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노 가에루코(朱野帰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본 TBS 방송국의 화요 드라마 ‘강 건너 집안일(対岸の家事)’이 올해 상반기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일본의 드라마 다시보기 서비스인 TVer에서 방영 시작 8일 만에 무려 30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는데, 이는 TBS 화요 드라마 중 역대 최고 기록이라고 한다.
원래 ‘강 건너 집안일(対岸の家事)’이라는 말은 사전에 없다. 사전에 나오는 말은 ‘강 건너 불(対岸の火事)’이다. 소설가 아케노 가에루코는 여기서 화재를 뜻하는 ‘火事(화사)’를 일본어로 발음이 같은 ‘家事(가사)’로 바꿔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무라카미 시호(村上詩穂·다베 미카코 분). 두 살 딸을 키우는 엄마다. 시호는 미용사였으나 결혼 후에는 전업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드라마는 시종일관 주인공 시호를 비롯해서 다른 인물들이 ‘집안일’로 인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그리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를 그리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전업주부는 경멸 혹은 질투의 대상이다. 드라마의 또 다른 주요 등장인물인 나카타니 다쓰야(中谷達也·후지오카 딘 분)는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 관료로서 현재는 아내 대신 자신이 육아에 집중하기 위해 육아휴직 중이다. 시호와 한 동네에 살면서 딸들을 매개로 친해진 다쓰야는 의외로 전업주부인 시호에게 냉소적이다. 전업주부는 ‘사치’라는 것이다.
또 다른 중심 인물인 나가노 레이코(長野礼子·에구치 노리코 분)는 이벤트 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함께 맞벌이하면서 1남 1녀를 키우는 직장 여성이다. 야근과 출장이 잦아 집안일을 전혀 돕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레이코는 ‘독박 육아’에 회사 일로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옆집에 사는 시호를 바라보는 레이코의 시선은 곱지 않다. 전업주부는 ‘멸종 위기종’이라는 것이다.
전업주부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시호가 전업주부의 길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시호가 중2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오로지 회사에만 집중하는 ‘회사형 인간’인 아빠는 엄마가 죽은 후에도 청소와 요리 등 집안일을 모두 딸에게 시킨다. 그리고 ‘별것도 아닌’ 집안일을 엄마만큼 잘하지 못한다고 딸을 타박한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식 날, 시호는 아빠에게 고로케 한 접시를 남겨 놓고 가출해 미용학원으로 향한다. 심지어 딸의 졸업식 날에도 아빠는 맛있는 음식 하나 사주기는커녕 엄마가 자주 만들던 고로케를 만들어 달라고 딸에게 주문했기 때문이다. 결혼해 딸을 둔 시호는 죽은 엄마처럼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미용사 일과 주부의 길을 병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쓰야 역시 ‘집안일’로 고통받는다. 다쓰야의 엄마는 전업주부였으나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목표는 오직 하나.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 엘리트 관료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녀는 다쓰야가 어릴 때부터 아들의 인생을 세밀하게 기획하고, 아들이 계획대로 공부를 하지 않을 땐 휴대용 믹서로 아들의 머리를 피가 날 때까지 내려친다. 다쓰야는 결국 엄마와 의절하지만, 엄마의 폭력은 다쓰야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자신의 딸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휴직을 한 다쓰야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계획을 자세히 꾸미고 이를 강박적으로 실행해 나간다.
맞벌이 커리어우먼 레이코 역시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회사 일과 집안일 모두 성공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은 ‘남자는 바깥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
평소에 드라마를 잘 보던 사람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 드라마에 빠져들 줄은 몰랐다. 아마도 이 드라마의 주제가 지금 내 처지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십이 넘어 늦둥이를 보고 좋아라 했는데, 아내가 해외 MBA에 합격해 장도에 올랐다. 아내가 인생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데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일을 좀 쉬기로 하고 호기롭게 ‘독박 육아’에 뛰어들었으나 만만치 않다. 매일 분유 5~6회, 이유식 두 번, 목욕 두 번, 책 읽어 주고 장난감 들고 같이 놀아주다 보면 대여섯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아기가 있는 집이니 청소·세탁·설거지도 수시로 공들여야 한다. 예방접종은 왜 그리 종류가 많은지. 이유식에, 아기 옷에, 쇼핑도 노하우가 필요하다. 엊그제부터는 오른쪽 팔꿈치가 몹시 저린다.
하지만 집안일을 해보면 어려운 것은 집안일 자체가 아니다. 애 때문에 일을 쉰다고 하면 직장에선 뭐라고 할까? 나를 ‘한량’ 취급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남녀를 불문하고 ‘집안일’ 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충은 바로 이 일이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있다. 드라마 ‘강 건너 집안일’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이미 소수파로 전락한 ‘집안일 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마지막 회에서 시호는 화해를 원하는 부친의 집에 찾아간다. 아버지는 비뚤배뚤하고 솜씨는 없지만 손수 만든 고로케를 내놓는다. 그 쉬워 보였던 고로케가 사실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 고로케는 오늘도 집안일에 분투하고 있는 이 세상 모든 남녀에게 작가가 던지는 감사와 인정의 메시지일지 모른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중요한 일이라고. 그 일을 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당신의 ‘집안일’은 더 이상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