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30대 사이에 외모로 참가 여부를 결정한다는 ‘외모 승인제 파티’가 유행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나이 33세, 키 159.8㎝(컨디션 좋으면 160.8㎝), 몸무게 52㎏, 아침 공복에는 50.8㎏.’ 이 모든 것을 공개했건만 왜 연락이 없을까. 사진 속 내 외모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초조하게 휴대전화를 붙들고 기다리길 3시간째, 드디어 메시지가 왔다.

“미승인 안내. 결이 맞지 않아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아이돌 오디션이라도 봤느냐고? 아니다. 단지 끼고 싶었을 뿐이다. 꽃 같은 청춘들이 모여 서로의 짝을 찾는다는 파티 자리에.

최근 20~30대 사이에 외모로 참가 여부를 결정한다는 ‘외모 승인제 파티’가 유행하고 있다. 매달 지원자가 많게는 수천 명일 정도로 인기다. 희망자가 주최 측에 자신의 사진을 보내면 외모 검토(?) 후 참가 여부를 결정해 주는 방식. 참가비는 4만~7만원 선이다. 이성을 만날 때 중요하게 여겨졌던 직업·연봉·학벌 세 가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심지어 ‘직업 발설 금지’를 내거는 곳도 있다. 직접 3곳에 지원해 봤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며 이런 곳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직 외모만 봅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외모 승인제 파티를 검색하니 수많은 업체 정보가 쏟아졌다. ‘서울대와 대기업, 여기선 스펙이 아닙니다’ ‘연봉 23억 의사도 못 옵니다’…. 다음 문구가 뼈를 때린다. ‘오직 외모로만 입장 가능.’

일단 홈페이지 신청 버튼을 눌렀다. 모집 규모는 남녀 각 30~60명 정도. 일종의 집단 소개팅인 셈. 적지 않은 규모였지만 대다수의 날짜가 ‘모집 마감’이었다. 짧은 질문에 답을 적어 나갔다. 주로 나이나 키, 사진으로 외모를 확인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 ID(아이디) 등을 물었다. 또 하나. 얼굴이 잘 보이는 ‘본인 사진’ 1~2장은 필수 제출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전신 사진이 필요하다”는 곳도 있었다.

결국 사진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실시간 모습을 찍어 올리는 건 아닌 거 같았다. 숍에서 헤어·메이크업했을 때의 사진을 찾았다. 첫 업체에 보냈다.

두 번째 업체의 경우 ‘나이 제한’이 있었다. 남자 2000~1990년생, 여자 2002~1992년생 사이만 참가 가능. 입장 전 신분증까지 확인해 틀린 정보가 있으면 출입이 불가하단다. 나이 제한에는 걸리지 않았다. 적당한 사진을 골라 첨부했다. 마지막 업체에 올린 사진도 고르면서 신중을 기했다. 어느새 자존심 싸움이 되어 있었다.

◇한 달 신청자만 3000여 명

‘입장 시간 오후 8시 정각까지 서울 성북구의 파티룸으로 와 주세요. 20분 이상 늦으면 입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결과는 2곳 합격, 1곳 불합격. 합격 메시지에는 “화려할 필요는 없지만 평소보다 분위기 있게 입고 와 달라”는 ‘드레스 코드’가 적혀 있었다. 반면 불합격 통보 메시지에는 “참가비를 환불해 드리겠다”는 서글픈 문구가.

외모 승인제 파티는 주로 이벤트 기획 업체나 게스트하우스·파티룸 관계자 등이 주최한다. 한 업체는 지난 3월 서울 동작구 사당에서 첫 파티를 연 뒤 이달까지 총 5만7000여 명의 신청서를 받았다고 한다. 이 업체는 “월 신청자가 3000명 이상”이라며 “하루 평균 110명의 신청서를 매일 4시간씩 검토한다”고 안내했다. 승인율이 평균 27%에 불과하단다. 이 업체 대표 이승후(30)씨는 “외모가 뛰어난데 소개팅이나 헌팅포차, 클럽을 부담스러워하는 지인들을 보면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 파티를 기획하면 어떨까 생각했다”며 “외모에서부터 호감인 사람들이 가까워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매주 금·토요일 홍대입구역에서 파티를 여는 또 다른 업체 역시 “신청자가 많아 대기해야 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모인 이들은 진행자의 진행에 맞춰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고 ‘미니 게임’ 등을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남성 장모(26)씨는 “일대일로 만나는 소개팅은 사진과 다른 외모의 상대가 나오면 실망하지 않느냐”며 “외모 승인제 파티는 여러 명이 나오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한 20대 여성은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건이 좋아도 호감이 안 생긴다”며 “먼저 외모를 확인한 후 알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외모 승인제’ 확산이 외모를 학벌·직업 못지않은 자산으로 여기는 요즘 젊은 층의 가치관을 반영한다고 본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을 망설이는 젊은 층이 많지만, 결혼은 결국 만남에서 시작된다”며 “외모를 기준으로 한 파티를 가볍게만 볼 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만남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직 일부 젊은 층 사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점차 확산된다면 외모 지상주의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