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접해본 적 없는 맛이다. 처음 섞었으니까.
‘김치 도사’가 태어났다. 김치에 통달했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의 상징 ‘김치’, 크레페 같은 식감의 인도 남부 전통 음식 ‘도사’를 합친 이름이다. “김치 도사~ 김치 도사~ 아텡가파(맙소사)~!”가 반복되며 발리우드 스타일의 신명 나는 단체 춤사위가 어우러지는 노래. 다시 말하지만 인도 노래다. 반응이 뜨겁다. 지난달 28일 공개돼 10일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00만회를 넘겼다. 뭄바이 극장에서는 영화 상영 전 ‘김치 도사’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온다. 쉼 없이 몸이 들썩대는 인도식 K팝. 뮤직비디오에서 태극기와 인도 국기가 펄럭인다.
인도에서 더 유명한 한국 가수 아우라(39·박민준)는 “식당에서 도사를 먹다가 우연히 떠올린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맛이 괜찮겠는데?” 두 명의 현지 가수와 컬래버레이션에 착수했다. 노래에 한국어와 타밀어가 섞인 이유다. “인도는 낯선 땅이지만 워낙 넓고 색다른 세계여서 개척할 여지가 크다”며 “한국에 대한 호감이 높은 반면 BTS가 한국 가수인지 한국 지명인지 헷갈려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은 만큼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현지 가수들과의 협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 활동 3년 차인 아우라는 다음 달 인도 6개 도시를 돌며 현지 포크송을 K팝으로 재해석하는 뮤직쇼 촬영을 앞두고 있다.
세계를 호령하는 K팝, 그동안 불모지로 남아있던 인도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하이브도 지난 6월 인도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9~10월 출범을 목표로 현지 시장 조사와 법인 설립 실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레 맛 BTS는 나올 것인가. “K팝 사업 모델을 타 음악 장르에 수출하고 적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감 타개 전략”의 일환으로 방시혁 의장이 직접 주도했다고 한다. 14억2862만명, 전 세계 인구 1위의 거대 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25세 이하 인구가 전체의 40%를 넘는 젊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평균 연령 29세. 한국(45.5세)보다 한참 젊다. 인도 상공회의소는 지난 3월 낸 보고서에서 자국의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 규모가 지난해 약 41조원에서 올해 4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로 가야 미래가 있다는 판단에는 이 같은 수치가 잠재해 있다.
다만 진입 장벽이 만만치 않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언어도 종교도 감수성도 너무 달라 우리 기준으로만 전략을 짜다가는 ‘현타’가 올 것”이라며 “인도 팬들은 즉각적인 멋보다 가수의 인생사 등 전체적 맥락에 더 환호하는 경향이 있어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K팝 4인조 걸그룹 블랙스완에 2023년 합류한 스리야 렌카(22)는 인도 오디샤 출신이다. 최초의 인도인 한국 걸그룹 멤버. 4000대1 경쟁률을 뚫고 데뷔하자 인도에서도 큰 화제였다. 블랙스완은 그해 오디샤에서 열린 하키 월드컵 개막식 공연을 비롯, 오디샤 대형 열차 사고를 추모하는 노래 ‘A World Without Pain’을 발표하며 인도 팬덤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자고로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이다. 스리야는 지난 5월 인도·파키스탄 분쟁 당시 인도군 지지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는 “그녀의 메시지는 K팝 팬덤을 넘어 인도 커뮤니티 전체에 깊은 공감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11월 1일에는 뭄바이에서 초대형 K팝 공연 ‘케이타운 3.0’이 열린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 태민, 슈퍼주니어 D&E 등이 인도 데뷔 무대를 갖는다. K팝이 선도하는 한류, 지난달 처음 인도에 발을 내디딘 최초의 K편의점(이마트24)처럼 음식·패션·뷰티 등의 잇단 시장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K도사’들이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