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에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학교에서 병원으로 실려 간 일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의사 선생님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로도 의사 선생님 흠모는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병세가 빨리 호전되지 않아도 병원을 옮기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내 남편은 나보다 한술 더 떠서 의사를 존경했습니다. 그 이유가 매우 무식한 수준이었습니다. 치과를 다녀오더니, 예방주사도 안 맞으려는 자기 같은 환자를 극도의 집중력과 긴장 속에서 온종일 진료해야 하는 극한 직업에 존경심을 금할 수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카드가 생기기 전에는 진료비도 새돈으로 준비해 가곤 했습니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는 거예요.
우리가 다니던 한방 병원이 어느 날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쪽지 하나만 남기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곳까지 찾아가 보니 이미 노인이었던 그분은 중풍으로 얼굴이 비뚤어지고 한쪽 팔이 마비된 상태에서 남은 한 손으로 진료를 보고 있었습니다. 순간 저 모습으로 환자를 대해야 하는 의사의 자괴감이 얼마나 클까 생각했습니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난 우리의 다른 명의는 가발을 쓰고 있었고, 또 한 분은 진료 때 고개 숙인 머리의 빛바랜 염색 머리카락이 폼 안 나는 초라한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의사들도 아프고, 늙고, 마침내는 우리처럼 환자가 되어 죽습니다. 그 때문에 환자보다 나이가 많았던 우리 명의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 남편도 명의의 돌봄 속에서 생을 마무리했습니다.
나는 새로 만난 의사들에게도 여전히 우러름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의정 갈등으로 미래의 명의들이 가운을 벗어던지고 병원과 학교를 떠나는 모습을 실망과 불안 속에서 1년 반 동안 지켜보았습니다. 환자는 의사를 이기지 못하지만, 환자 없이는 명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