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근교에 새로운 힐링 명소들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힐링 지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동화 속 나무 위의 집 ‘트리하우스’를 갖춘 ‘인 서울(in seoul) 자연휴양림’부터 인문학을 테마로 한 철학과 사유의 정원,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일반 개방을 시작한 조선 왕조 옹주의 집까지. 다가올 ‘추캉스(추석 바캉스)’ 버킷리스트에 추가해 볼 만한 신상 힐링 명소 3코스를 묶어 당일치기 도장 깨기에 도전해 봤다.
◇5성급 숙소 갖춘 자연휴양림
“지난 8월에 9월분 숙소 예약 ‘2분 컷 마감 대란’을 일으켰다”더니, 2분도 아닌 ‘10초 컷’이었다. 지난 10일 오후 2시, 산림청의 산림 휴양 통합 플랫폼인 ‘숲나들e’ 홈페이지를 통해 10월분 숙박 시설 예약을 진행했던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동막골 자연휴양림’(‘수락 休’·이하 수락 휴) 얘기다. 이날 수락 휴 예약 창이 열리자마자 동시 접속자가 몰린 탓에 숲나들e 홈페이지 화면은 멈췄고, 이내 전 숙소 예약 신청 마감 화면이 떴다.
지난 7월 17일 개장과 동시에 ‘5성급 자연휴양림’ ‘휴양림계의 에르메스’라는 별칭을 얻은 수락 휴는 정식 개장 전부터 ‘최초의 인 서울 휴양림’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노르웨이 숲속 통나무집을 옮겨 놓은 듯한 ‘트리하우스’가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단숨에 ‘올가을에 가봐야 할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떠올랐다.
유리로 된 천장 너머 밤하늘의 별이, 창밖으로는 숲이 보이고, LP나 새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책을 읽으며 하룻밤 보낼 수 있는 특별한 숙소(비수기 2인 기준 5만5000원~성수기 4인 기준 식사 패키지 47만원)가 단연 인기지만, 숙소 예약에 실패했다고 포기하기엔 이르다. 자연휴양림(무료 관람)은 탐방만으로도 충분히 가성비 힐링을 얻을 수 있다.
◇요리사의 밥상 맛보고, ‘불멍’ 하고
‘물이 떨어지는 산’이라는 뜻의 수락산(水落山) 자락에 자리 잡은 수락 휴는 도시민의 휴식과 치유를 위해 노원구가 서울시, 산림청의 지원을 받아 조성한 자연휴양림이다. 산자락의 비스듬한 지형을 살려 트리하우스 3동을 포함한 25개 숙박 시설과 방문자센터, 휴마당, 식당&카페, 무장애 숲길, 유아 숲 체험원(조성 중) 등을 갖췄다.
햇살, 하늘, 별빛이라는 이름을 단 정원 3곳에 새의 집처럼 자리한 숙소, 소담스러운 산책로, 쉴 새 없이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더해진 숲은 동화 마을 같다.
‘모든 것은 숲으로부터 온다’라는 문구가 시선을 끄는 본동 1층의 방문자 센터는 체크인 센터, 로비&라운지 역할을 겸한다. 일반 탐방객들에겐 수락 휴 안내도 등을 받을 수 있는 탐방 안내소 역할을 한다.
방문자 센터 뒤로 몇 걸음만 올라가면 금세 ‘수락산 무장애 숲길’(0.6㎞), 수락 휴 삼림욕장과 만나는 갈래길이 나온다. 나무 침대에 몸을 맡기고 삼림욕을 즐기고 있노라면 새소리, 물소리에 마음속 찌든 때가 씻겨 나가는 기분이다.
보물찾기하듯 풀꽃 구경하며 가볍게 걷고 싶다면 숙소 주변 산책로가 답이다. ‘가우라 핑크리본’ ‘수국 라임라이트’ ‘큰꿩의비름 만추’ ‘향등골풀 초콜릿’ 등 낯선 꽃과 풀의 이름을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다. 폭신한 잔디밭엔 지역 목공예 작가의 작품이 볼거리다. 그중 새집 포토존이 가장 인기란다.
방문자 센터 한쪽의 홍신애 요리연구가가 참여하는 ‘씨즌 서울 바이 홍신애’에서 제철 밥상을 맛볼 수 있다. 숙소 내 별도 조리 시설을 두지 않는 대신 투숙객을 위한 간단한 조식, 밤참 등을 제공하기 위한 공간인데 조식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은 일반 탐방객들을 대상으로 식당처럼 운영(때에 따라 투숙객과 일반 탐방객 2부제 실시)한다. 농장 직송 쌈밥 전문으로 건강하면서도 정갈한 차림을 선보이는 식당은 벌써 소문이 자자해 정오에 가까워질수록 대기표 뽑기 행렬이 이어진다. 휴마당 앞 ‘불멍 존’에서는 오후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캠핑하듯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타닥타닥 장작 타는 냄새를 실컷 맡으며 불멍에 빠지기 쉽다. 단, 우천이나 행사가 있을 경우 운영하지 않고, 주말엔 이용 인원 대비 자리가 넉넉하지는 않아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수락 휴에서 도보 5~20여 분 거리에 도안사를 비롯해 송암사, 도선사(노원), 수암사가 있다. 숲 산책에 더해 가볼 만하다. 수락 휴는 대중교통으로 이용이 가능하다고 알려졌으나 지하철 4호선 불암산역(구 당고개역)에서 마을버스를 이용해도 최소 20분 이상 걸어야 한다는 점은 참고하자.
적극적인 치유에 목적을 둔다면 수락 휴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불암산 산림 치유센터’의 문도 두드려 볼 일이다. 산림 치유 전문가와 함께 불암산과 최대한 가까이 마주한 잔디밭에서 요가, 황톳길 맨발 걷기, 족욕 체험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무해한 시간으로 채울 수 있다. 평일엔 예약제, 주말엔 선착순 방문 이용 가능하다.
◇영조 대왕의 막내 ‘화길옹주’의 집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에 있는 ‘남양주 궁집’도 힐링 코스에 넣어 볼 일이다. 지난 6월 6년간 정비를 마치고 일반에 개방하기 시작해 조용히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수락 휴에서는 차로 30~40분 거리에 있다.
‘궁집(궁집)’은 나라에서 목재와 목수를 보내 지은 집이다. 남양주 궁집은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가 막내딸인 화길옹주가 12세의 어린 나이에 구민화에게 시집갈 때 지어준 것이다. 지하 주차장 등을 갖추고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개방한 남양주 궁집 구역에 들어서면 연잎으로 덮인 연못부터 만난다. 궁집은 초입에 자리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화길옹주는 생을 서둘러 마감했던 19세 때까지 궁집에서 7년간(1765~1772년)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궁집은 ‘ㅁ’자 형태의 안채와 ‘ㄱ’자 형태의 사랑채가 한 덩어리로 연결된 형태로 31칸 규모다. 조선 시대 가사 규제에 따르면 옹주는 집의 규모가 40칸 이내로 제한되었기 때문에 이 외 행랑 등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해설사는 “딸을 잃고 영조는 팔순 잔치도 하지 못할 정도로 슬퍼했다”며 “이곳엔 영조가 60에 얻은 늦둥이 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곳곳에 서려 있다”고 했다.
궁집 일대엔 ‘용인집’ ‘무교동집’ ‘군산집’ 등 소멸 위기에 처했던 고택들이 이전·복원돼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다. 전시관(조성 예정) 등 일부 정비가 이어지고 있지만, 고색창연한 옛집을 시작으로 솔숲까지 두루 둘러보며 짤막한 산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철학 담은 인문학 정원 ‘메덩골정원’
‘메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골짜기’라 해 ‘메덩골’이라 불리는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금왕리 산자락에 지난달 소프트 개장(일부 선 개장) 후 지난 1일 정식 개장한 ‘메덩골정원’도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다. 남양주 궁집 기준 1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찾아간 수고만큼 사색과 사유로 이끄는 이색 정원이 기다린다. 별도의 할인 없이 1인당 입장료가 5만원(카페 음료 1잔 포함)인데도 개장 후 보름 동안 500여 명이 조용히 다녀갔다.
한국 정원, 현대 정원, 숲으로 이뤄진 전체 약 19만8000㎡(6만 평) 중 먼저 선보인 곳은 약 2만3100㎡(7000여 평)의 ‘한국 정원’이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조경 디자이너, 건축가, 서예가, 한학자들이 참여한 만큼 공력이 응집된 정원을 일부 공개하기까지 꼬박 13년이 걸렸다. 4만9500㎡(1만5000여 평)의 현대 정원 구역은 내년 5월 개장을 목표로 현재 한창 조성 중이어서 첫인상이 다소 어수선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원에 들어서면 이내 반전 풍경이 펼쳐진다.
◇동요 ‘고향의 봄’부터 영화 ‘서편제’까지
한국 정원은 크게 3개의 주제원(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조성된 정원) ‘민초들의 삶’ ‘선비들의 풍류’ ‘한국인의 정신’으로 나뉜다. 가장 먼저 만나는 건 개복숭아나무가 이어지는 길이다. 소담스럽고 정답게 느껴지는 길은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국민 동요 ‘고향의 봄’ 가사 중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구절을 시각화해 재현했다.
금줄이 두른 신령한 기운의 ‘서낭당 회화나무’를 지나면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돌담길이 나타난다. 영화 ‘서편제’ 속 청산도 돌담길을 재현한 ‘남도돌담길’이다. 돌담 아래로는 목화·가지·고추 등 민초들이 애지중지 키웠던 작물들이 자란다. 짤막하지만 남도의 다랑이 논밭 사이를 걷는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다. 이어지는 메덩내는 옛날 빨래터가 그려진다. 류재용 메덩골정원 대표는 “김홍도의 풍속화 속 빨래터를 참고해 재현한 곳으로 돌 놓는 장인이 하나하나 치밀하게 계획해 돌을 놓았다”고. 듣고 보니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한국 정원의 재해석
비 갤 제(霽), 달 월(月) 이름부터 풍류가 느껴지는 ‘제월문(霽月門)’부터는 ‘선비들의 풍류’와 만나는 주제원이다. 제월문은 운곡 원천석의 시구에서 딴 이름. 이름처럼 그림자가 없는 정원이라는 뜻의 ‘무영원(無影苑)’엔 특이하게 동양적 수형의 소나무와 서양 식물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광을 연출한다. 류 대표는 “이곳 한국 정원은 일제강점기부터 명맥이 끊어진 한국의 전통 정원의 맥을 계승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한국 정원을 남겨보고자 하는 시도를 담았다”고 했다.
경남 산청의 한옥 마을인 ‘남사예담촌’ 고샅길이 떠오르는 길목을 지나면 ‘재예당’과 만난다. 마당 한가운데 떡하니 놓인 육중한 바위 ‘원주암’의 위쪽엔 소나무 한 그루가 기품 있게 자란다. 생명의 신비와 함께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하며 ‘초인’의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인의 정신’을 담은 주제원에선 건축가 승효상이 병산서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설계한 콘크리트 건축물 ‘선곡서원’이 방점을 찍는다. 선곡서원은 메덩골정원 대표 건축물 중 하나이자 개장 후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메덩골 현대 정원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위버하우스’도 공개와 동시에 건축학도, 디자인 전공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중. 하루 1회 도슨트 해설을 통해서만 둘러볼 수 있다. 사각기둥 16개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건축물은 ‘페소 본 에릭사우센’ 스튜디오의 작품으로, ‘스스로를 극복하고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라’라는 니체 철학의 핵심 사상을 담아 냈다고. 때마침 스며드는 오후의 빛, 그로 인해 생긴 그늘, 부드러운 곡선의 나선형 길과 초화 군락이 어우러져 웅장하고도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니체의 철학, 그리스·로마 신화, 카잔차키스의 문학,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또 하나의 비밀의 정원과 만날 내년을 기약하며 각 공간의 이름의 뜻을 곱씹으며 하산하는 길, 느슨해진 햇살에 기댄 가을 숲이 말을 걸어왔다. “이 숲이 들려줄 열린 결말을 기대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