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부 인형. ‘예쁨’과는 거리가 먼 이 인형은 전 세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연합뉴스

귀까지 찢어진 입, 뾰족하게 튀어나온 이빨 9개, 얼굴을 뒤덮은 털…. ‘예쁨’과는 거리가 먼 이 인형이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라부부(Labubu)’ 얘기입니다. 미국에서는 이 인형을 사려는 사람들이 개장 6시간 전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이달 초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복면을 쓴 남성 4명이 인형 판매점에 침입해 라부부를 7000달러(약 1000만원)어치 훔쳐 간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라부부는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중국 완구 기업 팝마트가 만들었습니다. 중국산이지만 값이 아주 싼 편은 아닙니다. 정품은 20만원이 넘는 것도 있습니다. 한정판·특별판은 중고 시장에서 정가의 수십 배로 거래되기도 합니다.

라부부 열풍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미 언론과 경제학자들은 ‘트리토노믹스(treatonomics)’의 한 단면으로 분석합니다. 트리토노믹스는 ‘treat’(선물·대접)와 ‘economics’(경제학)를 합친 말로, 경기 침체와 미래 불확실성 속에서 ‘작은 사치’를 통해 심리적 만족을 얻는 소비 트렌드를 가리킵니다. 얼핏 ‘립스틱 효과’와 비슷해 보이는데요. 경제 상황이 안 좋아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명품처럼 비싼 건 사지 못하고 대신 소소한 사치품을 사는 현상 말이에요.

하지만 트리토노믹스는 단지 기분 전환만을 노리는 게 아니라 ‘잊지 못할 경험’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립스틱 효과보다 한 단계 진화한 개념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다른 데서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 재결합 투어를 보기 위해 100만원 넘는 돈을 기꺼이 지출하는 게 트리토노믹스 사례라고 미 CNBC는 전했습니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순간을 위해선 과감히 지갑을 연다는 거죠.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 이후에도 불확실성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트리토노믹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기 위로 방식이라는 거죠.

이는 바꿔 말하면, 불확실한 시대에도 여전히 삶의 의미를 붙들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몸짓 아닐까요.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이 강조했듯,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도록 하는 가장 큰 힘일 것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