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우드 미야코지마 메인 수영장에서 바라본 노을. 인구 5만 명의 작은 섬. 미야코지마의 밤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조유미 기자

리조트 수영장 선베드에 몸을 기댔다. “사삭, 사삭.” 바람에 흔들리는 사탕수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상앗빛 모래톱 너머 수평선은 유리처럼 반짝였다. 갈매기 소리조차 없는 고요. 눈앞의 바다는 비취색에서 에메랄드빛으로, 옅은 하늘색에서 파스텔 톤 푸른빛으로 시시각각 빛깔을 바꿨다. 형언하기 어려운 색. 그래서일까. 일본인들은 이 바다의 색을 ‘미야코 블루’라 부른다.

미야코지마는 태평양과 동중국해 한가운데 자리한 섬이다. 행정구역상 일본 오키나와현이지만 본섬인 오키나와 나하시(市)에서도 남서쪽으로 약 300㎞가량 떨어져 있다. 본토 최남단인 규슈 가고시마보다 대만과 필리핀이 더 가깝다. 석회암 기반의 평평한 산호섬으로 강과 산이 없어 바다로 유입되는 부유물이 없다. 덕분에 물빛이 맑고 투명해 ‘일본의 몰디브’라는 별칭이 붙었다. 인천에서 직항을 타고 2시간 30분 만에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 로즈우드가 지난 3월 문을 연 ‘로즈우드 미야코지마’에서 미야코지마의 풍광과 느긋함을 즐겼다.

바다를 마주보고 있는 로즈우드 미야코지마 메인 수영장의 한낮 모습. /로즈우드 미야코지마
선베드에 누워 바다를 보고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로즈우드 미야코지마
로즈우드 미야코지마의 독채 빌라 내부. /로즈우드 미야코지마

◇류큐 왕국을 품은 리조트

시모지시마 공항에 내려 리조트 픽업 차량을 탔다. 리조트까지는 차로 약 30분. 길 양옆으로 사탕수수밭이 끝없이 이어졌다. 미야코지마와 사탕수수의 인연은 류큐 왕국(1429~1879)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야코지마가 일본 영토로 편입된 건 19세기 후반. 그전까지는 오키나와 본섬과 함께 해상 왕국인 류큐 왕국으로 존재하며 독자적인 문화와 종교 체계를 구축했다. 류큐 왕국 시절 대만에서 들여온 사탕수수는 특히 미야코지마에서 크게 번성했다. 평탄하고 건조하면서도 배수가 잘되는 석회암 토양 때문이다. 지금도 미야코지마 농업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총 55개의 객실 모두가 바다가 보이는 오션 프론트나 오션뷰다. /로즈우드 미야코지마

로즈우드 미야코지마는 세 방향이 바다로 둘러싸인 북쪽 해안의 곶[岬] 위에 자리하고 있다. 길을 따라 이어진 55개 단층형 독채 객실 모두 해변을 마주한 비치 프런트나 오션뷰. 부지 전체에 심어진 이국적인 아열대 식생은 모두 미야코지마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숲과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이 되도록 구상했다. 마케팅 디렉터 조슈아는 “섬의 전통 건축과 자연환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구조가 특징”이라며 “‘섬 속에 스며드는 마을’을 콘셉트로 네덜란드 출신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했다.

1979년 미국 댈러스의 맨션을 개조해 처음 세워진 로즈우드 호텔 앤드 리조트는 ‘장소의 감각(A Sense of Place)’을 내걸고 각 지역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 등을 호텔 디자인과 서비스에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파리·런던·뉴욕 등 전 세계 30여 개 지점이 있다. 특히 빅토리아 하버가 내려다보이는 로즈우드 홍콩이 유명하다. 오는 2027년에는 국내에도 로즈우드 서울이 들어설 예정.

리조트는 화려함보다 단아한 섬의 숨결을 품고 있었다. 지역 어민들이 특산물 ‘모즈쿠(해조류의 일종)’를 양식한다는 지지대가 바다 한편에 빼죽 솟아 있었다. 사자 형상을 한 류큐 왕국 특유의 전통 수호신 ‘시사’ 석상도 보였다. 악귀를 쫓고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다. 섬의 삶과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작은 마을 같았다.

침대 맞은편 전면 유리창 너머 테라스에는 바다가 한 눈에 담기는 프라이빗 풀장과 썬베드가 있었다. /조유미 기자
하늘색 바다가 햇빛을 머금어 형광빛으로 빛난다. /조유미 기자
객실 내부 테라스마다 설치된 프라이빗 풀장. /조유미 기자

◇밤의 풀장은 별빛 극장으로

전동 카트를 타고 배정된 독채로 이동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싱그러운 우드톤 향이 배어 나왔다. 침대 맞은편 전면 유리창 너머 테라스에는 바다가 한눈에 담기는 프라이빗 풀장과 선베드가 있었다. 쨍한 하늘색 바다가 햇빛을 머금어 형광빛으로 빛났다. ‘웰컴 푸드’로 제공된 마카롱을 베어 물었다. 미야코지마를 비롯한 오키나와에서 주로 재배하는 감귤류 ‘시콰사’로 만들었다고 한다. 상큼한 환영의 맛.

방 전체에 섬의 문화가 배어 있었다. 방 안에 비치된 도기(陶器)는 3세대에 걸쳐 류큐 왕국의 전통 도예 양식을 이어오고 있다는 인근 ‘쓰보야 공방’에서 공수해 온 것이다. 책장에는 “지역 주민 집마다 한 권씩 있다”는 미야코지마 출신 작가 대이지로 신조의 사진집이 있었다. 조부가 선승(禅僧·스님)이자 민속학자로 류큐 왕국의 독특한 신앙 공간 ‘우타키’ 등의 모습을 담아내는 작가로 유명하단다.

방 안에 비치된 도기(陶器)는 3세대에 걸쳐 류큐 왕국의 전통 도예 양식을 이어오고 있다는 인근 ‘쓰보야 공방’에서 공수해 온 것. 해양 생물인 거북이가 새겨져 있다. /조유미 기자
객실 곳곳에 미야코지마의 숨결이 물씬. /조유미 기자
책장에는 미야코지마 출신 작가 대이지로 신조의 사진집이 있었다. 조부가 선승(禅僧·스님)이자 민속학자로 류큐 왕국의 독특한 신앙 공간 ‘우타키’ 등의 모습을 담아내는 작가로 유명. /조유미 기자

수영복을 입고 풀장에 뛰어들었다. 파도 소리만 잔잔히 들려오는 적막. 일상의 소란함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밤이 되면 풀장은 ‘별빛 극장’으로 변했다. 물 위에 몸을 누이고 바라본 미야코지마의 밤하늘은 별들로 빼곡했다. 인구 약 5만명의 작은 섬, 네온사인은 물론 가로등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미야코지마에서는 해풍이 대기를 씻어낸 맑은 날 맨눈으로 은하수를 볼 수도 있다. 도심 불빛에 가려져 잊고 지냈던 풍광이었다.

객실 내에서는 싱그러운 우드톤 향이 배어 나왔다. /조유미 기자
로즈우드 미야코지마 객실 내부 욕실. /조유미 기자

◇미야코 블루의 맛과 숨결

이튿날 아침, 리조트 피트니스 센터에서 필라테스 수업으로 몸을 풀었다. 간만에 푹 잔 덕인지 개운하다. 식당 ‘나기(고요한 바다)’에서 일본식 정찬을 주문했다. 이탈리안 감성의 레스토랑이지만 조식으로 일식도 제공한다. 바다 향이 살아 있는 생선구이와 섬 채소를 곁들인 절임, 미야코지마산 두부, 앞바다에서 따낸 싱그러운 모즈쿠…. 섬의 바다와 땅을 압축해 놓은 듯 다채롭고 정갈했다. 총 세 곳인 리조트 레스토랑에서는 모두 현지 식재료를 적극 활용한다고 한다.

리조트 내부 레스토랑 ‘나기(고요한 바다)’의 조식 팬케이크. 달콤. /조유미 기자
미야코지마는 소고기가 유명하다. 레스토랑 '나기'의 '미야코 소고기 스테이크'. /조유미 기자

관광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미야코지마의 면적은 미야코 섬 기준 약 158㎢. 섬의 동쪽 끝인 히가시헨나 곶에서 북쪽 끝 이케마 대교까지 차로 1~2시간가량이면 충분하다. 중심부의 미야코지마시 종합박물관에서는 섬의 역사·민속·자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민속 의상과 제례 문화, 토종 푸른도마뱀, 산호·거북·어류 표본 등이 전시돼 있다. 1771년 쓰나미에 떠밀려 온 거대한 암석들을 감상할 수 있는 히가시헨나 곶도 빼놓을 수 없다. 예부터 여성 사제만 들어갈 수 있었다는 류큐 전통 신앙의 성지인 ‘우타키’도 있다. ‘하리미즈 우타키’는 유일하게 관광객 등 일반인 출입이 가능한 곳. 열대어와 함께 스노클링을 즐기고 싶다면 ‘나카노시마 비치’를 추천한다.

1771년 쓰나미에 떠밀려 온 거대한 암석들을 감상할 수 있는 히가시헨나 곶. /OCVB
행정구역상 일본 오키나와현에 속하는 미야코지마는 맑고 투명한 물빛 덕에 ‘일본의 몰디브’라는 별칭이 붙었다. 큰 사진은 스나야마 비치 전경. /OPG

리조트로 돌아와 ‘미야코 블루’의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부지 내에 있는 두 곳의 해변은 수심이 깊지 않고 육지 쪽으로 굽이진 만(灣) 형태라 파도 없이 잔잔했다. 고요한 물결 속에서 섬의 숨결이 전해졌다. 예약을 하면 카약·스노클링·패들보드 등 액티비티도 즐길 수 있다.

물놀이 후 받는 스파는 그야말로 꿀 같았다. 리조트 내 ‘아사야 스파’ 건물로 들어섰다. 체질과 컨디션, 기분을 묻는 간단한 질문에 답하니 독채 공간으로 안내한다. 작은 성소(聖所)에 들어선 듯했다. 준비된 대나무 바구니 위에는 오키나와 전통 허브인 ‘겟토’, 미야코지마산 소금과 쌀가루, 해저에서 채취한 천연 진흙 ‘쿠차’ 등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모두 섞어 발을 씻어내는 정화 의식”이라고 했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갔다. 피곤이 발끝부터 녹아내린다.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몸을 맡겼다. 코끝을 스치는 허브향은 바람보다 맑았다.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가라앉았다. 근육 깊숙한 곳의 긴장을 풀어내는 손길에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90분의 마사지 시간이 훌쩍.

리조트 내 ‘아사야 스파’. 준비된 대나무 바구니 위에는 미야코지마산 소금과 쌀가루, 해저에서 채취한 천연 진흙 ‘쿠챠’ 등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조유미 기자
오키나와 전통 허브인 ‘겟토’ 등으로 발을 씻는 정화 의식. /조유미 기자

저녁은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의 시푸드 레스토랑 ‘마스(소금)’에서. “바다와 소금이 지닌 생명력을 음식에 녹이고자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얇게 썬 흰살 생선 위에 붉은 소스와 아스파라거스·토마토를 곁들인 세비체, 얇게 저민 가리비에 오크라·방울토마토를 올린 카르파초, 가다랑어 겉면을 불에 그을린 다다키. 매일 새벽 항구에서 어민들과 선별한 당일 어획물이다. 특히 메밀국수 위에 황금빛 우니와 붉은 보석을 닮은 연어알, 진한 향의 모즈쿠를 올려낸 소바가 일품.

리조트 시푸드 레스토랑 ‘마스(소금)’의 카르파초. 얇게 저민 가리비에 오크라·방울토마토를 올렸다. /조유미 기자
메밀국수 위에 황금빛 우니와 붉은 보석을 닮은 연어알, 진한 향의 모즈쿠를 올려낸 소바가 일품. /조유미 기자

객실로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입안에 남은 바다의 맛은 사라지지 않았다. 또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전날보다 달이 밝았지만 여전히 미야코지마의 별은 빛난다. 여행의 끝을 장식하는 가장 완벽한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