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주제로 강의할 때 참석자들에게 향료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향을 먼저 경험하게 한다. 그런 다음 향이 불러일으키는 기억과 감정을 끌어내고 공유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혹시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한 적이 있지 않나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미국 시카고 향미치료연구재단 설립자인 세계적 향 전문가 앨런 허시 박사는 1만8631명을 대상으로 향과 성격의 관계를 연구했다. 여기에 그동안 내가 온·오프라인에서 만난 3000여 명의 경험을 더해보면 좋아하는 향과 성격에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몬·오렌지 등 시트러스(감귤류) 향수 계열을 좋아하는 사람은 시원시원하고 진취적이고 뒤끝 없는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 다소 직설적이거나 공격적인 말투를 쓰기도 한다. 로즈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의사 결정하기 전 모든 경우의 수를 고민하는 성향일 가능성이 크다. 신중한 기질을 가진 이들은 과거의 실수를 쉽게 잊지 못하기도 한다.
바닐라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파티나 사교 모임에서 낯선 이들과도 쉽게 대화할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타입이 많다. 여유 시간이 생기면 집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성향이다. 바닐라는 아이스크림을 떠올리게 하는 친숙한 향으로, 거부감 없고 편안한 느낌을 줘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게 하는 향이 아닌가 싶다.
샌들우드향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고,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을 세우는 성취형인 경우가 많다. 중요한 프로젝트 발표나 계약 협상 같은 자리에 나갈 때 나무향을 선택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무향은 존재감을 드러내기 좋은 향수 계열이며, 샌들우드향은 이 계열에서 자주 등장한다.
코코넛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히 스타일리시한 패션을 즐기는 편이다. 다만,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고집이 세다고 느껴질 만큼 주관이 뚜렷할 수 있다. 바닐라향이나 샌들우드향처럼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향은 아니지만, 매끄럽고 은은하며 편안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이 있어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서 소개한 향과 성격의 관계는 허시 박사의 연구, 다양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 경향일 뿐이다. 사람마다 향을 느끼는 방식과 취향은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오늘은 어제와 다른 향을 선택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향수는 결국 각자의 개성을 자연스럽게 비추는 창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