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에는 여성을 병역 의무에 동원할 수 없게 돼 있는데, 사실 그 부분도 해결해야 한다.”

독일이 뒤집어졌다. 지난달 29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의 발언 때문이었다. 프랑스 TF1 인터뷰에서 “자원 입대로 불가능하다면 의무 복무로 되돌아갈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며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고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까닭이다. 18만명 수준의 군 병력을 10년 뒤 목표치 26만명으로 늘리려면 ‘여성 병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헌법 개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덴마크는 7월부터 여성 징병제 시행에 들어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안보 환경이 급변하자 당초 2027년이던 도입 시기를 앞당겼다. 앞으로 18세 이상 여성은 추첨 과정을 거쳐 11개월간 군 복무를 해야 한다. 남녀 모두 공평하게 뽑고 4개월이었던 기존 복무 기간도 대폭 늘렸다. 덴마크 국방부 측은 “우리 군은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왕국 방위에 기여할 수 있는 진보적 기관이라는 명확한 메시지”라고 했다. 이웃 나라 스위스 역시 여성 징병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한국도 ‘여성 병사’ 법제화 움직임

남성 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병'으로서의 국방 의무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인구가 현저히 줄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남성만의 의무적 군 복무 체계가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한국에서는 지난달 김미애·주호영·유용원 등 국민의힘 의원 11명이 ‘여성 현역병(兵)’ 복무를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상 여성은 장교와 부사관으로만 선발돼 일반병 복무는 불가능한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역병 선발 시 성별 관계없이 지원자를 뽑자는 것이다. “저출산 및 병역 자원 감소로 인한 현역병 부족 문제가 지속되고 있고 현역병에 대한 여성의 자발적 복무 참여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 징병제로 나아가기 전 여성 현역병의 자원 입대부터 길을 터놓자는 복안이다.

인구 감소는 국방의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역시 “2025년부터 군 징집 인원이 부족해진다”며 2039년에는 사병 규모가 필요치보다 8만7000명 모자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한국군 상비 병력은 이미 2년 전 50만명이 무너졌다.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일 여성가족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지난해 합계출산율 0.75명 수준으로는 인구 유지가 어렵다”며 “2023년 헌법재판소에서는 병역법 제3조 남성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에 합헌 판결을 했지만 장기적으로 여성도 징병하거나 자원군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는 보충 의견도 제시한 바 있다”고 말했다. 원민경 여가부 장관은 “우리 국방과 현 상황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많은 법안과 환경 등을 두루 살펴 합의에 이르러야 하는 사안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병사 봉급 200만원 시대, 가능성↑

군대 예능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 출연한 여자 연예인들. TV쇼가 아니라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MBC

육군사관학교 측도 지난 3월 ‘지속 가능한 병역 제도 시행을 위한 여성 징병제 도입 가능성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술·환경·인구 등 항목별 타당성을 검토했는데, 경제적 측면에서는 ‘봉급’에 주목했다. 병장 봉급은 2023년 47.9%, 지난해 25%, 올해 20% 등 큰 폭으로 잇따라 올랐다. 기본급 150만원에 장병내일준비적금 55만원을 더하면 최대 205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경제적 보상이 강화되면서 징병제의 매력이 높아질 수 있다”며 “징병을 고려하는 여성에게도 긍정적인 요소가 된다”고 본 것이다. “봉급 인상 외에도 취업 지원, 학자금·사회 복귀 지원 등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복무 경험이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 장교·부사관 중 여군 비율은 10.8%(1만9200여 명)를 차지해 창군 이래 처음 10%를 넘겼다. 신체 조건을 좁히는 기술 환경도 조성되고 있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현대 전쟁에서는 정보전과 사이버전의 중요성이 특히 두드러진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체력보다 분석 능력,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기술적 지식이 더욱 중요하며 이 분야에서는 성별에 따른 차이가 거의 없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드론·무인기 등 자동화 무기 시스템의 발전도 변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제는 전투 임무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원격으로 작전을 지휘하고 수행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술은 전장에 있는 군인의 체력적 부담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성범죄, 사회 갈등 우려… 여성 반발 커

그래픽=송윤혜

국민 여론은 어떨까? ‘아무튼, 주말’이 SM C&C 설문 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의뢰해 국내 20~60대 성인 1000명(세대별 200명씩)을 대상으로 의견을 물었다. 반대 분위기가 우세했다. 찬성 43%, 반대 57%. 찬성 이유는 ‘인구 감소로 인한 병력 부족’(63%)에 대한 공감이 가장 많았다. 양성 평등(57%), 심각해지는 국제 상황(22%) 등이 뒤를 이었다. 반대 이유로는 시설 구축 등 경제 비용(44%), 성범죄 가능성(43%), 사회적 갈등(35%)에 대한 우려가 주를 이뤘다. 한 30대 여성은 “워낙 민감한 사안인 만큼 합의에 이르려면 우리 사회 내부의 격렬한 전쟁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의 반발이 압도적이었다. 70%가 반대해 남성의 반대 의견(42%)을 크게 상회했다. 치열한 젠더 공방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지난 6월에는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지도록 하는 병역법 제3조 1항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다시 제기됐다. 2010·2011·2014·2023년에 이어 다섯 번째. 심판을 청구한 20대 남성은 “병역 의무의 불평등한 부담이 군 복무 기간의 문제를 넘어 경력 단절, 소득 손실, 사회적 기회 제한 등으로 이어져 젠더 갈등을 심화하는 구조적 요인이 되고 있다”며 “여성에게도 일정 형태의 병역 의무를 부과하거나 남성의 병역 의무 이행에 따른 불이익을 실질적으로 보전하는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한국 사회 문제로 부각된 젠더 갈등을 완화하고 사회 통합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이라는 참고서

전장에 선 실제 이스라엘 여군. /IDF

앞서 징병제를 도입한 유럽 국가들도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가장 큰 현실적 난관으로는 다수의 여병(女兵)을 위한 병영 시설 등 인프라 구축이 꼽힌다. 범죄 가능성뿐 아니라 국방 예산과도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외적 실험은 2016년 ‘성 중립적 징병제’를 시작한 노르웨이에서 등장했다. 남녀 공동 내무반을 운영한 것이다. “같은 방을 쓰면 성별 의식이 희미해지고 동지애가 생긴다”는 연구 결과에 기반한 것이다. 긍정적 반응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지속성 확보 등의 한계도 함께 지적됐다. 또 노르웨이는 입대 시 필기·체력시험을 치러 징병 대상의 10~15%를 선발하는 특수한 구조라는 점에서 우리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건국 당시부터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징병제를 운영하는 이스라엘의 경우 군 복무 기간이 남성은 약 32개월, 여성은 24개월로 상이하다. 대개 남성은 전투, 여성은 비전투 분야로 배치해 안보와 인구 정책을 동시에 고려한 타협의 결과다. 다만 2023년 하마스 공습으로 인한 가자 전쟁 이후 여성의 전투병 배치가 늘면서 여성 비율이 전쟁 전보다 7% 증가한 21%까지 늘었고, 중요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면서 전통도 바뀌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군 전투 임무의 절반 이상, 전체 임무의 90%가 여성에게 개방됐다. 지난달 26일 국제 여성 평등의 날을 맞아 이스라엘군은 “평등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정체성의 일부”라며 “모든 임무를 가능하게 하는 우리 여성들을 기린다”는 메시지를 공식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