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이선호(47)씨는 최근 주말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아내(41)에게 보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뭐야, 완전 영포티네ㅋㅋㅋㅋㅋ.”
‘영포티(young forty)? 오. 그럼그럼, 우리가 40대 같지는 않지. 아직 죽지 않았어!’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다들 여전하네. 그래도 내가 제일 낫지?”라는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였다.
이씨가 나중에 들은 설명을 종합하자면, 땡! 그는 완전 잘못 짚었다. 2015년쯤 등장한 ‘영포티(젊은 40대)’는 본디 ‘기존 중년과 달리 트렌드에 민감하고 젊은 취향을 향유하며 소비하는 40대’를 일컫는 말이다. 스마트폰과 SNS를 능숙하게 다루고, 건강·취미·자기 계발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구매력을 탑재한 4050은 분명 이전의 중년과는 다르다.
하지만 2025년의 ‘영포티’는 용례가 바뀌었다. 눈치 없이 영원히 청춘이고 싶은 철부지 중년, 아직도 자신이 젊고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1970~1980년대생을 비꼴 때 많이 쓰인다. 한 보험사 광고에선 이제 ‘나이X0.8’을 해야 요즘 나이가 된다’는 말도 나왔다. 마흔이면 서른둘, 쉰이어야 마흔이다. 신체 나이도, 사회적 나이도 훨씬 젊어진 것. 그런데 그동안 영포티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영포티 패션은 무엇인가
“당신 친구들 봐. 두 명이나 ‘스투시’ 티셔츠 입었네? 얼씨구, ○○씨 입은 옷은 ‘우영미’ 맞지?” 아내가 휴대폰 화면의 사진을 톡톡 치며 깔깔깔 웃었다. 스투시와 우영미는 이씨도 좋아하는 브랜드다. 재작년 하와이 여행을 갔을 때 산 ‘스투시 호놀룰루’ 티셔츠는 요즘도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이씨는 “스투시 티셔츠에 반바지, 수프림 모자를 쓰고 나이키 조던을 신은 4050 남자, 아예 정형화된 ‘영포티 룩’이 있더라”고 했다. “왜 비하의 대상이 됐는지는 아직도 이해는 안 돼요. 하지만 주말 번화가에서 마주치는 내 또래 남자들의 익숙한 옷차림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더라고요.”
패션 커뮤니티 등에 정리된 ‘영포티 브랜드’는 이렇다. 스투시, 슈프림, 우영미, 준지, 솔리드옴므, 스톤아일랜드, 아미, 나이키(조던), 옴므플리세…. 부쩍 ‘○○○은 영포티 브랜드인가요?’ ‘이제 ◇◇◇은 아재 브랜드죠?’ ‘△△△ 백로고티 영포티 옷이다 vs. 아니다’ 같은 글이 자주 올라오고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활발하다. “누가 입느냐에 따라 다르죠. 배 나오고 머리숱 없는 사람이 입으면 영포티” “지금 영포티라는 말 나오는 브랜드 다 거르면 벌거벗고 다녀야 돼요” “그냥 내가 좋은 거 입고 삽시다”….
이 ‘영포티냐 아니냐’ 도마에 오르면 대부분 ‘영포티 맞음’이라는 확인 사살로 귀결된다. 패션에 관심을 두고 사는 40대 남성의 취향이 쏠리는 브랜드가 분명 있다는 얘기다. 어떤 브랜드의 옷인지 100m 밖에서도 알 수 있는 특징적인 ‘로고 플레이’가 있고,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잘나갔던 시절이 있고, 꽤 값이 비싸다는 공통점이 있다.
40대 후반인 이제훈씨는 “티셔츠 한 장에 30만원 가까이 하는데 아웃렛에서 자주 마주치는 것 같다 싶으면 영락없이 ‘영포티룩’이 되더라”며 “스톤아일랜드, 우영미 티셔츠를 다 치웠다”고 말했다. 무역업을 하는 김모(50)씨는 “20년 전에도 입던 스투시를 계속 입는 것뿐인데 한순간에 젊어 보이려 애쓰는 아재가 됐다”고 말했다.
MZ가 되고 싶은 AZ들?
영포티 패션 이전에는 ‘신도시 아재룩’이 있었다. 만화영화 ‘마블’ 로고가 붙은 스냅백과 스키니한 조거 팬츠, 유행이 지난 나이키 신발과 지샥 손목시계. 여기에 ‘패밀리카’의 정석인 SUV 카니발까지 중산층 유부남을 그려냈다. 가정과 밥벌이라는 현실의 무게 탓인지 취향은 유행에 뒤처진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트렌드를 좇는 영포티와 차별점이 있다.
그렇다면 왜 영포티는 유독 ‘긁히는’ 느낌일까. ‘젊은 척, 젊은 줄 아는 아재’, 조롱의 뉘앙스가 짙다. 여기에서 방점은 ‘젊은 척’에 있다. 멀쩡한 마케팅 용어 ‘영포티’에 조롱의 뜻을 담기 시작한 것은 2030이다.
현재 영포티로 분류된 브랜드들은 몇 년 전까지 2030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MZ가 주도한 유행과 트렌드에 4050이 올라타기 시작하면서 MZ는 빠르게 이탈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러닝화 브랜드 ‘호카’, ‘온’ 등의 주가가 빠지는 건 ‘아저씨들이 신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증권업계 분석도 나왔다.
상대적으로 여성 영포티는 패션으로 한데 묶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젊음에 대한 욕망’이라는 면에서 일맥상통하는데, SNS에서는 ‘아줌마 릴스(짧은 영상)’가 밈(meme·유행 콘텐츠)이 됐다. 비교적 젊어 보이는 4050 여성이 율동을 하거나 웃는 영상에 ‘아무도 내 나이를 맞힌 사람 없음’, ‘40대지만 20대 같은 코디’, ‘저 40대인데 20대에게 번따(전화번호 따기) 당했잖아요’ 등의 문구를 띄워 놓는 식이다. 여기에는 대부분 ‘동안호소인이냐’ ‘나이 맞혀보라는 릴스는 죄다 50대다’ 같은 댓글이 달린다.
‘서윗영포티’는 또 무엇인가
상당수 4050은 커리어를 적극 개척하고 건강 관리에 철저하며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기는 모습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쌓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만 젊은 감각을 내세울 뿐 실제로는 ‘꼰대’의 면모를 보이는 영포티도 많다. ‘서윗영포티’가 대표적이다. 서윗은 ‘스윗(sweet)’을 경상도 식으로 읽은 것. 영포티라는 말에 약간의 애잔함과 쓸쓸함이 묻어 있다면, 서윗영포티는 그저 혐오와 불쾌감으로 점철된 단어다. 흔히 젊은 여성에게 부적절한 관심을 보이는 중년 남성을 뜻한다. 유튜브에는 ‘상위 1%라고 착각하는 40대들의 홍대 헌팅’, ‘알바생 번호 따는 아저씨’ 같은 콘텐츠가 올라와 있다. 이들은 본인은 스마트하고 경험 많은 ‘중년의 매력남’이라고 생각하고, 젊은 남녀를 대할때 이중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직장인 커뮤니티 등에도 스윗영포티 경험담·목격담이 올라온다. 20대 신입 여직원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40대 유부남, 웬 아저씨가 ‘퇴근하고 삼소(삼겹살에 소주)하자’는 쪽지를 주고 갔다는 대학생 카페 알바의 사연 등이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안모(37)씨는 “요즘은 겉모습이나 취향으로는 나이나 결혼 여부를 가늠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관리자 급인 40~50대가 과거보다 덜 권위적이고 열려 있어 소통이 수월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영포티는 정치적 맥락에선 보수세가 강한 젊은 층과 대비되는 친여 성향의 4050을 겨냥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조국 사태 등을 계기로 ‘맹목적 좌파’에서 떨어져 나온 4050도 많지만 상당수는 현재 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보수 진영의 잘못은 조금도 참지 못하면서 친여 진영의 내로남불·부정에는 눈을 감는 그들의 ‘선별적 도덕률’에 대한 비판이 많다. 2030은 그들 나름대로 “4050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동안 우리들은 상승할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기성세대와 MZ 사이에 낀 4050에 대해서는 시선이 여러 갈래로 나뉘기 때문에 꼰대·아재·아조씨 등 호칭이 다양한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꼰대·영포티 같은 멸칭부터 호의적이고 친근한 느낌의 ‘아조씨’까지 다양한 시각이 있는데, 개인의 개성이 강해지면서 나이를 기준으로 묶는 세대론의 의미는 갈수록 약해진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영포티들은 사실 ‘영포티 패션’이나 ‘서윗영포티’가 무엇인지 모를 터다. 건강하고 슬기롭게, 그리고 가능한 한 젊게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을 맞으려는 생활인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