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퇴직 후 4년이 지나 명실상부한 ‘백수’ 반열에 오르자 좋은 점이 있다. 가장 홀가분한 건 ‘형식적 모임’에 불참할 자유다. 재직 중에도 학교와 집을 시계추처럼 왕복하던 생활이었지만 퇴임 후 대학 강의를 고사하자 일상이 더 단순해졌다.

지인이 ‘퇴직 후 상실감은 없는지’ 물은 적이 있다. 정부 고위직이나 회사 대표를 지내던 이들이 갑작스러운 은퇴 후 상담 치료를 받는 등 힘들어하더라는 전언을 곁들여서다. 평생 바쁘게 살던 분들이 하루아침에 사회적 관계가 증발할 때 느낄 충격은 짐작이 간다. ‘번듯한 명함’이 인간관계를 규정하곤 하는 한국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분주한 퇴직자가 적지 않은 것도 그런 상실감을 메우기 위한 것일 수 있다.

학교 선생으로 평범하게 지냈고 평생 ‘혼자 놀기’에 익숙한 내 생활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다.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강의와 글쓰기를 줄여가던 나로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오히려 풍요롭게 느껴졌다. 지금도 나는 ‘홀로 충만하게’ 지내는 능력이야말로 좋은 삶의 잣대라고 여긴다. 연금 생활자의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 100세 시대 인생 삼모작을 충실히 준비하는 건 정말 중요한 문제다. 중·노년 퇴직자에게 닥친 인생 3대 도전은 빈곤과 질병, 그리고 권태일 터.

80대 초반 친형님은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열혈 노(老)청년이다. 오랜 친구들끼리 수십 년 이어온 모임이 여럿이다. 팥칼국수 먹는 ‘팥칼’ 모임, 청계산 등산 모임, 성경 공부 모임 등 늘 활동적이다. 모임 회비는 최근 물가 폭등으로 수십 년간 유지해 오던 만원에서 만오천원으로 ‘대폭’ 올렸다고 한다. 예리한 판단력과 구수한 유머를 합친 달변의 형님은 내겐 영원한 멘토다.

다음은 그 형님한테 들은 유머. 오랜 친구인데 최근 몇 년간 소식이 뜸하던 친구와 어느 날 연락이 닿았다. 형님이 가볍게 물었다. “요새 뭐 하고 지내?” 형님 친구가 답변한다. “응, 작년에 하던 일 계속하고 있지!” 너무나 자연스러운 친구 대답에 형님이 궁리한다. ‘얘가 작년에 무슨 일을 했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영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묻는다. “응, 네가 작년에 무슨 일을 했지?” 형 친구 왈. “응, 놀았지!”

가가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유머 저작권이 형님 친구분에게 있든 다른 데서 왔든 절묘한 한국어 말놀이가 아닐 수 없다.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의 의미 연관은 180도 달라서 서로 빛과 그림자처럼 충돌한다. 그것을 ‘변증법적으로’ 뒤섞고 비틀어 갑작스러운 반전으로 상쾌한 웃음을 유발한다. 놀 때조차 일중독 강박증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의 빈곤한 마음의 습관을 돌아보게 하는 멋진 해학이다.

치열하게 살던 내 친구들도 70대가 되자 대부분 퇴직했다. 매달 한 번 만나는 아침 모임 친구들에겐 우연한 공통점이 있다. 개인 취향이지만 다들 술 담배와 골프를 안 하면서도 활발하게 지낸다. 이들은 매일 동네 복지관에서 ‘운동’하고 강좌에 ‘참여’한다. 곳곳을 지하철로 다니면서 무료 강연과 전시회에서 ‘공부’하고 ‘기록’한다. 전문 병원에서 ‘봉사’하는 친구, 시청에서 매해 분양하는 몇 평 텃밭 농사에 땀 흘리며 ‘몰두’하는 친구도 있다.

보람 있고 좋아하는 ‘활동’에 각자 방식대로 ‘몰입’하는 일상은 퇴직한 백수를 자유인으로 승격시키는 놀라운 삶의 비밀이다. 백수인 내게도 사람들이 묻곤 한다. “요새 뭐 하고 지내?” “작년에 하던 일 계속하고 있지!”가 내 대답이다. 작년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론 계속 열심히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