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경기도 포천에 있는 워크웨어(작업복) 전문 매장 ‘워크업’. 땀을 잘 흡수하고 빨리 마르는 기능성 티셔츠, ‘건빵 주머니’라 흔히 부르는 카고 포켓이 다리 양옆에 붙은 작업 바지 등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적 디자인의 제품이 앞쪽에 진열돼 있었다.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이 대부분 중장년 남성일 거란 예상과 달리 가족 단위 손님 등 10대부터 70대까지 고객층이 남녀노소 폭넓었다. 방교환 워크업 대표는 “매장을 찾는 손님 중에는 작업할 때 입을 워크웨어를 찾는 현장직 근로자가 절반, 평소 입을 워크웨어 스타일 일상복을 구매하려는 일반 소비자가 절반”이라고 했다.
워크웨어 수요가 급증하면서 워크업은 빠른 속도로 매장 수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2월 포천에 첫 매장을 낸 지 1년 4개월 만에 130호점을 넘었고, 올해 말까지 200호점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패션 컨설턴트 이헌씨는 “워크웨어가 블루칼라를 넘어 모든 직종·계층·연령이 입는 일상복이 됐다”고 말했다.
◇일상에 스며든 산업 현장 유니폼
산업 현장의 유니폼이었던 워크웨어는 경기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의류업계에서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인사이트 파트너스에 따르면, 글로벌 워크웨어 시장 규모는 2022년 320억7876만달러(약 44조3700억원)에서 2030년 524억4815만달러(약 72조5400억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1조~1조50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워크웨어 시장도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워크웨어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원인으로는 MZ세대 중심의 ‘네오 블루칼라’의 등장이 꼽힌다. 과거 블루칼라 직종은 지저분하고, 위험하고, 힘든 ‘3D(Dirty·Dangerous·Difficult) 업종’으로 기피됐다. 하지만 MZ세대를 중심으로 현장직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채용 플랫폼 ‘캐치’ 조사에 따르면, Z세대 구직자의 63%가 “블루칼라 직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높은 연봉과 정당한 보상, AI 시대 대체 불가능성, 조직 문화로부터 자유로운 근무 환경을 매력으로 꼽는다. 인스타그램·틱톡·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단순한 육체노동이라는 편견도 깨졌다. 도배사·타일공·용접사 등 기술력과 전문성을 갖춘 고수익 직종으로 재평가되며 MZ세대를 끌어들이고 있다.
MZ세대 블루칼라들이 원하는 워크웨어는 기존의 작업복과 확연히 다르다. ‘워크업’도 이 같은 MZ세대의 성향을 감안해 일반 현장 작업복뿐 아니라 셰프·바리스타·목공 등 MZ세대가 선호하는 기술직 워크웨어를 판매하고 있다. 타일공으로 일하는 최한규(가명·38)씨는 “선배들이 흔히 입고 일하는 빨간 등산 조끼가 너무 싫었는데, 요즘은 세련된 워크웨어를 구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고 했다.
이들은 기능성과 안전성이라는 기본 요건에 더해 디자인·스타일·편의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공구를 효율적으로 수납할 수 있는 멀티 포켓과 카고 포켓은 작업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디자인 요소로 활용된다. 움직임이 편한 스트레치 원단이나 내구성이 강해 잘 찢어지지 않는 코듀라·립스톱 소재를 선호한다. 업계 관계자는 “MZ세대는 브랜드가 가진 스토리나 철학 등 ‘가치’를 소비하려는 경향도 높다”며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거나 현장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제작된 워크웨어에 관심이 높다”고 했다.
◇워크재킷, 오피스웨어가 된 노동자의 옷
코로나는 워크웨어 유행을 이끈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일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격식을 차린 옷보다 편하고 실용적인 복장을 선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워크웨어는 활동성과 편안함이 본질적 특성이기에 이러한 요구에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성복 캐주얼화(化)도 워크웨어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양복에 셔츠를 받쳐 입고 넥타이를 맨 회사원은 보기 힘들어졌다. 비즈니스 캐주얼로 정장과 일상복 중간 정도로 타협했던 기존 남성복 시장이 아예 일상복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일상과 일터에서 경계 없이 활용할 수 있는 워크웨어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남성복 캐주얼화의 최대 수혜자는 ‘프렌치 워크재킷’이다. 19세기 프랑스 노동자들이 입던 작업복에서 유래한 옷으로, 대표적 워크웨어 아이템이다. 대기업 직원 최승현(42)씨는 “겨울에는 따뜻한 울 소재 워크재킷, 여름에는 시원한 리넨 소재 워크재킷을 걸치고 출근한다”며 “양복 윗도리처럼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정장 같은 느낌이 나 출근복으로 애용한다”고 했다. 이헌씨는 “워크웨어는 본래 제복(유니폼)으로 출발한 경우가 많아서 편하지만 정장처럼 틀이 잡힌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날개 달아준 중대재해법
지난해 1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워크웨어 시장 성장세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평가다.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해 인명 피해를 유발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처음 시행됐고, 지난해 1월부터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작업자 안전과 효율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프리미엄 워크웨어를 찾게 됐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안전·기능성과 네오 블루칼라가 찾는 디자인을 결합한 워크웨어 수요가 늘면서, 기존 아웃도어·패션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을 활용해 워크웨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워크웨어가 침체된 의류업계에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코오롱 FnC는 ‘볼디스트’를 선보였다. 목수·가구 제작자 등 실제 건축·건설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이들이 요구하는 기능성과 편리함을 갖춘 워크재킷·워크베스트·워크셔츠·워크팬츠 등을 내놓았다. 방탄복에 사용될 만큼 내구성·내연성이 뛰어나 불에 잘 타지 않는 ‘아라미드’, 내마모성이 높아 쉽게 닳지 않으며 가볍고 빨리 마르는 ‘코듀라’, 아라미드 원사를 데님에 적용해 내구성을 더욱 높인 ‘워크-데님’ 등을 소재로 사용했다. 바지(워크팬츠)의 허리 부분에는 탈부착 가능한 ‘툴 파우치 포켓’을 달았다. 조끼(워크베스트)에는 장갑 등을 꽂아두는 행거, 못 보관할 때 쓸 수 있는 자석을 넣었다.
패션업체뿐 아니라 제조업체도 워크웨어에 뛰어들고 있다. 철강 업체인 대한제강은 2022년 ‘아커드’를 내놨다. 섭씨 1600도가 넘는 고온의 쇳물을 다루는 철강 현장에서 안전을 지킬 방법을 고민하다 작업복 개선에 나섰다. 현장 작업자 800명을 인터뷰하고 500명을 대상으로 제품을 테스트하는 등 현장 목소리를 담았다. 현장 특성과 작업 환경에 맞춰 최적화된 ‘맞춤형 프리미엄 워크웨어’를 표방한다.
산업 현장에서 입던 워크웨어가 일상복으로 활용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청바지는 1870년대 미국 골드러시 시대 광부들의 튼튼한 작업복으로 개발됐다. 청바지는 제임스 딘, 말런 브랜도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영화 속에서 입으면서 반항의 상징이 됐고, 1960년대 히피 문화 확산과 함께 자유와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에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고급 패션 아이템으로 선보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청바지는 계층과 문화를 넘어 모두가 즐겨 입는 옷이 됐다.
하지만 워크웨어가 의류·패션업계 전체를 주도하는 흐름이 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최근의 워크웨어 유행에 대해 패션업계 관계자는 “기능적으로 뛰어나면서 성별에 국한되지 않는 데다 새로운 패션을 추구하는 20~30대의 가치관과 통하는 만큼 워크웨어 인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