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 대표 랜드마크 몰레 안토넬리아나. /피에몬테주관광청

토리노는 음식이 아니라도 충분히 가볼 만한 도시다. 로마제국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를 지녔으며 19세기 통일 이탈리아의 첫 수도였던 도시답게 보고 즐길 명소로 가득하다.

토리노는 켈트족 일파인 타우리니(Taurini)족이 살던 곳이다. 기원전 1세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알프스산맥 너머 갈리아(오늘날 프랑스) 정벌을 위한 로마군 전초기지를 이곳에 세웠다. ‘타우리니족의 요새’라는 뜻으로 카스트라 타우리노룸(Castra Taurinorum)이라 불렸다. 카이사르의 후계자이자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쳐지며 아우구스타 타우리노룸(Augusta Taurinorum)이 됐다. 토리노는 타우리노룸에서 유래했다. 사보이아 왕궁 옆으로 돌아가면 타우리노룸의 북쪽 성문이었던 ‘포르타 팔라티나’ 유적이 남아있다.

토리노 중앙역을 나와 사보이아 왕궁 쪽으로 통하는 로마 거리(Via Roma)를 따라 걸어보면 이 도시가 고풍스러운 바로크풍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직선으로 난 길들이 직각으로 교차하는 바둑판 모양 도시 계획에 건물들의 높이도 거의 같아서 단정하고 통일된 느낌이다. 프랑스 파리를 연상케 하는 우아함이 깃들었다. 팔라초 레알레, 팔라초 카리냐노 등 왕실과 유력 귀족들이 살던 팔라초(궁)들이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

오늘날 토리노를 만든 주인공은 사보이아(Savoia) 왕가다. 사보이아는 프랑스어로 사부아(Savoie), 영어로는 사보이(Savoy)라고 한다. 사보이아 가문의 본거지는 오늘날 프랑스 사부아 지방이었다. 사보이아 공국은 13세기 피에몬테 지방을 합병했고, 1563년 수도를 토리노로 옮겼다.

로마 멸망 후 크고 작은 나라로 갈라졌던 이탈리아는 사보이아 왕가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구심점으로 1861년 통일했다. 토리노는 초대 수도가 됐다. 4년 뒤인 1865년 수도가 피렌체로 옮겨졌다가 교황령이던 로마가 합병되면서 1871년 로마가 수도로 정해졌다.

토리노 산카를로 광장. /피에몬테주관광청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두오모(대성당)다. 토리노는 특이하게 두오모가 아닌 몰레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라는, 송곳처럼 뾰족한 첨탑이 다른 건물들 위로 치솟아 있다. 높이가 167m로, 1889년 완공됐는데 같은 해 파리 에펠탑이 세워지지 않았다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 될 뻔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상징 이미지로 쓰였을 만큼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가장 멋진 토리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유대교 성전으로 설계돼 1862년 건립 공사가 시작됐지만 안토넬리가 공사 중 설계를 자주 변경한 데다 공사비가 예상을 크게 넘으면서 결국 공사가 중단됐다. 토리노 시정부가 1877년 매입해 이탈리아 통일 기념관으로 용도를 변경했다. 지금은 국립영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독재자 무솔리니가 정권 프로파간다에 영화를 이용하려고 시설과 인력을 로마로 옮기기 전까지 토리노는 이탈리아 영화 산업의 중심이었다.

토리노는 이탈리아 최대 공업 도시이자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다. 이탈리아 대표 자동차 기업 피아트(FIAT)는 ‘토리노의 이탈리아 자동차 공장(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의 약자. 피아트의 첫 자동차 공장이 토리노 외곽에 세워졌다.

자동차 생산 라인은 인건비가 저렴한 이탈리아 남부 등으로 이전했고, 빈 자동차 공장은 복합 문화 시설 링고토(Lingotto)로 변신했다. 피아트를 창업한 아녤리 가문이 수집한 방대한 아트 컬렉션을 전시하는 ‘조반니 에 마렐라 아녤리 미술관(Pinacoteca Giovanni E Marella Agnelli)’이 매우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