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큐’ 광고. 초기 표기는 ‘캪틴큐’였다. 1980년 출시 첫해 1000만병이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프리미엄 양주의 등장 이후 존재감이 사라졌고 2015년 단종됐다. /명욱 제공

한국 양주의 원조라고 할 만한 술은 무엇일까? ‘캡틴큐’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캡틴큐는 국내 생산 1호 양주는 아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양주로 꼽힌다. 출시 첫해인 1980년 1000만병이 팔리며, 마치 요즘의 오픈런과 같은 반응을 일으켰다. 당시 가격은 3000원. 소주가 한 병에 20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가의 술이었다.

캡틴큐를 대학 MT 등에 들고 가면 지금의 ‘발렌타인 30년’을 사 온 듯한 대접을 받았다. 초기 표기는 ‘캪틴큐’. 캡틴(captain)의 일본식 발음인 ‘캬프텐(キャプテン)’을 한국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숙취가 없다”는 전설이 생기기도 했다. 술이 훌륭하다는 게 아니었다. “캡틴큐를 마시면 다음 날 일어나 숙취를 느낄 새도 없이, 다다음 날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우스갯소리였다.

캡틴큐 로고에 등장하는 애꾸눈 인물은 누구일까? 해적 선장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복장이 다르다. 삼각모, 금빛 견장, 제복 형태 등이 영국 해군 장교의 모습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해적이건 영국 해군 장교건, 둘 다 카리브해와 연관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많은 이들이 캡틴큐를 위스키로 알고 있지만, 캡틴큐가 추구한 방향은 럼이었다.

럼은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아메리카·아프리카 사이 삼각무역의 산물이다. 유럽에서 무기를 아프리카로 보내고, 아프리카에서 잡은 노예들을 아메리카에 이송했다.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이 바로 설탕·면화·럼주였다. 이 중 럼은 원료를 카리브해에서 조달했고, 미국에서 제조됐다. 럼은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당밀을 희석해 효모로 발효한 뒤 증류한 술이다.

활발한 삼각무역으로 카리브해에 많은 재화가 오가자, 이를 노린 해적들이 엄청나게 등장했다. 이들로부터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 해군이 카리브해에 파견됐다. 지금은 미군 항공모함이 태평양·대서양을 누비지만, 200년 전 해군 강국은 영국이었다. 게다가 영국은 자메이카, 바하마 제도, 트리니다드토바고 등 카리브해에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해적과 영국 해군이 싸우는 이야기 전개도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반영한 설정이다. 럼주가 영국 해군의 술이었던 이유다.

미 해군의 술도 자국에서 대량 생산되던 럼이었다. 하지만 1808년 노예무역이 공식 폐지되면서 삼각무역 체계가 무너졌다. 더 이상은 럼으로 노예를 사고팔 수 없게 된 상황. 럼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또 럼을 만들려면 원료인 사탕수수를 수입해야 했는데, 사탕수수 수입처는 영국의 식민지가 많았다.

미국은 다른 증류주로 눈을 돌렸다. 바로 옥수수가 주원료인 버번 위스키였다. 럼의 자리를 버번 위스키가 차지하게 된다. 영국은 럼 배급 전통을 유지했지만, 1970년대 폐지했다. 과거에는 알코올로 힘을 얻은 선원들에 의존해 배를 움직였지만, 점차 정교히 운항하는 기술 기반으로 전환되면서 럼이 불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캡틴큐는 럼을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실제 럼 원액 비율은 매우 낮았다. 양주 원액 비율이 20%를 넘어가면 주세가 최대 318%까지 부과됐기 때문이다. 출시 초기에도 럼 원액이 소량 포함됐을 뿐이나, 나중에는 그마저도 아예 빠졌다. 그래서 ‘럼 스타일 소주’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고, 주종으로는 위스키·럼·증류주가 아닌 기타재제주로 분류됐다.

영국 해군의 상징성과 카리브 해적의 낭만을 모티브로 삼고 한국적 가성비를 기반으로 생산된 캡틴큐는 2015년 36년 역사를 마치고 단종됐다. ‘가짜 양주’ ‘리필 악용’ 등 부정적 이미지가 누적된 데다, 12·15년 숙성 위스키 같은 프리미엄 제품이 등장하면서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진 결과였다. 향이나 색소로만 양주인 척하는 술은 더 이상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에는 국산 오크 숙성주들이 인기다. ‘김창수 위스키’와 ‘기원 위스키’ 등 국산 위스키와 쌀을 증류해 만든 소주를 오크통에 숙성해 ‘라이스 위스키’라 불리는 ‘수록’과 ‘마한오크’, 사과를 증류한 ‘추사’, 고구마로 만든 ‘화심소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한정판 등은 오픈런이나 대기를 해야 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캡틴큐는 여전히 중장년에게 추억으로 남아 있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빈 병만 5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