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콘크리트가 빗물을 맞아 거대한 돌덩어리처럼 보였다. 그 속에 앉아 있으려니 사방이 적막했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묻혀 주인장은 조용히 홀과 주방을 오고 갔다.

한양대 전철역에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골목길을 향해 통창을 낸 식당의 이름은 스페인어로 ‘검붉은’ 혹은 레드 와인을 뜻하는 ‘틴토(tinto)’였다. 이 집은 직접 빵도 구웠다. 그 빵으로 점심에는 차가운 샌드위치를 팔았다. 저녁이 되면 요리와 와인이 나왔다.

빌 에번스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몇십 년 전 죽은 피아니스트가 어린 새를 날리듯 한 음, 한 음 또박또박 타건(打鍵)했다. 이 집의 음식도 비슷하여 과장된 설명과 수식이 없었다.

서울 성동구 ‘틴토’의 갈레트.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먼저 빵을 시켰다. 씹으면 산미가 꽃이 피듯 가득 퍼지는 사워 도(sourdough) 빵과 참치 내장 젓갈로 맛을 낸 버터가 함께 나왔다. 얇게 잘라 갈색으로 구운 빵에 버터를 발라 입에 넣었다. 간단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젓갈에서 비롯된 감칠맛과 버터의 고소한 맛, 빵의 구수한 향이 정직하게 차곡차곡 쌓여서 더 큰 맛을 이뤘다. 빵과 버터만으로도 사랑과 우정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뒤이어 나온 갈레트(galettes)는 메밀 반죽을 얇게 부치고 가운데 잠봉 햄과 치즈, 그리고 달걀을 깨서 올렸다. 일종의 크레페인 갈레트는 프랑스의 북서쪽 브르타뉴, 한반도로 치면 황해도쯤 되는 향토 음식이다. 기후가 춥고 땅이 척박해 밀이 잘 자라지 않는 이 지역은 메밀을 작물로 심었다. 마치 강원도에서 메밀로 전을 부치듯이 만들어진 음식이 바로 갈레트다.

이 집의 갈레트에서는 예전의 빈곤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만약 밀가루로 했다면 조금은 밋밋했을 법한데, 메밀가루의 조금은 쌉쌀하고 거친 풍미가 맛에 양감(量感)을 불어넣고 있었다. 가운데 올라간 달걀노른자를 잘라 터뜨렸다. 치즈, 햄, 달걀노른자가 어우러지며 끈적하고 진한 맛이 체액처럼 천천히 흘러나왔다. 바삭한 가장자리는 한국 전의 단단한 식감이 아닌 유리를 세공하듯 반죽을 얇고 얇게 뽑아낸 서양 페이스트리의 문법이었다.

토마토의 산미를 살려 다진 소고기, 양파, 당근과 함께 졸이듯 익혀낸 라구 파스타, 오리 껍질부터 온도를 서서히 올려가면서 익혀 지방을 뽑아내고 바삭하게 구워낸 오리가슴살 스테이크가 테이블 위에 쌓였다.

마지막은 하루 전날 주문을 넣어야 하는 비프 웰링턴(beef wellington)이었다. 한우 안심을 버터에 볶은 버섯과 직접 만든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싸서 오븐에 익힌 요리였다. 소고기 안심을 속까지 정확히 익혀내는 것도 어려운데 고깃덩어리를 밀가루 반죽 안에 넣어 오븐에서 조리를 마쳐야 한다. 이렇게 되면 순전히 요리사의 경험과 감으로 익혀내는 수밖에 없다. 한우 안심을 썼음에도 값은 강남 쪽 식당의 거의 절반이었다.

반으로 잘린 소고기 안심은 선홍빛 미디엄으로 익혀져 나왔다. 겹겹이 부서지는 페이스트리 껍질을 고기와 함께 씹으니 프랑스 사람들이 왜 최고의 맛으로 그 단순한 버터와 빵을 예로 드는지 이해가 갔다.

그들은 유일신을 섬기며 세상에 정해진 규칙과 운명이 있다고 믿었다. 음식과 맛에도 그런 필연적이고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대지와 태양, 그리고 인간이 빚어낸 버터와 빵은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이다. 나는 늘 인생이 영원히 완벽할 수 없는 아마추어 예술가의 습작 같은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갈레트 조각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비프 웰링턴 위로 갈색의 소스가 흘러내리는 찰나는 거의 완벽하다고 느꼈다.

이국의 음식이 몸속에 들어갈 때 나는 가끔 오래전 전생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인생은 더욱 짧았고 그리하여 삶의 굴레와 목적이 모두 명확했던 시대. 불멸을 동경할지언정 감히 넘보지 않았다. 행복과 불행의 기준이 확실했다.

한양대 앞의 이 작은 식당은 잊힌 시간을 추억하듯 넉넉히 와인을 따르고 절도 있게 접시를 놓았다. 증발하는 자극을 먹고 소모되는 인생을 사는 대신 길게 기억될 오래된 음식을 만들었다. 그 음식에는 브르타뉴의 흙과 바람의 냄새가 잊힌 영광처럼 고요히 감돌았다.

#틴토(tinto): 슈토버터 8000원, 갈레트 1만2000원, 오리가슴살스테이크 3만원, 비프웰링턴 5만5000원, 0507-1357-8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