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9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대형 식료품 마트 체인 ‘트레이더 조(Trader Joe’s)’ 주요 매장 앞에 어둑한 새벽부터 줄이 길게 늘어섰다. 부활절 시즌을 맞아 트레이더 조가 한정 판매하는 미니 캔버스 토트백을 사려는 사람들이었다. 갖고 온 캠핑용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이도 많았다. 판매 가격은 2.99달러(약 4160원). 매장이 오픈하자 금세 품절됐다. 한정판이라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개당 1000달러(약 14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작년에도 트레이더 조 로고가 새겨진 미니 토트백이 출시된 후 한바탕 품절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트레이더 조는 미국 42주에 매장 약 600곳을 운영 중이다. 한국식으로 하면 ‘김씨네 잡화점’쯤 된다. 노(No) 배송, 노 온라인 쇼핑, 노 멤버십, 노 할인, 노 셀프 계산대라는 비즈니스 원칙이 있고, 다양한 PB(자체 브랜드) 상품과 감각적인 패키징, 재미있는 마케팅으로 양질의 제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판다. 소금·꿀 등 자체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오픈런’ 열풍이 불곤 하는데, 이 가게 로고가 박힌 캔버스백이 ‘사재기’ 대란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 인기가 한국에도 상륙했다. 올여름 길거리에서 이 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MZ부터 중년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트레이더 조 토트백은 장바구니로 제격인 52X36X15.5cm 크기의 3.99달러짜리 제품도 있지만 2.99달러짜리 미니 사이즈(32X25X5cm)를 훨씬 더 많이 찾는다. 끈과 바닥 부분이 감색·녹색 등으로 덧대진 모양인데, 최근 나온 파스텔 분홍·보라·민트·하늘색의 미니 사이즈 제품이 특히 인기다.
사실 가방 자체는 특별하다고 꼽을 만한 특징은 없다. 가격 대비 탄탄한 캔버스 재질에 ‘트레이더 조’ 로고와 산뜻한 파스텔 컬러의 조화 정도. 2.99달러라면 합리적인 소비라는 생각이 드는 수준이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사는 윤모(41)씨는 “매장별로 구매 제한이 걸려 있을 정도로 꽤 인기가 있다”며 “미국 사람들도 많이 찾지만, 요즘에는 여행 온 한국 사람들이 기념품으로 사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에서 유명해진 것도 ‘미국 여행 전리품’으로 출발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매장 오픈 1시간 전에 줄을 서라’ ‘주말보다는 평일 오전이 구매 확률이 높다’ ‘뉴욕 매장은 1인당 2개 제한이니 가족 모두 동원하라’ 같은 ‘구매 꿀팁’이 돈다. 서울 목동에 사는 김지수(44)씨는 “출장 갔다가 트레이더 조의 에코백 모델을 여러 개 사 와서 주변에 돌렸는데 아주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우리 돈 4000~5000원짜리지만 꽤 센스 있는 선물이 된다는 것이다. 김씨 자신도 트레이더 조에서 나오는 에코백을 종류별로 갖고 있다.
이 제품은 원래 미국 현지 매장에서만 살 수 있어 그 ‘희소성’이 작은 허영심을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레이더 조 에코백을 든 게 ‘나 미국 다녀왔다’ 혹은 ‘나 미국에 가족·지인 있다’는 인증인 셈이라는 것. 직장인 한지혜(38)씨도 “미국의 지인에게 트레이더 조 라지 사이즈 에코백을 선물받았는데 잘 들고 다녀서 인터넷을 뒤져 작은 사이즈 에코백을 또 샀다”고 말했다. 검색창에 ‘트레이더 조 에코백’을 검색하니 여러 판매자가 2만원대에 판매하고 있었고, 일반적인 에코백 가격을 생각할 때 2만원 언저리라면 과한 바가지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고 한다. 출퇴근 때는 라지 사이즈 에코백, 주말에는 검색으로 구매한 미니 사이즈 파스텔핑크 에코백을 즐겨 든다.
국내 판매 사이트에는 “미니 사이즈 핑크 재입고 되나요?” “정품 맞나요?” 같은 구매 후기·문의 글이 수백 개에 달할 정도다. 2.99달러짜리 장바구니를 2만원에 사면서 정품·가품 여부를 따져야 할 정도로 이름값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