였다. 며칠 후 돌연 범창이 급사한다. 범창의 노모와 부인이 항의하였다. 이를 본 동기창의 둘째 아들 동조상이 두 여인을 ‘도음(搗陰)’했다. 음부를 짓이겼다는 뜻이다. 여인들의 양다리 사이에 피가 낭자하였다.’(역사학자 이근명 한국외대 교수가 ‘월간조선’에 기고한 ‘17세기 중국 최고의 화가 동기창-최고의 예술가, 최악의 인격 파탄자’ 참고).
역사는 이러한 동기창의 추악한 실체는 외면하고 그의 그림만을 칭찬할 뿐이다. 막강한 부와 권력 덕분이었다. 그가 남긴 그림 이론서 ‘화안(畵眼)’은 화가·서예가뿐만 아니라 풍수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고전이다. 풍수와 그림은 밀접한 관련을 맺는데, 좋은 그림의 주요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원나라 4대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황공망(黃公望·1269~1354)은 “그림 속에도 역시 풍수가 존재한다”고 하여 그림과 풍수의 상관관계를 강조하였다. 특히 그는 “산수화를 그리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수구(水口)”라고 하였다(황공망, ‘사산수결·寫山水訣’). 수구는 기가 들어오는 통로이기에 ‘기구(氣口)’라고도 한다.
그러한 전통은 상하이미술관 부관장과 푸단(復旦)대 교수를 역임한 딩시위안(丁羲元·1942~)으로 이어진다. 딩시위안은 그림과 풍수의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석학이자 미술계 원로이다. 2006년 출간한 ‘예술풍수’ 서문이다.
“기구는 바람구멍[풍구·風口] 혹은 물구멍[수구·水口]으로서 그림을 살린다. 그림을 감상할 때 기구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관건이다. (중략) 풍수가 잘 형상화된 그림은 서기가 서려 영물이 되며, 그것을 감상하거나 소장하는 사람의 길흉화복을 좌우한다. 그림을 걸어두거나 배치할 때도 공간적·시간적 원칙이 있다. 함부로 아무 데나 걸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일반인들이 그림에서 기구나 수구를 알아낼 수 있을까? 1000원권 지폐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000원권 지폐 뒷면에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가 새겨져 있다. 오늘날 안동 도산서원의 전신인 ‘도산서당’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집 옆 냇물과 강물(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 사공이 배를 끌어당기는 장면이 희미하게 보인다. 기구(수구)이다. 배는 바깥의 물자와 소식을 가져오는 도구이다.
추사의 ‘세한도’를 보면 산도 없고 물도 없어 흉지 중 흉지이다. 그려진 고목들은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런데 맨 오른쪽 고목 끝 가지에서 작은 새순이 뻗어나고 있다. 새로운 생명이자 기구이다. 새순 바로 위에 추사의 호인 ‘阮堂’이란 낙관이 찍혀 있다. 새순은 추사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두 그림이 기구(수구)를 갖는 이유이다. 이러한 그림은 진품이 아닌 영인본이라도 재수 좋은 그림이다. 필자가 세한도 영인본과 1000원권 지폐를 소중히 하는 이유이다(1000원권 지폐는 소장 가치가 있다). 유명 화가의 그림일지라도 수구(기구)가 없는 그림은 딩시위안 교수 말처럼 좋은 그림이 아니다. 그러한 그림은 자칫 ‘독(毒)’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