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에 대해 좌익 폭동이라고 하신 적 있으시죠?” 2024년 8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한 질문이다. 정 의원은 4·3이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사건으로, 국가가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기까지 했다고 얘기한다. 김 후보자는 국가의 사과는 무고한 양민의 희생에 대한 것일 뿐, 그것이 4·3 사건의 본질을 가리지 못한다고 답한다. 정 의원은 “좌익 폭동이란 말은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박한다. 이것이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에 필요한 질문인지를 떠나서, 정 의원의 도발은 우리나라 좌파 세력의 역사 투쟁이 권력기관인 국회에까지 그 촉수를 뻗쳤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방 후 2년 반이 지난 1948년 초, 한반도 북쪽에 이미 단독정부에 준하는 조직을 완성한 북한 공산당은 남한마저 적화할 목적으로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훼방 놓기로 하고, 남한에서 수많은 소요 사태를 일으킨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게 바로 4·3 사건으로, 2003년 정부에서 발간한 ‘제주 4·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는 이를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 투쟁과 접목시켜 일으킨 사건(165쪽)”이라고 규정했다. 특별법을 추진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CNN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 의원도 이 사실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4·3에 대해 질문하려면, 최소한 진상 조사 보고서 정도는 읽어보는 게 예의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그는 ‘좌익 폭동’이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고, 국가가 사과한 것을 강조하며 사건이 남로당의 준동으로 시작됐다는 팩트를 교묘하게 가린다. 그리 놀라울 것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에 포진한 좌파 세력이 지난 수십 년간 해온 일이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의 시작은 1848년 출판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수많은 이가 부르주아의 착취로 고통받던 그 시절, 젊은 마르크스에겐 당시의 상황이 자본주의에 내재된 기본적인 모순의 결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외쳤다. “부르주아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벌벌 떨게 하라!”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놀라운 일은 그 이후 벌어졌다.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지적한 모순을 해결하려 노력했고, 결국 최후의 승자로 자리매김한다.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시작으로 공산주의의 몰락이 가속화되던 시점에 나온 ‘역사의 종언(프랜시스 후쿠야마 저)’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능가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더 나올 수 없다는, 자본주의의 승리 선언이었다. 그 뒤 많은 좌파가 환경이나 소수자 문제 등으로 관심 분야를 옮긴 것은 자연스러운 일.
하지만 대한민국의 좌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김일성이 못 이룬 한반도 적화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역사 투쟁’에 돌입한다.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부끄러운 나라’ vs ‘북조선은 친일파 청산이 잘된 자랑스러운 나라’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지’ vs ‘북조선은 자주 독립 국가’. 남로당의 도발로 시작된 4·3 사건이 ‘독재자 이승만의 권력욕이 불러온 학살극’으로 돌변하는 것은 이런 역사 전쟁의 결과물 중 하나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왔다. 패널 1, “제주도를 아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이 서울에 있어.” 화면에는 거처에서 나오는 이승만의 모습이 나온다. 패널 2가 말한다. “당시 유력한 대통령 후보, 이승만 박사야.” 패널 1이 다시 말한다. “남한에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빅플랜의 일부였지.” 화면은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비춰준다. 투표 거부를 위함이라는데, 패널 1의 다음 말은 좌파들이 4·3 사건을 규정하는 핵심이다. “제주도를 그냥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겠네. 이렇게 몰아붙였어. 제주도는, 빨갱이 섬이다.”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가 치러지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이 탄생하지 못했을 거라는 것, 그리고 북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의 폭동과 군경·주민 살해 같은 역사적 사실은 아예 사라져 버리고, 남는 것은 우리 군경에 의한 무고한 양민 학살이다.
남송의 위대한 철학자 주희(주자)가 집대성한 성리학은 원래 훌륭한 이념이었다. 사물의 이치를 성실히 연구해서 알고, 그 이치를 실천함으로써 사람의 도덕성을 높이자는 것. 조선이 성리학을 건국 이념으로 채택한 것은 성리학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나라가 피폐해지자 성리학은 현실과 유리돼 이론에만 집착하게 된다. 일종의 정신 승리 같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 두 차례의 예송 논쟁이다. 효종이 인조의 차남이므로 자의대비가 상복을 1년간 입어야 한다는 서인,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으니 장자로 간주해 3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남인. 이게 자신들의 명운을 걸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을까? 자신의 이름을 딴 학문이 변질돼 권력 놀음에 이용됐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주희가 땅속에서 가슴을 치고 통곡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안타까움은 마르크스에게도 적용된다. 못 가진 자들의 아픔에 분노해 나온 자신의 절규가 대한민국 좌파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국가의 독재자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잖은가?
물론 지금이 마르크스의 원통함을 걱정할 만큼 한가한 때는 아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좌파 세력의 역사 왜곡에 맞서 제대로 된 역사 전쟁을 펼쳐야지 않겠는가? 지금 극장가에서는 ‘건국전쟁2’가 상영 중이다. 잘 싸우려면 잘 알아야 하는 법, 이번 주말, 이 영화를 보자. 그리고 마음속에 새기자.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