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2016년 ‘석학 인문 강좌’ 때 일이다. 강연 제목이 ‘국가의 철학~ 한반도 현대사의 철학적 성찰’이었다. 거창한 주제이긴 하지만 대중 강연이어서 열성 청중이 많았다. 열띤 질의와 응답 끝에 ‘통일이 언제쯤 될 것이라고 보는지’ 청중 한 분이 물었다. 뜸을 들인 내 답변. “우린 너무 성급하다. 때론 백년 단위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청중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그 반응이 기억에 생생하다. 분초를 다투는 세상에 ‘백년’이라니! 엉뚱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난 농담이 아니었다. 한국인의 ‘마음의 습관’에 녹아 있는 ‘빨리빨리 문화’를 성찰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사에 서두르는 습관은 생존을 걱정해야만 했던 우리네 격동의 현대사에서 나왔다.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남는 것조차 어려웠다. 급하지 않아도 당일 배송 택배를 선호하는 현실도 바로 손에 잡히는 성과를 바라는 사회 분위기의 산물이다. 우리는 당장 눈앞에 결과물이 보여야 만족한다.

‘빨리빨리’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덕분에 편리해졌고 윤택해졌다. 인공지능 시대엔 순발력이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단기 성과에 매달리면 큰 그림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성마른 사회는 전략적 사고를 푸대접한다. 정책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풍토에선 국가 백년대계는 빈말이 된다.

우리는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곤 하지만 ‘제국’을 경영한 적이 없다. 군사력·경제력 같은 물리력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제국 운영 경험의 부재는 한국인의 시야와 상상력까지 제약했다. 역사와 현실을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전략적 사고가 취약하다. 한반도 주변 나라들은 다르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거니와 일본과 러시아도 세계 경영 역량을 오래 쌓아왔다. 역사와 국제 정치를 길게 보고 대비한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데도 우리 언론은 국제 정세를 다루는 외신 기사의 질과 양 자체가 너무 빈약하다. 민중과 젊은이들의 분노가 ‘아시아의 봄’이라는 격변을 불러올 수 있는 네팔과 인도네시아 사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영국과 프랑스의 정정 불안도 토막 단신으로 취급한다. 단편적인 외신 기사조차 미국과 중국 등 몇몇 국가에 몰린다.

국내 언론만 보면 세계가 한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물 건너 바깥세상의 현실을 알려면 해외 언론을 직접 찾아봐야 할 지경이다. 반면에 국내 정치는 가십성 뉴스까지 시시콜콜 다루면서 소모적인 정치 중독증을 부추긴다. 매해 수천만 명이 해외여행을 가고 국제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세계 정세의 근본적 변화엔 별 관심이 없다.

어른이 되기 위해선 스스로 껍질을 파괴하고 떨쳐나가야 한다. 성숙한 주체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넘어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다. 개인과 국가 모두에 공통된 진실이다. 대한민국의 성취는 기성세대의 소국 콤플렉스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자폐적 민족주의는 세계를 매혹한 한류 현상을 판독할 수 없다. ‘당대 한반도’를 넘어선 담대한 시선과 상상력이 한류를 가능케 했다.

‘석학 인문 강좌’의 열띤 토론은 자아의 껍질을 깨트리는 시간이었다. 한국사도 한·중·일 3국 관계사를 넘어 세계사와 만나야 한다. ‘세계 정세와 한반도 역사 함께 읽기’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 과목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역사와 국제 정치는 생사를 가르는 실존적 필수 과목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담대하고 넓게 보아야 한다. 통일은 물론 경제·교육·문화도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나라가 진짜배기 강국이다. 때로는 ‘백년 그 너머’를 생각해야 어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