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법인 카드(법카)는 결제를 회사가 하다 보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기기 십상이다. ‘개인적으로 조금 쓴다고 해서 회사가 어떻게 알겠어.’ 물론 이는 회사에 해를 입히는 범죄행위다. 여기에 관한 처벌 규정도 당연히 존재한다. 임직원이 업무와 무관하게 법카를 쓰면 업무상 배임에 해당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처벌 규정이 있다고 해서 법카 유용이 근절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피해를 본 회사가 당사자를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하다 보니, 횡령한 돈을 변제하는 방식으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단다. 그래서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법카 유용 사건은 대개 정치인들이 얽힌 경우다. 예컨대 2020년 교육부는 고려대 감사를 하던 도중 교수 13명이 법카를 부정 사용했다는 사실을 적발했는데, 업무 협의와 연구를 빙자해 유흥 주점에서 4년간 6700만원을 썼다고 한다. 이 자체만으로도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한층 크게 기사화된 것은 고려대 교수 출신인 장하성 주중 대사가 명단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문재인 정부에서 주창한 소득 주도 성장에 빗대 ‘소득 주도 여흥’이냐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다음 구절이다. “고려대는 해당 교수들에 대한 중징계 절차를 논의 중입니다. 장 대사는 지난해 정년 퇴임해 징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그는 문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주중 대사로 근무할 수 있었다. 장 대사는 국정감사에서 “유흥업소가 아닌 음식점에 갔다”고 해명했다가 위증 논란이 불거졌다.

장씨의 법카 유용이 우연히 얻어걸린 경우라면, 명지대 강규형 교수를 KBS 이사에서 해임한 것은 정치적 목적에 법카를 이용한 사례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정부와 여당은 공영방송 사장에 자기 사람을 임명하고 싶었지만, 당시 사장의 임기가 남아있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보수 7명, 진보 4명’이던 KBS 이사진을 ‘보수 5명, 진보 6명’으로 바꾸면 되는 거였다. 목표로 삼은 1명은 KBS 언론노조가 학교에 찾아가 퇴진 시위를 하자 바로 그만뒀다. 하지만 강 교수는 퇴진 시위를 포함한 온갖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텼다. 결국 문 정부가 최후의 수단으로 쓴 게 ‘법카 유용’이었다. 당시 KBS 이사 중에서 강 교수보다 많은 돈을 쓴 이도 여럿 있었지만, 감사원 조사 대상이 된 건 강 교수뿐이었다. 감사원은 강씨가 애견 카페에서 38만원, 집 근처 고깃집에서 58만원을 쓰는 등 2년간 327만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고 발표했고, 정부는 강 교수를 이사직에서 해임했다. KBS 장악을 위한 ‘표적 해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강 교수는 해임이 무효라며 소송을 냈고 1·2심은 물론 대법원도 해임이 부당하다는 선고를 내렸지만, 이미 KBS 사장은 정부가 원하는 이로 바뀐 뒤였다.

비슷한 장면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반복됐다. 남영진 당시 KBS 이사장은 고향 근처에서 수백만 원 상당의 확인되지 않은 물품을 법카로 구매하고, 또 회사 인근 중식당에서 한 끼에 300만원에 육박하는 식대를 결제하는 등 법카 유용을 했다며 해임 처분을 받는다. 민주당 김현 의원 등은 ‘방송 장악’이라며 반발했지만, 결국 정부는 원하는 이를 KBS 이사장으로 앉혔다. 남 전 이사장은 해임 취소 소송을 냈고, 강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1심과 2심에서 ‘해임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아낸다. KBS 이사 임명권자인 이재명 대통령이 상고를 포기하는 바람에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해임 취소가 확정됐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한 번씩 주고받았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지만, 현 정부와 여당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겨냥해 ‘법카’ 의혹을 집중 제기하고 있다. 이 위원장이 2015년 3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대전MBC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법카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7월 방통위원장 인사 청문회 기간을 연장해 가며 법카 유용 의혹을 부각시키고 민언련과 언론노조가 이 위원장을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고발하고 난 뒤에는 더 집요하게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민주당 신정훈 의원은 지난달 5일 행안위 전체 회의에서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에게 “신속하게 강제 수사하고 필요하다면, 혐의점이 드러났다면 구속 수사도 불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당은 이 위원장이 대전MBC 사장 사퇴 전날 법카로 빵을 100만원어치 산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법인 카드로 서울 자택 부근에서 44만원, 대전에서 53만원 정도의 과자류를 구입했다”며 “당시 대전MBC는 파업 중이었고 파업 기간에도 고생하는 비서실 직원, 환경미화원, 경비원, 운전기사들을 위해 5만원 안팎의 롤케이크나 쿠키류를 구입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법카 의혹만으로는 부족한지 ‘직권 면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위원장이 지난해 유튜브 방송에서 민주당을 비판한 발언을 한 게 국가공무원법상 정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이 법카로 누군가를 공격하는 게 이치에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도지사 시절 법카로 음식을 구입하는 등 경기도 예산을 개인 용도에 쓴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김혜경 여사도 경기도 법카를 유용한 혐의로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다만 이 대통령의 ‘경기도 법카 유용 의혹 사건’ 재판은 연기된 상태로 최소한 이 대통령 임기에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방통위원장도 임기가 있다. 기소까지 된 대통령과 달리, 이 위원장의 ‘법카 유용’은 의혹 단계다. 대통령과 동반 사퇴를 요구할 게 아니라면, 법카 공격을 멈추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