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미국암학회 학술지 ‘캔서 디스커버리(Cancer Discovery)’에 미 피츠버그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실렸습니다. 인공 감미료인 수크랄로스가 암 치료를 방해한다는 내용입니다. 수크랄로스를 먹으면 암을 공격하는 면역세포인 T세포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합니다.
수크랄로스는 ‘제로(0) 슈거’ 음료·과자 등에 들어갑니다. 설탕보다 단맛이 훨씬 강한데 칼로리는 제로에 가깝습니다. 설탕 대체재로 많이 쓰는 것은 이 때문이죠. 설탕·칼로리 걱정은 조금 덜어주는지 몰라도 암 치료 효과를 낮춘다고 하니 수크랄로스를 통해 잃는 게 더 많아 보입니다. ‘제로의 배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비슷한 사례는 넘쳐납니다. 시판되는 무알코올 맥주에 알코올은 없지만 100mL당 당류가 2~8g 들어 있습니다. 일반 맥주보다 입안에서 느끼는 풍미가 떨어져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당류를 넣는다고 합니다. 당류 함유량이 콜라 수준에 육박하는 것도 있다죠. 무알코올 맥주를 많이 마시면 혈당이 크게 오를 수 있습니다.
사실 ‘0’은 위대한 수학적 발견입니다. 0의 발견으로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 개념이 생겼고 변화와 움직임을 다루는 미분의 토대도 마련됐습니다. 0은 음수와 무한이라는 새로운 수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을 열었습니다. 0은 인류 문명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금의 디지털 세계는 0과 1의 이진법 위에 서 있습니다. 0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혁신의 상징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업들은 0을 마케팅 전략 속에서 다른 방식의 상징으로 바꿔 씁니다. 해로운 것이 없다는 말로 소비자를 안심시키는 것이죠. 하지만 제로 마케팅은 ‘무언가를 없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웠는지는 잘 알려주려 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대체’임에도 ‘완전한 비움’처럼 포장합니다.
‘제로 마케팅의 함정’은 기업들이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덫에 소비자가 스스로 걸려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무알코올 술을 마시면서 ‘제로니까 괜찮아’, 달콤한 제로 슈거 음료를 마시면서도 ‘제로니까 살찌지 않을 거야’….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동시에 갖고 있을 수는 없다’는 서양 속담처럼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