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법이 시행 중인 1920년대 미국. 불법 제조한 밀주(密酒)는 맛이 금세 변하기 십상이었다. 변질을 막기 위해 술에 향신료와 과일 주스, 시럽과 탄산수를 넣어 유통했다. 칵테일의 대중화가 시작된 것이었다. ‘금주법 폐지’를 제1공약으로 내세워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 금주법이 폐지되자 드라이 마티니로 축배를 들었다. 미국에서 대중화된 칵테일 문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 주둔한 미군들에 의해 퍼져 나갔다. 아시아·유럽·남미 등 현지 재료와 로컬 식문화가 한잔 술에 담기면서 독특한 칵테일 레시피들이 탄생했다. 칵테일을 ‘단순한 술이 아닌 시대와 문화를 담은 한잔의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다.

마카오 윈 팰리스 리조트는 마카오의 화려함을 상징하는 곳이다. 실내에는 금빛이 번쩍거리고, 수영장에는 꽃 장식이 눈길을 끈다. /마카오=이미지 기자

지난 7월, 아시아에서 칵테일 좀 만든다는 바텐더들이 마카오에 집결했다. 홍콩·서울·싱가포르·방콕 등 아시아 주요 도시에 있는 최고의 바를 선정하는 ‘아시아 50 베스트 바’ 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행사가 열린 곳은 마카오의 윈 팰리스 리조트. 실내는 물론, 화장실과 칫솔 하나까지도 번쩍거리는 황금색으로 수놓고 호텔을 가득 메운 생화(生花) 향기가 온몸을 감싸는 이 리조트는 ‘마카오의 화려함’을 상징하는 장소다. 로비에 첫발을 내딛자 강렬한 형광 빨간색·파란색 등이 섞인 불사조 모형이 번쩍이는 황금 줄무늬 알에서 깨어 날아오르고 있었다. 화려한 칵테일을 선보이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장소는 없을 듯했다.

마카오 윈 팰리스 리조트는 마카오의 화려함을 상징하는 곳이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불사조. /마카오=이미지 기자

◇밤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한잔

‘바 업계의 빌보드 차트’라 불리는 아시아 50 베스트 바 리스트 하나만 있다면 아시아 어느 나라에 있든 그날 밤을 마무리할 칵테일 한잔을 만날 수 있다. 300명 이상의 바 업계 전문가와 주류 전문 기자, 칵테일 애호가 등이 작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아시아 지역의 바를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투표해 결정한다. 매년 25%의 평가단을 새 인물로 교체하고,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와 파트너십을 맺어 심사의 공정성을 담보한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바에서 마시는 칵테일로 밤을 마무리하면 크게 실패할 일은 없을 확률이 높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올해 발표된 '아시아 50 베스트 바' 명단. 각 도시 별로 어떤 바를 찾아갈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아시아50베스트바

행사 며칠 전부터 윈 팰리스 곳곳에서는 시간대별·장소별로 바텐더들이 돌아가며 칵테일을 내놓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1위에 이름을 올린 홍콩의 ‘바 레오네’를 만나기 위해 초록색 커튼으로 가려진 윙 레이 바의 입구로 들어섰다. 사람들의 손에는 씁쓸한 맛의 캄파리를 베이스로 한 빨간 네그로니 칵테일이 들렸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씁쓸하면서 달콤한 과일 향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마카오=이미지 기자

방콕의 3대 루프톱 바로 꼽히는 바 사톤(48위)은 통째로 얼린 토마토를 넣은 술을 내놓았다. 이름하여 ‘방콕 브런치’다. 토마토의 감칠맛으로 시작해 매콤한 끝 맛이 남았다. 돼지고기와 매운 고추, 바질을 넣고 볶은 태국 요리 팟 크라 파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생소하지만 기분 좋은 매콤함이 인상 깊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지거앤포니’(3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펜로즈’(10위), 일본에서는 ‘펀치룸 도쿄’(36위)에서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겠다.

밀려드는 손님에 칵테일은 매진되기 일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텐더들은 시종일관 웃으며 칵테일을 건넸다. /마카오=이미지 기자

많은 이의 진로를 바꿨다는 만화 ‘바텐더’는 바텐더를 ‘딱딱한 바(bar)에 상냥함(tender)을 불러놓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낮부터 밤까지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팔이 떨어져라 칵테일 셰이커를 흔들면서도 미소를 잃는 바텐더는 없었다. 패션후르츠 껍질에 불을 붙여 건네준 칵테일, 오이를 참깨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을 술로 만들어낸 네그로니 칵테일 등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술의 변주에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마카오=이미지 기자

◇마카오에선 안주가 해장도 된다

달콤하게 혹은 씁쓸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칵테일도 결국 술은 술. 한 모금씩 마신 술이 적당히 오르면 해장이 필수다. 마카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미식 창의 도시(Creative City of Gastronomy). 윈 팰리스는 포브스 트래블 가이드가 선정한 5성급 레스토랑을 4곳이나 보유한 유일한 리조트다.

멀리 나갈 것 없이 윈 팰리스 리조트 1층 ‘셰프 탐스 시즌스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미쉐린 2스타를 받은 광둥식 중식당이다. 미쉐린이라는 수식어에 주눅 들 필요 없다. 이 식당을 책임지는 탐 쿽 펑 셰프가 매일 두 번씩 시장에 가서 사 온 신선한 재료로 만든 요리를 낸다. 육즙 가득한 딤섬만 먹어도 이름값을 느낄 수 있다. 바삭하고 부드러운 페스트리에 달콤 짭조름한 광둥식 돼지 바비큐를 올린 딤섬도 추천 메뉴다. 훈연한 어린 비둘기 요리는 한국에서 쉽게 맛볼 수 없기 때문에 도전해볼 만하다.

윈 팰리스 리조트 '셰프탐의 시즌스'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는 바베큐 딤섬. /마카오=이미지 기자

무엇을 먹을지 고민될 때는 18개의 아시아 유명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은 ‘고메 파빌리온’을 찾아가면 된다. 영국 유명 디자인 그룹 데이비드 콜린스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아치 모양의 입구와 샹들리에는 이곳을 단순한 푸드코트라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고급스럽다.

마카오 윈팰리스 리조트의 '고메 파빌리온'. /마카오=이미지기자

홍콩 유명 인도 음식점 릴라(Leela)에서는 감자채를 튀겨 만든 바구니에 병아리콩과 채소를 담아낸 메뉴를 꼭 시켜야 한다. 새콤달콤한 소스가 바삭한 감자채와 어우러져 다채로운 맛을 낸다. 100년 전통의 일본 장어 덮밥 맛집 기쿠카와, 중국 광저우식 생선죽으로 미쉐린 추천 식당에 세 번이나 이름을 올린 용주오도 이곳에서 전부 만날 수 있다.

고메 파빌리온에는 홍콩의 유명 인도 음식점 '릴라'도 자리 잡고 있다. 감자채로 만든 바구니에 병아리콩과 채소, 소스를 담은 요리. 직원이 먹기 쉽게 잘게 부숴준다. /마카오=이미지 기자

마카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포르투갈과 마카오의 음식 문화가 합쳐져 탄생한 ‘매캐니즈’다. 유네스코가 2017년 ‘세계 최초의 퓨전 요리’로 공인했을 만큼 독특한 음식 문화다.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포르투갈 레스토랑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타이파 빌리지 근처의 ‘아말리아(Amalia)’다. 토마토 소스에 해물과 밥을 넣고 졸여낸 ‘해물밥’은 안주와 해장 모두에 탁월한 메뉴다. 해장하러 갔다가 포르투갈 최북단 지역에서 생산된다는 그린 와인 한 병을 시키게 될지도 모른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마카오의 포르투갈 식당 '아말리아'의 해물밥. 한국인들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맛이다. 해장으로도, 안주로도 좋다. /마카오=이미지 기자

국물로 해장하는 한국인들은 신무이 굴국수에 모인다. 평소 잘 먹지 않던 고급스러운 음식에 놀란 뱃속이 테이블에 놓여 있는 고추 장아찌와 김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졌다. 면의 굵기를 정하고, 굴 국수에 어묵과 숙주, 파 같은 고명을 추가했다. 시원한 국물에 저절로 ‘크으’ 소리가 난다. 잘게 자른 배추로 어설프게 만든 김치는 달달한 맛이 강하지만 공짜로 제공되는 반찬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감사히 먹게 될 따름이다.

한국인은 역시 국물과 김치가 필요하다. 신무이 굴국수에서 만난 김치와 갓 장아찌, 고추 장아찌에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마카오=이미지 기자

◇하늘에서, 물에서 즐긴다

먹고 마시기만 할 순 없다. 윈 팰리스 리조트에서는 80만 갤런의 물이 담긴 거대한 호수에서 펼쳐지는 분수쇼 ‘퍼포먼스 레이크’가 매일 펼쳐진다. 낮 시간에는 30분 간격, 해가 진 후에는 20분 간격으로 감상할 수 있다. 호텔 앞 호수를 가로지르는 케이블카 ‘스카이 캡’은 윈 팰리스 리조트 투숙객이 아니어도 무료로 탑승할 수 있지만 투숙객은 길게 줄을 서지 않고 전용 통로로 입장할 수 있다. 시간만 잘 맞추면 케이블카 안에서 분수쇼를 내려다보는 경험도 할 수 있고, 야경을 조망하는 데도 안성맞춤이다.

마카오 윈 팰리스 리조트는 마카오의 화려함을 상징하는 곳이다. 실내에는 금빛이 번쩍거리고, 수영장에는 꽃 장식이 눈길을 끈다. /마카오=이미지 기자

그간 먹은 밥과 술로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다면 부지런히 수영장을 오가도록 하자. 어디 하나 밋밋한 공간이 없는 이 리조트는 수영장도 화려하게 꾸몄다. 연꽃을 형상화한 조각이 놓인 입구를 지나자 화려한 꽃무늬 타일이 깔린 수영장이 나왔다. 약간 서늘하게 느껴지는 물에서 첨벙거리다가 자쿠지로 옮겨 몸을 따뜻하게 데운다. 파란 하늘과 번쩍이는 금색 건물, 빨간 케이블카가 부지런히 오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카오의 빛깔을 칵테일로 만들면 어떤 맛의 술이 나올지, 노곤하게 누워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