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 수상자 안도 다다오는 "건축 설계할 때 주변 자연환경과 역사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숭례문·구(舊)서울역사' 등 오랜 역사를 담은 땅을 매입한 국내 A기업은 이 부지에 어떤 콘셉트로 사옥을 지을지 고민하고 있다. 사진은 숭례문 모습. /조선일보DB

2005년 8월 10일 중국 건설부(2008년 ‘주택도농건설부’로 개편)는 ‘문건 200577호’를 발표한다.

“건축 풍수는 중국 전통 건축 문화의 주요 구성 인자입니다. 풍수가 강조하는 화해(和諧)·순환·평형 등과 같은 관점은 현재 중국이 추진하는 순환 경제와 지속 발전 전략에 참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건축 풍수 문화 전문가위원회’ 설치 공식 통지문이었다. 즉 풍수를 단순한 민속이 아닌, 건축 문화의 핵심 요소로 공식화하면서 순환 경제와 지속 가능 발전 전략 수립에 실질적인 참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후 베이징 칭화대학과 난징 둥난대학에서 풍수 관련 연구서들이 발표되고 있으며, 필자 역시 그 책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문건이 풍수를 ‘화해’의 철학이라고 표명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중국 사회주의 ‘화해사회(和諧社會)’ 담론과도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입지, 건물(정문) 방향, 건물의 형상·색채·마감재, 정문과 에스컬레이터 및 엘리베이터 관계, 공개공지(公開空地)의 조경물(분수·연못·수로·사자상·거북상·해태상)을 풍수에 근거해 결정한다.

풍수 수용은 중국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영국 리버풀대 환경과학부 소속 마데듀 교수는 자신의 저서 ‘풍수와 도시(Feng Shui and the City; 2021)’에서 “건축 풍수는 해당 건축물과 부동산 가치 증대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까지를 이롭게 하는 문화적 관계항(cultural referent)”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극히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또한 미신이라는 세상 눈초리를 피해 은밀하게 적용한다. 풍수 수준이 천박할 수밖에 없다. 부부 건축가로 유명한 ‘가온건축’의 임형남·노은주 건축가의 의견이다.

“대학에서 풍수지리에 관한 가르침은 없다. 진지하게 고려하는 건축가도 없다. 아직도 미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풍수지리 건축이 좀 더 체계적이며 인문지리라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서론이 길었던 이유는 필자가 최근 겪는 문제를 공유하기 위함이다. 필자는 15년 넘게 인연을 맺고 있는 A기업 신축 사옥 부지를 물색하고 있었다. 서울 곳곳을 찾았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물건마다 주인이 따로 있음[物各有主·물각유주]은 분명하다. 많은 기업들이 탐내던 숭례문 근처 부지를 A기업이 매입했다. ‘숭례문·구(舊)서울역사·남지(南池)’ 등 오랜 역사를 담은 땅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필자가 잠깐 방심한 사이 경험이 없던 A기업 주무 부서가 B건축과 설계 계약을 마친 것이다. A기업 사옥 신축의 목적은 몇 개 층은 회장 집무실 및 부속실로, 나머지 층들은 임대였다. 지세·장소성(場所性), 회장의 철학과 성향 파악이 우선이고, 그다음은 공실 없이 임대 가능한 품격을 담아 짓는 것이다. 그러한 콘셉트 디자인에 대한 ‘개념 공유’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뒤늦게 이를 안 A 회장의 질책으로 몇 개월의 시간 낭비 끝에 원점에서 다시 시작 중이다. 건물주(A기업)와 건축가(B건축)는 먼저 무엇을 했어야 옳았는가?

2016년 2월 4일 일본 오사카 ‘안도건축연구소’에서 프리츠커 수상자 안도 다다오 선생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필자의 첫 번째 질문은 “어떻게 땅(지세)을 읽고 그 위에 어떤 건물을 어떻게 앉히는가?”였다. 이에 대한 안도 선생 답변이다.

“클라이언트(건물주)의 생각을 중시합니다. 클라이언트가 나에게 전달하는 마음과 생각을 우선시합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건축하고자 하는지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건축은 개인 작업이 아니라 공동으로 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건축물은 지은 뒤 그냥 두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계속 남아 이용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변 자연환경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성입니다. 건물 자체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장소에 대한 역사성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지역 풍토나 그 지역의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책도 많이 읽으면서 건물을 완성해 나갑니다.”

숭례문 근처에 지어질 A기업 사옥도 그와 같아야 한다. 사옥이 준공되면 조선일보 독자들께 그 땅의 원래 모습과 그 위에 지어진 건물을 이 칼럼에서 소개할 것을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