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한 남성이 웃옷을 벗은 채 질주하고 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뛰는데 상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상의(上衣)가 없으면 곤란할 수 있다.

러닝 인구 1000만명 시대, 공휴일이었던 지난 15일 저녁에도 여의도 한강공원은 러너들로 북새통이었다. 저 멀리서 근육질의 외간 남자가 대흉근을 출렁이며 뛰어왔다. 먼발치에서도 그 맹랑한 바운스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반라(半裸)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튿날 낮에는 경기도 분당 탄천 산책로에서 역시 원시성을 온몸으로 피력하며 웃옷을 벗어젖힌 남성이 포착됐다. 이날 이 러너를 ‘또’ 마주친 직장인 한모(41)씨는 “요즘 자주 보이는 할아버지인데 더운 건 이해하지만 보기 흉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등산으로 헐떡이는 심폐 및 복부 움직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탈족' 만화가 기안84. /인스타그램

‘상탈족’이 늘고 있다. 상의 탈의한 채 뛰는 사람들, 기록적인 폭염이 한몫했다. 나이·체형·직업 불문. 바지만 입고 등산로를 뛰는 만화가 기안84(김희민·41)뿐 아니라, 가수 조권(36)씨도 지난 21일 스스로 ‘알통 구보’라 칭한 상의 없는 러닝을 셀피로 인증했다. 이날 서울 최고 온도는 34도였다. 문제는 눈초리도 뜨거워졌다는 점. 지난달 탄천 산책로 일대에는 ‘상의 탈의 절대 금지’를 명시한 안내 현수막 10개가 설치됐다. 성남시청 관계자는 “아이들도 많이 다니는데 혐오스럽다는 불편 민원이 여럿 들어왔다”며 “현장에서 ‘얇은 옷이라도 입어달라’고 구두 전달하는 정도의 계도 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제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까지 간 문제다. 집 앞 공원에서 상의 탈의한 채 일광욕하다 벌금 5만원을 선고받은 한 남성으로 인해 위헌법률심판이 이뤄졌고, 2016년 헌재는 경범죄처벌법상 ‘과다 노출’에 대해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고 가려야 할 곳의 의미도 파악하기 어렵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후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엉덩이를 노출했을 때’라는 조항을 추가하는 법 개정이 이뤄졌다. 상반신은 합법이라는 얘기다.

'상의 탈의 절대 금지'(노란 글씨)가 명시된 경기도 분당의 산책로 안내 현수막 앞을 한 여고생이 지나가고 있다. /정상혁 기자

그러자 상탈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구속하지 말라”는 것이다. 과천에 사는 한 시민은 “체육공원 내 상의 탈의 운동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음에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안내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며 “그 이유가 민원 때문이라면 나 역시 왜 운동의 자유를 제한하느냐는 민원을 지속적으로 넣겠다”고 과천도시공사 측에 문제 제기했다. 온라인 러닝 커뮤니티에서도 갑론을박이 진행형이다. “유교 탈레반이냐.” “몸 자랑은 수영장 가서 해라.” 어떤 자유, 누구의 배려가 우선돼야 하는가.

인스타그래머블한 시각 효과, 과시적 본능은 다만 ‘TPO(시간·장소·상황)‘에 따라 민폐가 될 수 있다. ‘피지컬100’ 시즌2 준우승자인 유명 운동 유튜버 홍범석(39)씨는 최근 격투기 선수 김동현(44)씨 등과 함께 도심에서 ‘야성의 부름’에 응답했다. 티셔츠 없이(양말은 신고) 구릿빛 살갗을 뽐내며 골목길을 내달리고, 무거운 쇳덩이를 양손에 든 채 찻길 위를 걷는 영상을 촬영했다. 문제는 해당 장소가 동네 주민들이 생활하는 주택가, 차도였다는 점이다. “민폐 감지 레벨이 낮으면 관심받아 먹고살 자격이 없다” “그렇게 더우면 집에서 에어컨 틀고 해라” 같은 비판이 쇄도했다. 홍씨는 이후 “생각이 짧았다”며 사과하고 영상을 삭제했다.

운동 유튜버 홍범석씨가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 주택가에서 훈련하는 모습. /유튜브

머리에 열 나는 주제. 그러나 옷을 벗는 이유가 단순히 ‘더워서’라면 차라리 입는 편이 낫다. 웃통을 까면 피부가 바람에 닿아 즉각적인 시원함을 느낄 수는 있으나, 길게 보면 옷(섬유)이 땀 흡수·확산·증발을 도와 냉각 효과를 더 잘 일으키기 때문이다. 최효인 강북삼성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옷을 벗고 뛰면 심리적으로는 쾌적하게 느껴지겠지만 신체 표면만 마르고 정작 심부 체온은 내려가지 않아 ‘숨은 열사병’에 노출될 수 있다”며 “자외선으로 인한 피부 손상 및 외상 가능성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