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립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호프 다이아몬드’. 이 다이아몬드 소유자가 좋지 않은 일을 겪은 경우가 많아 ‘저주의 보석’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위키피디아

1980년대 중반, 석사를 마치고 독일문학을 계속 공부할지 말지 결정하지 못한 채 방황했다. 아데나워재단 장학생 선발에서 탈락했던 탓도 있었다(1년 후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장학생이 됐다). 방황 기간, 그동안 공부한 독일어가 아까워 유학은 가되 실용학으로 ‘보석 감정과 보석사(史)’를 공부할까 생각했다. 입학 허가서(Zulassung)까지 받았으나 독문학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도 유명인들이 패용하는 보석들을 유심히 보면서, 관련 책들도 틈틈이 구독한다.

유명 보석의 소유자 변천사는 권력과 부의 변천사를 말해준다. ‘보석으로 읽는 세계사’이기에 흥미롭다. 클레오파트라·아우구스투스(카이사르 후계자)·네로·유스티니아누스 1세(비잔티움 제국)·나폴레옹 등은 유난히 에메랄드에 집착했다. 에메랄드에 집착한 까닭을 따라가기만 해도 장편 서사가 된다.

에메랄드가 아닌 다이아몬드 이야기다. 프랑스 보석 상인 장 바티스트 타베르니에는 1666년 전후 3년에 걸쳐 인도를 탐험한다. 깊은 정글 속 힌두교 사원에 들어간 그는 거대한 신상에 달린 3개의 눈 중 가운데 박혀 있던 푸른 다이아몬드를 뽑아냈다. 명백한 도둑질이다. 프랑스로 귀국한 그는 1668년, 다이아몬드를 세공해 루이 14세에게 팔았다. 루이 14세는 정교한 장신구로 만들어 대대로 물려줬다. 보석은 ‘프렌치 블루(French Blue)’란 이름을 얻었다. 마지막 상속자는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1793년 프랑스 혁명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되고, 혁명의 혼란기에 ‘프렌치 블루’는 사라진다.

도난 공소시효가 끝난 1812년 ‘프렌치 블루’는 영국 런던에 나타났다. 얼마 후 네덜란드 은행 명문가 호프 가문으로 넘어간다. 이후 ‘프렌치 블루’는 ‘호프 다이아몬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1910년 쇠락한 호프 가문은 보석 명문가 카르티에에 소유권을 넘긴다. 카르티에는 1911년 미국 광산 재벌 상속녀 에블린 월시 매클레인(1886~1947)에게 보석을 판다. 그 사이 ‘호프 다이아몬드 저주설’이 늘 따라다녔다.

저주설은 힌두교 사원에서 보석을 훔친 타베르니에까지 소급됐다. 신의 물건을 훔쳐서 쪼갰기에 저주에 걸렸다는 것이다. 타베르니에는 프랑스에서 추방돼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1689년 러시아에서 사망한다.

매클레인 부인은 ‘호프 다이아몬드 저주설’을 비웃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에게는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석의 저주’가 그녀를 평생 고통스럽게 했다. 큰아들이 1919년 자택 앞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남편은 방탕한 생활과 정신 질환으로 1941년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딸은 1946년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자살설도 있다). 자식과 남편을 잃은 매클레인 부인은 폐렴으로 1947년 쓸쓸하게 죽는다. 그 순간까지 ‘호프 다이아몬드’를 목에 걸고 있었다. ‘호프 다이아몬드’ 소유권이 보석상 해리 윈스턴에게 넘어갔다. ‘저주설’ 때문에 더 이상 구매자가 나서지 않자 윈스턴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하고 만다.

진정, 보석의 저주 탓일까? 저주의 보석을 소유하고도 탈 없이 후손에게 넘겨준 이들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해당 보석 주인이 바뀔 때쯤 되면 가문의 운이 다했거나 탐욕·허영·사치에 빠진 이들이 소유했다는 점이다.

2022년 6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 기간,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동포 만찬 자리에서 김건희 여사가 반클리프 앤 아펠(1906년 창립된 프랑스 최고 보석 회사) 제품인 ‘스노플레이크(눈송이) 펜던트 목걸이’를 착용한 장면이 보도됐다. 이것은 반클리프 앤 아펠 회사 장인들이 1940년대부터 제작해 온 ‘스노플레이크’ 모티프를 잇는 고급 컬렉션(시리즈)의 일부이다. 참고로 영어 단어 ‘snowflake(눈송이)’는 ‘너무 예민해 쉽게 상처받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보석과 사람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 보석마다 발산하는 기(氣)가 다르기 때문이다. 진주와 궁합이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에메랄드가 맞는 사람이 있다. 김건희 여사와 ‘눈송이’ 보석의 궁합이 맞았는지 궁금하다.

보석은 잘못이 없다. 구매 능력이 있고 보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당하게 권장돼야 한다. 장롱 속의 보석은 보석이 아니다. 밖에 나와 빛에 쪼일 때 보석은 기를 발산해 패용자에게 영향을 준다. 패용해야 할 이유다. 김건희 여사가 보석을 패용할 수는 있다. 김 여사가 법을 위반했고 “빌렸다” “모조품이다” 같은 거짓말을 한 게 죄였다.

다만, 김 여사 일로 인해 한류를 더욱 빛낼 수 있는 보석 문화의 가치가 희석돼서는 안 된다. 보석이 사치와 허영의 상징이라는 생각을 바꾸면, 기술·디자인·스토리가 결합한 문화 산업이 드러난다. 보석 문화 활성화는 국격의 문제이며, 문화 강국으로 가는 새로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