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탐험 때 블리자드 속에서 혼자 텐트를 치는 게 큰 걱정이었다. 사진은 얼어붙은 강원도의 강 위에서 혼자 텐트 치는 연습을 하는 모습./김영미 제공

“혼자 가지 마. 혼자서 떠난 멋진 사람들을 여럿 보았는데 다시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했어.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매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지. 결코 좋은 쪽으로 달라진 건 아니었어.”(펠리시티 애스턴 ‘세상의 끝에 혼자 서다’ 중에서)

펠리시티 애스턴(여·영국)은 남극 대륙(2011~2012년·59일)을 혼자 걸어서 최초로 횡단했다(2회 보급). 나의 횡단 루트(1회 보급)는 그녀의 역방향이지만 시작과 끝이 더 멀고 긴 거리다. 2023년 단독으로 남극점을 다녀온 후 횡단의 최종 결정을 고민하며 세 번째로 그녀의 책을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땐 생존을 위한 기술적 정보만 머리에 기록됐다. 얼어 죽을지도 모르는데 고독이나 외로움 따윈 한가한 소리 같았다. 2023년 남극점 탐험 때 51일간의 고립을 경험했던 나는 “혼자 가지 마”라는 구절을 읽고 명치를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정신적 고충이 결코 말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극한까지 가면 사람의 본질이 보인다. 생존을 위한 극도의 예민함으로 늘 날카롭게 각성된 상태다. 횡단을 앞두고 감내해야 하는 70일 치의 정신적 충격에 대한 걱정이 남극점 때보다 묵직하게 밀려왔다.

처음부터 혼자 떠날 계획은 아니었다. 둘이서 40일간 이탈리아로 산악 스키 전지훈련도 갔다. 8000m를 함께 등반했던 후배는 철인 3종으로 준비된 체력과 더불어 마음이 잘 맞았다. 우린 새로운 무언가를 원했고 나의 사심이 가득했던 ‘남극’을 향한 몇 단계의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나는 2013년 말에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고 이듬해 100일간의 자전거 대장정을 떠났다. 그 1년 사이 후배는 결혼해 엄마가 되고 ‘함께’라는 계획은 희미해졌다. 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습게도 ‘혼자 텐트를 어떻게 치지?’였다. 다른 누군가를 찾을 수도 있었지만 용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새로 구성된 팀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인생에 한 번쯤, 혼자 눈보라 속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혼자라도 떠나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게 뻔했다. 그 결심엔 아주 결정적인 진짜 중요한 이유가 있다. 긴 여정에 무사 귀환의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이 얘기는 아껴두고 싶다.

혼자 남극을 걷는 상상을 할 때면 2006년 에베레스트를 등반할 때 검은 절벽 위에 혼자 남겨졌던 순간이 떠올랐다. 우리 팀 10여 명이 그해 첫 번째로 정상을 향했는데 처음 8000m 위를 경험한 나는 팀에서 떨어져 8450m 지점에 혼자 뒤처졌다. 위를 올려봐도 아래를 내려다봐도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도움은커녕 내 목소리에 랜턴 불빛으로 깜박거리는 반응을 해 줄 인기척조차 없었다. 아침 해가 뜨자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발을 잘못 딛기라도 하면 2000m쯤 자유낙하할 정도의 낭떠러지가 한눈에 들어왔고, 그 언저리에 푹신해 보이는 구름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다. ‘어린 왕자’ 책 표지의 그림에서 동그란 지구 위에 홀로 서 있던 왕자처럼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만 같았다. 스물여섯의 나이와 등반 경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늦여름, 남극 물류 항공 대행사(ALE)에 남극 횡단과 남극점 탐험에 드는 예상 비용을 문의하는 메일을 보냈다. 이들은 비용 견적 대신 ‘탐험 역량 기술 질문지’를 보내왔다. 20여 년의 30번 넘는 등반 경력을 빼곡하게 보냈으나 남극 탐험에서 히말라야 등반 경험은 통하지 않았다. 모든 안전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단독’ 여정은 더욱 까다로웠다. 2021년 여름 보낸 메일의 답을 2022년 4월 중순에 받았고, 2023년 1월 16일, 1130㎞에 이르는 남극점 무지원 단독 탐험을 완수한 뒤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단독 횡단 준비’가 가능해졌다.

※한국인 최초로 남극 대륙을 단독 횡단한 산악인 김영미의 ‘남극, 끝까지 한 걸음’을 격주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