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평론가이기도 한 나민애 교수는 최근 어른을 위한 시 필사책과 어린이들이 읽기 좋은 동시집을 냈다. 그는 “특히 아이들이 동시를 많이 읽는 세상이면 좋겠다”며 “다섯 살짜리가 ‘아, 엄마랑 재뉴어리(January·1월) 철자 외우며 많이 혼났지’란 추억 말고, ‘그 알록달록한 시집 읽을 때 참 좋았지’ 같은 유년 기억을 가지면 좋겠단 마음”이라고 했다./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수포자(수학 포기자)’는 어려운 수학 문제가 양산했다고 치자. 국포자(국어 포기자)는 왜 늘어날까. 지난 7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공개한 ‘2024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따르면, 고2 학생 가운데 9.3%가 국어 기초학력 미달이었다. 2014년 1.3%였으니 10년 만에 미달자 비율이 7배로 늘어난 것이다. ‘기초학력 미달’은 다음 학년에 진급하면 수업을 못 따라가는 수준이다. 사실상 국어를 포기한 상태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수포자가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돼서 그렇지, 학생 10명 가운데 1명꼴로 국포자라는 건 정말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특히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풍력(風力)’의 뜻을 몰라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고3 학생이 있는가 하면 교실에서 “가로등은 세로로 서 있는데 왜 가로등인가요”라는 질문이 나오는 게 오늘날 교육 현장이다.

서울대 학부대학 나민애(46) 교수는 “학생들 국어 실력의 발목을 잡는 오적(五賊)이 있다”고 했다. 나 교수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문학사상 신인평론상을 통해 등단했다. 현재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필수 교양인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시인의 딸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는 ‘풀꽃’ 시인 나태주(80)가 그의 아버지다.

지난 8월 충남 공주에 있는 ‘나태주 풀꽃문학관’에서 아버지 나태주 시인과 딸 나민애 교수. /나민애 제공

◇학원 수업만으로 국어 실력 안 늘어

-학생들 국어 실력이 왜 떨어지는 거죠?

“요즘 아이들이 쉽게 접하고 쓰는 말은 디지털 은어나 줄임말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학교 시험에서 물어보는 건 책에 나오는 문어체와 어휘예요. 그걸 아이들이 잘 이해하고 풀어내려면 결국 책을 차근차근 읽고 소화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는 거죠. 디지털 기기에 시간을 뺏기고 책을 읽지 않으니까요. 최근 문제가 되는 문해력 저하와도 연관이 있어요.”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하는 게 어렵다는 학부모가 많아요.

“책을 보려면 심심해야 합니다. 요즘 애들은 놀 게 너무 많잖아요. 게임·유튜브·쇼츠…. 물론 인터넷이 지식의 보고도 맞고, 유튜브로 취향을 개발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만 하는 건 무서운 일입니다. 저는 김지하의 시 ‘오적’처럼, 부모들이 스마트폰·태블릿PC·게임기·노트북·데스크톱 컴퓨터 같은 전자기기를 오적으로 보고 더 적극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봐요.” 초6인 나교수의 둘째는 아직 스마트폰이 없다.

-인공지능(AI) 시대인데요.

“컴퓨터를 잘 활용하는 것과 그걸 가지고 게임만 하는 건 달라요. 한글 타자 연습하고, 코딩 배우고, 엑셀이나 PPT 만들기 같은 컴퓨터 활용 능력을 키우는 건 해야죠. 그런데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일찍 사주면 코딩을 잘하는 게 아니라 게임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죠.”

-학생들은 책의 요지를 정리해주는 학원에 갑니다.

“국어의 기초는 독서입니다. 모국어 실력은 절대로 짧은 시간 향상되지 않아요. 아주 긴 시간 듣고 축적해야 하는 방대한 세계입니다. 그런데 이걸 일주일에 1회 듣는 국어 학원 수업이나 문제집 풀이로 키우려 해선 안 됩니다. 텍스트 이해력은 문제 풀이만으론 결코 기를 수 없어요. 입시 제도가 아무리 변해도 책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도 중·고등학생을 위한 내신 국어 학원이나 수능 국어 학원은 있었다. 최근 학원가에서는 유·초등학생을 타깃으로 하는 독서·논술 학원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이런 학원이 얼마나 성행하는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대기를 걸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특히 문해력 논란이 학원들의 ‘공포 마케팅’을 낳고 사교육 업계를 키워 놓았다. ‘국어는 집 팔아도 안된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나 교수는 “많은 부모가 ‘국어’에 돈과 시간을 쓰고 있지만, 진짜 국어를 잘하는 일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 신입생들을 상대로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조사하셨죠.

“6학기 동안 서울대에 막 입학한 이과생 100명, 문과생 100명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때 책 많이 읽었느냐’를 묻는 설문을 했어요. 서울대 신입생 69%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근데 보통 서울대생들은 ‘공부 많이 했는지’ 물어보면 많이 했어도 ‘그렇다’고 쉽게 대답 안 하거든요. 이런 학생들 약 70%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답했다면, 실제 비율은 더 높다고 봤어요. 수능을 아주 잘 보거나 공부 잘하는 학생들 중에서 책에 푹 빠져 본 경험이 없는 학생은 찾기 어려워요.”

나 교수는 미취학 아이의 경우 ‘책으로 놀기’를, 초등 저학년의 경우 다양한 그림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줄글 책으로 넘어가는 발판 만들어주길 권했다. 초등 중학년 때 100~150쪽짜리 책을 통독해보는 경험을 가지면, 초등 고학년 때 인권 문제처럼 묵직한 독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중학생은 속독 능력 향상에 신경을 쓰면 좋은데, SF소설이나 환상문학 등이 도움이 된다. 책 읽을 시간이 적은 고등학생은 입시와 면접을 생각해 책을 고르고 발췌해서 집약적으로 읽어야 한다.

나민애 교수는 최근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갓민애’ ‘문해력계 오은영’으로 불린다. 인터뷰 날에도 광화문 교보문고에 나 교수가 나타나자 10분도 되지 않아 사인과 사진 촬영 요청이 밀려들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결국 국어의 기초는 독서더라

나 교수는 같은 과 선배인 남편과 결혼해 고2 딸과 초6 아들을 키우고 있다. 인터뷰하는 날에도 “애들 방학이라 이번 주 내내 돌밥돌밥(돌아서면 밥 짓는다는 뜻의 신조어) 하다 나왔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해 3월 ‘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다’(김영사)를 출간해 6개월 만에 22쇄를 찍었다. 한 달 평균 100여 건의 강의 요청이 들어온다. 책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과한 사교육 하지 않아도 된다. 책만 열심히 읽는다면.’ 역시나 ‘책 읽기’다. 나 교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마다 ‘엄마가 너희를 지키지 못해도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문해력이 있어야 해’라고 얘기했다”며 “두 아이 모두 책 읽는 일에는 정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밀려드는 강의 요청은 어떻게 하시나요.

“한 달에 4건 정도만 수락합니다. 본업인 학교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하는 게 첫째 이유이고, 둘째는 아이들 때문이에요. 솔직히 말해 강의 수락 기준도 ‘집에서 얼마나 가까운가’를 봅니다.”

-그런데, 왜 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까.

“모든 과목의 기본은 국어입니다. 국어를 잘하면 국어만 잘하게 되는 게 아닙니다. 다른 과목도 얼추 잘하게 돼요. 모든 지식을 이해할 때 국어가 필요하거든요. 국어로 문학만 배우나요? 수학도 결국 국어로 문제가 나오고, 과학이나 어려운 경제 지문 같은 것도 다 국어로 돼 있습니다. 국어가 잘 잡혀 있으면 아이들은 덜 힘들게 공부하고, 부모도 다른 과목에 쓰는 돈까지 좀 낮출 수가 있습니다.”

-책을 쓴 이유도 ‘부모들이 과한 사교육에 부담감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단 마음’이라 하셨죠.

“다들 사교육에 너무 치여 살잖아요. 저 역시 처음 애를 낳았는데 아무것도 모르겠는 거예요. 영유(영어 유치원), 일유(일반 유치원) 이런 준말부터 ‘빅4 영어 학원’ 같은 정보까지. 저한테 ‘왜 그렇게 애 공부를 안 시키느냐. 나중에 애 노는 물이 달라진다’고 대놓고 면박을 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얻은 결과가 다 좋지는 않더군요. 부모는 사교육비를 쓸 대로 쓰고, 아이는 번아웃이 올 대로 오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아버지 시집인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들고 있는 나민애 교수./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강의 평가 1위 비결은?

‘서울대 진학이 자랑스럽고 뿌듯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나민애 교수님의 대학 글쓰기 강의를 수강했던 시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최고의 수업이자, 인생 교수님.’

지난 1학기 나 교수가 수업한 ‘대학 글쓰기’ 강의 평가 중 일부다. 나 교수는 2013년 교수에 임용 돼 13년째 서울대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2019년에는 강의 평가 1위를 하기도 했다.

-평가가 좋은 이유가 뭘까요.

“학생들과 편하게 얘기하는 편이에요. 저는 제가 실패한 얘기를 많이 해줍니다. ‘얘들아, 선생님은 이렇게 해서 잘 못했는데, 너희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 하고요. 수업이 끝나면 두 명씩 남겨서, 일대일로 과제를 고쳐주는데 이게 좋았다는 학생도 많았어요. ‘내가 사회구성원으로서 좋은 글을 읽고 쓰는 존재가 되고 있구나’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게 큰 것 같아요.”

-흔히 글쓰기는 재능의 영역으로 여겨지지 않나요.

“예술적 글쓰기에선 그 얘기가 해당될 수 있어요. ‘한강 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어’ 그건 한 학기가 뭐예요, 대학 4년으로도 해결이 안 돼요. 그런데 업무적·논리적 글쓰기는 80%까지 훈련으로 극복이 돼요. 또 쓰기 안에는 내용도 들어가거든요. PPT가 덜 예뻐도 담고 있는 내용이 획기적이면 성공하는 것처럼, 문장이 매끈하지 않아도 주제 잘 뽑고 핵심 파악 잘하면 커버가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나민애 교수와 아버지인 나태주 시인. 앞에 놓인 책은 두 사람이 함께 쓴 책 '나만 아는 풀꽃 향기'(넥서스). 나 교수는 책에서 "가난이 반갑지는 않았지만 원망스럽지도 않았다"며 "그건 '우리'의 것이었으니까요. 아버지가 나 대신 가난을 다 막아 줬으니까요."라고 썼다./나민애 제공

◇가난하지만 1급수에 사는 열목어

나 교수를 소개할 때면 늘 부록처럼 끼어드는 말이 있다. ‘나태주 시인의 딸’. 베스트셀러 시인, 국민 시인, 풀꽃 시인…. 모두 나 교수가 성인이 된 이후에 붙은 수식어다. 그가 자랄 때 아버지는 늘 돈이 부족해 외상으로 책을 사던 가난한 교사, 그 외상값을 갚고 오는 길 다시 외상으로 책을 사는 무명 시인이었다. 그럼에도 딸은 “아버지에게 받은 유산이 너무 많아 여생 내내 들여다봐도 다 못 볼 정도”라고 했다.

그가 받은 유산 하나. 나태주 시인은 운전을 못 했다. 대신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는 시간, 교문 앞에 줄줄이 서 있는 승용차 사이 나 시인은 택시 요금을 손에 쥐고 서 있었다.

-한 번도 아버지가 모는 차에 타본 적이 없으시다고요.

“얼마 전에 여고 동창 모임에 갔는데, 친구가 그래요. ‘너네 아버지는 늘 인문학적인 지혜를 주셔서 나는 그걸 질투했어, 민애야.’ 제가 그랬죠. ‘나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탄 네가 부럽더라(웃음).’ 아버지 차에 탄 적은 없지만, 책은 가장 많은 집에서 컸어요.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늘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책이 많은 집에서 사는 건 달랐나요.

“1급수에 태어난 열목어가 된 느낌이에요. 1급수이고 맑고 깨끗하니까 열목어가 자기의 피와 살을 깨끗한 물로 채울 수가 있는 거잖아요. 저는 요즘 사람들이 자꾸 ‘너희 집 자가냐 전세냐’를 묻는데 이 질문이 바뀌면 좋겠어요. ‘책을 좋아하는 집이냐, 아니냐’로요. 중산층의 조건 역시 책과 가까운지 여부여야 한다고 봐요.”

-살면서 한 모든 연애를 아버지와 상담하셨다고요.

“아버지가 저희 집 로맨스 담당이세요. 엄마는 하나도 공감 못 하는데, 아버지는 늘 너무 잘 들어주셨어요.”

-나태주 시인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건 2012년 광화문 글판에 시 ‘풀꽃’이 게재되면서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아이 낳기 전까지도 아버지는 무명이셨어요. 제가 다 큰 다음에 아버지가 유명해져 버리신 거예요. 그런데 사실 그게 저한테는 별로일 때도 많아요. 아버지한테 제가 더 이상 1순위가 아니고, 독자들이 1순위라서요. 그렇다고 돈을 저한테 주실 것도 아니고(웃음)….”

나 교수는 “작가 사후 70년 간 상속인에게 있는 저작권도 나중에 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저는 아버지 저작권으로 돈 벌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제가 기여한 바가 없는데 받을 이유가 없지요.”

-얼마 전 낸 시 필사책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포레스트 북스)가 아버님 시집과 함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업을 충실하게 잇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를 이어 국수를 뽑는 국숫집 2대처럼요. 다만 우리 아버지는 시인이니까 판매하는 주 메뉴가 ‘시’인 거죠. 시 평론가라는 게 어떻게 보면 ‘시 큐레이터’잖아요. 좋은 시를 뽑아서 선물해 드리는 마음으로, ‘셸 위 시(Shall We 시)?’ 합니다.”

-시가 우리 삶에 어떤 효용을 주느냐고 묻는다면요.

“저도 시 공부할 때는 몰랐어요. 시가 도움이 될 거라고는. 그런데 책은 길게 못 읽을 때, 시는 한 편 읽을 수 있잖아요. 그게 위로가 될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막연하게 시 어렵다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버지와 제 역할은 이런 거 같아요. ‘아, 시 어렵지 않네, 참 좋은 게 있네. 나도 읽고 싶네’ 하는 마음을 주는 것.”

-좋아하는 시 한 편 소개해주신다면.

“김종삼 시인의 ‘어부’란 시가 있어요. 저는 누군가가 자살했다는 기사가 날 때, 아는 사람도 아닌데 되게 많이 울거든요. 그럴 때 이 시를 들려주고 싶어요.”

시는 이렇다.

“바닷가에 매어둔/작은 고깃배/날마다 출렁거린다/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중얼거리려고//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사노라면/많은 기쁨이 있다고”.

[아무튼주말 - 나민애 교수 영상 -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아무튼주말 게재전 사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