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목발’인 줄 알았다. 환자가 이렇게 많나…. 자세히 보니 삼각대였다. 지난 5일, 해 질 녘이 되자 삼각대를 든 사람들이 하나둘 1호선 부천역 북부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연결해 바닥에 세운 뒤 중얼중얼 독백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들~.” 실시간 소통 방송을 진행하는, 흔히 BJ(Broadcast Jockey)로 불리는 인터넷 방송인들이었다. 빽빽한 문신을 과시하는 옷차림에, 요란한 노래를 틀어놓고 막춤을 추거나, 갑자기 고함을 지르는 등 예측 불허였다. 근처에 있는 게 공포였다.

지난 8일 밤 부천역 인근 상가 앞 광장 길바닥에서 유튜버·스트리머·BJ 등으로 불리는 이들이 휴대폰 카메라를 세워둔 채 춤추고 노래하며 실시간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얌전한 축에 속한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7일 밤에는 북부광장 인근 고깃집 앞에서 ‘벌칙’을 수행한다며 몸무게 150㎏은 훌쩍 넘어 보이는 한 남성이 웃옷을 벗은 채 다른 남성의 몸 위로 뛰어올라 무릎으로 찍었다. 생방송 중이었다. 다친 남성은 이튿날 “입원해야 한다”며 후원금을 요청하는 길거리 방송을 했다. 지난달 17일에는 일대에서 생방송 도중 소주병을 들고 뛰어다니는 등의 난동을 피운 20대 남성이 현행범으로 경찰에게 붙잡혔다. “호응을 유도해 시청자 후원을 받으려 그랬다”고 진술했다.

◇부천 특산물 돼버린 BJ

지난 8일 밤 BJ들이 부천역 인근 길거리에서 실시간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흥겨워보이지만 행인들은 혹여 얼굴이 찍힐까 이곳을 피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여주는 쌀, 안성은 한우, 부천은? 다른 동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BJ들이 끊임없이 출몰했다. 전깃줄 위 비둘기 떼처럼 골목에 모여 앉아 카메라를 켜고 있었는데, 이 풍경으로 인해 ‘전깃줄’이라는 별칭이 붙은 한 상가 앞 화단에는 최근 철제 펜스까지 설치됐다. 이들이 여기 오래 머물 수 없도록 시(市)에서 조치한 것이다. 인근 부동산 사장은 “흡연은 기본이고 자기들끼리 술 먹고 싸우며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미치겠다”며 “BJ의 성지로 워낙 유명해져 이곳에 사는 걸 불편해하는 세입자가 늘다 보니 임대인들의 스트레스도 크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기초 질서 위반 행위에 대한 경찰의 일제 단속이 시작됐다. 순찰차가 골목을 돌며 “거기 모여 계시면 안 돼요”라고 안내하면, BJ들은 우르르 일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년 전 이 동네에서 성공한 BJ가 나오면서 너도나도 몰려든 것으로 안다”며 “숫자가 많아지니 팀을 결성하거나 신입끼리 합동 방송을 하는 등 교류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BJ로 인해 매달 부천 원미경찰서에 접수되는 신고만 200건 이상. 포크로 경쟁 BJ의 관자놀이를 찍는 등의 폭력 사건도 다반사다. 전문성 없이 유명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기행(奇行)이기 때문이다. 부천의 한 BJ는 “여기서는 ‘헬파티’를 열수록 왕처럼 대우받다 보니 뭘 해도 다 허용되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동네 이름에 먹칠… 손님 뚝

부천역 인근 먹자골목 길거리에 자리 잡고 야외 방송 중인 BJ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자정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개인 방송의 선구자 격인 아프리카TV는 2022년 BJ들에게 부천역 인근 광장에서의 방송 금지를 요청했다. 소음과 개인정보 유출 피해 등을 호소하는 인근 주민·상인의 민원이 부천시에 쇄도하면서, 시 측이 아프리카TV에 협조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장소를 특정해 모든 BJ의 방송을 제한한 첫 사례. 그때뿐이었다. 간혹 심각한 사안에 대해 ‘계정 영구 정지’ 처분이 내려지기도 하지만, 활동은 계속 이어갈 수 있다. 방송 플랫폼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인근 연탄구이집 주인은 “허구한 날 카메라를 켜고 상주하니 손님들은 혹시나 자기 얼굴이 노출될까 발길을 돌린다”며 “경기 침체에 이런 악재까지 겹쳐 장사하기 너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지난 7일 밤 한 BJ가 부천역 인근 횟집에서 소란을 일으켜 또 경찰이 출동했다. “요즘 힘드니 그냥 가달라”는 업주에게 “이건 내 돈벌이 수단”이라며 물러나지 않던 BJ. 이윽고 식당 직원이 “영업장 망치지 말라”며 소금을 뿌리자 BJ가 소리쳤다. “나도 (여기가) 내 영업장이야.” 해당 영상에는 “이런 사회악, 그리고 민폐 행동을 부추기는 후원자 전부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경찰 단속 ‘씹어 먹는다’

지난 5일 일대를 단속 중인 경찰 앞을 BJ들이 지나치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그러나 공권력마저 ‘콘텐츠’ 소재가 돼가고 있다. 업무 방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한 부천 BJ가 길바닥에서 대드는 최근 영상은 그 대표적 예. “야, 경찰이면 갑질해도 돼? 나도 업무가 안 돼, 너 때문에. 너도 반말해 그럼. 이미지 신경 쓰이니? 왜, 이거 너네 엄마가 볼까 봐?” 선을 한참 넘어버린 BJ의 ‘센 척’은 이윽고 경찰이 끊어 건넨 범칙금 딱지를 눈앞에서 찢어버리는 것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어느 영상에서는 “딴 데 가서 방송하라”는 경찰 앞에서 딱지를 찢어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기도 한다. 모두 유튜브에 영상으로 남아있다. “내 자유야, 네가 뭔데 내 자유를 침해해?”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이기에, 영상에 붙는 ‘#부천’ 태그는 ‘엽기’의 동의어로 간주되고 있다. 부천 BJ들의 하이라이트(?)만 모아 방송하는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됐을 정도. 이들의 근로는 밤낮과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전깃줄’ 근처 편의점에서 2년째 근무 중이라는 점원 윤모(25)씨는 “단속하면 잠시 줄었다가 새로운 사람들이 또 유입된다”며 “야외뿐 아니라 실내에서도 말썽을 일으켜 BJ 출입을 거부하는 가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비제이인지 꽃제비인지 헷갈린다”는 조롱에도 쇼는 계속된다. 과격할수록 커지는 박수, 돈 때문이다.

◇‘이부망천’ 발언 이후 최대 위기

부천역 인근 식당 앞에서 한 BJ가 실시간 방송 도중 웃통을 벗고 다른 BJ의 몸 위로 뛰어오르고 있다. /유튜브

문화·예술을 도시 정체성으로 표방하는 부천, 그러나 오프라인이 온라인으로 인해 황폐해지는 구체적 사례가 돼가고 있다. 주민들은 “모 국회의원의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가고 더 어려워지면 인천 간다) 발언 이후 최대 위기”라며 우려하고 있다. 한 5년 차 부천 시민은 “여기 이사 오고 나서 주변 친구들에게 ‘BJ들 구경하면 재밌겠다’ 같은 놀림을 자주 받는다”며 “거주 환경에 비해 이미지가 너무 평가절하돼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지난 5일 시의회 시정 질의에서도 부천역 광장 일대의 혼란 양상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불쾌감을 가중시키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건 시의원은 “욕설·폭력에 범죄도 일어나니 저 역시 덩치가 있는 편인데도 BJ들에게 말을 붙이기가 무서울 정도”라며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광장 관련 조례 개정 및 시·경 합동 단속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천시 관계자는 “최근 경찰 및 유관 기관이 모여 대책 회의를 나눴다”며 “근처에 설치된 CCTV 스피커를 통해 경고 메시지를 내보내는 등 계도 조치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벌까?

미래 먹거리로 여겨지는 디지털 콘텐츠. 일부 BJ들의 민폐는 그러나 업계 전반에 대한 인식 악화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선정적 방송인들이 발붙일 수 없도록 걸러내는 플랫폼 측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들의 추태는 이미 표현의 자유의 수준을 넘어섰다”며 “청소년들에게는 지상파를 위협할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만큼 저질 콘텐츠 제작을 방관하는 플랫폼에 대해서는 엄한 중징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인에게 시비를 걸라”는 등의 시청자 미션을 수행하고 수만~수백만원의 후원금을 받는 세계, 오늘도 일자리 대신 카메라를 켜고 부천역 일대 길거리로 BJ들은 몰려들고 있다.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빈익빈부익부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전파진흥협회가 BJ 등 디지털 창작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조사한 결과 최근 1년 평균 수익은 1346만4000원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는 수익이 발생한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집계다. 실제 평균 수익은 이보다도 훨씬 낮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