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증류소가 내놓은 광복 80주년 기념 싱글몰트. /김지호 기자

1990년대. 전 세계가 스카치를 즐길 때 국내에는 ‘캡틴큐’와 ‘나폴레옹’ 같은 유사 양주가 식탁에 깔렸다. 지독한 알코올 냄새와 강력한 숙취는 덤. ‘진짜 위스키’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한국에는 위스키 증류소가 없었다. 위스키는 오크통에서 몇 년을 묵혀야 한다. 스카치의 경우 최소 3년이다. 그동안은 한 병도 못 판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 속에서 수십 년 뒤 소비자 입맛을 예측하는 건 도박에 가깝다. 투자금은 묶이고, 회수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게다가 위스키에 우호적이라 보기 어려운 세금과 규제가 버티고 있다.

코로나 시기를 기점으로 상황이 변했다. 해외여행이 막히고 국내 고급 주류 수요가 늘자, 크래프트 맥주로 단련된 양조인들이 증류로 넘어왔다. 2020년 이후 남양주의 ‘기원증류소’, 김포의 ‘김창수 위스키’ 등 증류소들이 잇달아 가동을 시작했다. 여기에 스코틀랜드 본토 전문가들이 합류하면서 ‘국산 위스키’ 시대가 열렸다.

기원증류소는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증류소다. 도정한 대표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45년 경력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루 샌드를 영입했다. 그는 남양주의 지하수, 큰 일교차, 높은 습도가 숙성에 유리하다고 봤다. “숙성 속도는 스코틀랜드의 약 2배”라는 게 증류소의 설명이다.

기원증류소는 광복 80주년 기념 싱글몰트를 내놨다. 815병 한정. 라벨 중앙에는 숙성 연수 대신 ‘광복 80주년’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증류·숙성·병입 전 과정을 국내에서 마쳤다. 이 에디션은 한국산 보리로 만든 싱글몰트이자 모든 과정을 국내에서 완성한 상징물이다. 원료는 가평 보리 30%, 군산 보리 70%. 수율보다 ‘100% 국내산’의 상징성을 택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지역 보리 100%를 사용한 제품은 드물다. 기원증류소의 광복 80주년 에디션은 그만큼 원료와 땅의 개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숙성은 퍼스트필 버번 오크통과 버진 오크통을 일대일로 블렌딩했다. 맛을 봤다. 잔에 코를 대면 갓 자른 나무 향이 훅 들어온다. 뒤이어 시원하게 찡한 민트 향이 퍼진다. 잔디밭에 넘어졌을 때 옷에 배는 풀내음이랄까. 그 느낌이 입안에서도 이어진다. 달콤한 페퍼민트 차에 과일을 살짝 곁들인 듯한 단맛이 뒤따른다.

광복 80주년 에디션은 2021년 3월 18일 증류해 2025년 7월 23일 병입했다. 약 4년 4개월 숙성, 도수 55.1%. 815병은 전부 완판됐고, 수익 2000만원은 독립유공자 취약 계층과 이석영 선생 기념사업회에 각각 기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