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는 우리의 적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적이라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T와 우리의 체급 차이는 하늘과 땅 같은 것이었기에. 승부를 겨뤄볼 꿈도 꾸지 않았다. T가 없는 자리에서 불평을 늘어놓는 게 우리의 유일한 항전이었다. 오전 회의 시간에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느냐고, 언제까지 이런 수모를 견뎌야 하느냐고 내가 말하면, 동료는 이에 질세라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오후에 이런 일을 시켰으며 자괴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잠자코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동료는 자신은 어제 T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알아서 했다고,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것 같다고 일순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톰과 제리의 싸움 혹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니까. 강자에게 힘이 주어진다면 약자에게는 언어가 주어지는 법이니까. 뒷담화이긴 하지만 인신공격이나 멸시나 비하까지는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T는 당시 우리의 운명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나와 동료들의 일과와 퇴근 시각과 일용할 인류애 같은 것이 T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따라 좌우됐다. 별다른 사건 없이 삶이 이어진다면 한 달, 1년, 나아가 10년 뒤에도 T의 손바닥 위에는 우리가 있으리라. 중요한 것은 10년 정도의 시간을 T와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년으로 접어들 우리 삶의 중요한 지표가 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중도 하차한다면 근근이 버텨온 시간이 물거품으로 변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이내 낙오자가 생겼다. 바로 나였다. 그날 T의 타깃은 내가 됐는데 동료는 물론 후배들까지 함께한 회식 자리에서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냈다. 아쉽지만 T의 말에는 멸시와 비하가 가득했다. 자리에 참여한 모두가 얼음이 됐다. 물 한 잔 마시는 이가 없었다. 다들 반쯤 고개를 숙이고 그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수모의 시간은 영원처럼 길어졌다.
반쯤 나간 정신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 자리에 있던 이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괜찮으냐고, 어쩌면 그렇게 태연하게 잘 참아냈느냐고, 그냥 나쁜 꿈을 꿨다 치고 다 잊으라고 했다. 실제로 나는 괜찮았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그만두었다. 악몽은 하룻저녁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오래오래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애써 기억을 유폐한다면 T의 무례를 꿋꿋하게 견딘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그 조직을 떠난 후에도 종종 친구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듣는다. 나 다음으로 조직에서 하차한 이가 있다. 바로 T였다. 그동안의 언행이 공론화됐고 조사와 징계를 통해 T는 사라졌다. T는 끝까지 억울함을 토로했다고 했다. 친구는 내게 통쾌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통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사이다처럼 톡 쏘고 끝날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면서 만난 이들 중에 미운 사람이 있다. 아니 많다. 다만 미움이라는 감정이 나를 지배하도록 두지 않는다. 손해는 결국 내가 보기 때문이다. 강렬한 감정일수록 시간을 길게 둬야 한다. 주택 담보 대출을 상환하듯 30년이라 생각해도 좋다. 그제야 비로소 가벼워지고 옅어지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