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은 추분(秋分)입니다. 영어로는 ‘autumnal equinox’라고 하는데요, equinox라는 단어는 ‘낮과 밤이 같음’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 equi는 ‘같음’을, nox는 ‘밤’을 뜻합니다.
아시다시피 계절이 바뀌는 것은 지구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채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입니다. 태양빛이 지표면에 닿는 각도가 달라져 낮과 밤의 길이뿐 아니라 기온과 날씨도 변하지요. 추분에는 태양이 적도 상공을 지나기 때문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집니다. 추분이 지나면 북반구에서는 밤이 길어지고 기온은 조금씩 떨어집니다.
추분은 흔히 여름과 가을의 전환점이라고 합니다. 이 무렵 곡식은 알차게 익어가고, 동물의 생체 시계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이제 길거리에는 긴소매 옷을 입은 사람이 눈에 많이 띕니다. 옛사람들은 추분이 되면 동면할 벌레가 흙으로 창을 막는다고 했습니다. 다가올 추위를 앞두고 대비한다는 뜻이겠지요. 예전의 9월 하순은 지금보다 훨씬 서늘했을 겁니다. 농경 사회였으니 사람들이 기후의 변화에 더욱 민감하지 않았을까요.
추분은 계절의 경계에 그치지 않고, 그 너머의 상징적 의미를 품고 있는 듯합니다. 낮과 밤이 균형을 이루는 때, 자연의 조화를 보여준다는 거죠. 그래서 인간 존재의 조화와 균형을 떠올리게 하고 빛과 어둠, 더 나아가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하지만 이 균형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 깨지고, 낮과 밤은 길이가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추분은 변화와 유한성을 일깨우는 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지나친 두려움은 필요 없습니다. 낮과 밤이 같아지는 시점은 어김없이 돌아오니까요. 낮의 풍요로움에서 밤의 고요로 이어지는 순간, 우리는 변화 속에서 균형을 찾고 끝맺음 속에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면 됩니다. 류시화 시인의 ‘추분’을 펼치니 이런 시구가 눈에 들어오네요. “언젠가는 이 풍경을 보지 못하게 되리라는 두려움/ 언젠가는 이 풍경과 하나가 되리라는 안도감.”
추분이 지나면 햇빛은 갈수록 비스듬히 고개를 숙입니다. 세상을 높은 곳에서 내려보지 않고 겸손하게 세상을 감싸 안는 듯합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