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대전역에서 내렸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창가 너머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숨을 내쉬면 창가에 하얀 김이 서렸다. 아버지는 대전역 가판대에서 우동 한 그릇을 시켰다. 손에서 땀이 났다. 아버지가 제시간에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눈이 내렸던가? 바람이 불었던가? 어른들은 서로 가까이 서서 어깨를 부딪혔다. 가락국수라고 부르던 우동은 주문을 넣자마자 나왔다. 아버지는 마시듯 우동을 먹었다. 제시간에 맞춰 아버지가 돌아왔고 기차가 출발했다. 아버지 숨결에서 구수한 멸치 다시 냄새가 났다. 초등학교 입학도 전이었던 나는 그때 아버지가 조금은 미웠다. 굳이 이 짧은 정차 시간에 나가서 마음을 졸이게 했다는 것이 싫었다.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아버지를 뛰쳐나가게 했던 그 우동의 맛은 무엇이었을까?

한국의 면 요리는 면보다는 대부분 국물과 건더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이 잘못됐다고 할 수 없지만 덕분에 면 자체에 공력을 들이는 소바와 우동은 잘하는 집 찾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돈가스 같은 음식에 곁들임으로 나오는 미니 우동 때문에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강남역 바로 근처 ‘기리야마 본진’은 우동을 걸고 1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왔다. 그 저력을 느끼기 위해서는 영어·중국어·일본어 어학원이 들어찬 사거리의 지하로 들어가야 한다. 꺾인 계단을 내려가면 작은 문이 나온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고 짧은 복도가 나오는데 그 여정이 일본 고급 요릿집에 들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안은 의외로 넓었다. 구석구석에 숨겨진 방도 여럿 있어서 안내를 받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널찍한 홀에는 근처 학원과 회사에서 온 듯한 젊은이가 대부분이었다. 저녁이었고 몇몇 이들은 테이블에 술병을 올려놓고 있었다. 이 집은 우동뿐만 아니라 초밥과 튀김 등 요리도 여럿 메뉴에 올려놨다. 우동으로만 배를 채우기에는 저녁이 길게 느껴졌다. 주문하자마자 금방 나온 튀김은 튀김옷이 얇고 투명했다. 미리 튀겨놓고 손님을 기다린 음식이 아니었다.

서울 강남구 우동명가 기리야마본진의 자루우동.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채소의 아리거나 쓴맛을 가려주며 단맛을 더하고 고소한 맛을 입힌 채소 튀김은 온도와 타이밍이 더욱 중요하다. 방울토마토에 얇게 입힌 튀김옷과 뜨겁게 배어 나오는 토마토의 단맛을 느끼면서 안심이 됐다. 안주로 나온 돈가스는 밑에 철판을 대 식지 않게 했다. 튀김 아래에는 양배추가 깔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기름까지 흡수했다. 맥주를 시키면 조금이라도 마른안주가 나왔다. 직원들은 손수 병뚜껑을 따고 손님의 말에 꼭 정확히 답을 했다. 모두 스스로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 몸동작에 낭비가 없었다. 곧 우동이 나왔다. 정확히는 국물이 없는 ‘자루 우동’이었다. 자루 우동은 채반을 뜻하는 일본어 ‘자루’에 면을 올려 먹는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여름에 흔히 먹는 메밀 소바와 비슷하다. 이 집의 자루 우동은 도쿠리라고 부르는 작은 호리병에 따로 쓰유가 담겨 나왔다. 가쓰오부시·다시마·설탕·미림·간장 등을 넣고 졸여낸 쓰유에 와사비와 파를 넣어 맛을 더했다. 상앗빛을 띤 우동면은 사각으로 각이 잡혔다. 길게 똬리를 튼 면을 한 줄 뽑아 쓰유에 살짝 담갔다. 면이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처럼 몸을 떨며 입안으로 들어왔다. 살아있는 듯 이에 감기고 혀에 올라타는 면의 기운이 느껴졌다. 단단하지만 탄력 있는 식감은 면을 후루룩 밀어 삼키기보다 찢고 뜯는 전투 같았다. 그럼에도 대리석을 만지는 것처럼 차갑고 매끄러운 감각 덕에 그 전투는 피도 땀도 없었다. 대신 맑은 우동의 맛이 무언(無言)으로 이룩한 깨달음처럼 조용히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고요의 끝에는 밀가루와 물, 사람의 노동이 만든 단순하고 정밀한 정신이 한 방울 무언가로 맺혀 있는 듯했다.

이런 음식을 먹을 때면 여전히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 젊은 시절 아버지가 먹었던 우동은 어땠는지, 그 우동과 정반대에 있는 차갑고 매끄러우며 단단한 이 음식은 아버지 입맛에 어떠한지 묻고 듣고 싶다. 우리 가족 모두, 아버지와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많은 것을 함께 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그 누구도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모든 것에 끝이 있다고 하지만 때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동명가 기리야마본진: 스시 자루 우동 콤보 2만2000원, 뎀푸라 모둠 소 3만2000원, 안주 돈가스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