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입소할 때 생활 규칙 안내서를 받았는데, 식당 등에서는 슬리퍼나 트레이닝복 차림을 삼가달라는 일종의 드레스 코드 수칙이 있었어요.

관내는 기계적으로 온도가 조절되기 때문에 계절이 더디 오고 입주자들의 옷차림 또한 변화를 거의 느낄 수 없습니다. 여자들은 머리 모양, 옷의 종류, 색깔 등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남자들은 가을에서 겨울과 봄이 지나갈 때까지 패딩 점퍼, 패딩 조끼, 등산 조끼 일색으로 모자와 지팡이 외에는 구별조차 어려운 무색무취의 제복 같은 옷차림이죠. 그런데 지난 주말 한 노인이 야자수 무늬의 남방셔츠 차림으로 식당에 나타났습니다. 쪽빛 바다에 야자수 무늬의 남방이라니! 하와이에서 방금 도착한 신입 회원인가?

정작 그 옷을 입고 온 노인 자신은 옷을 의식하지 못하는 듯 무덤덤한 표정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멀찌감치서 허리가 굽은 한 할머니가 노랑 초록 체크무늬의 여름 블라우스를 입고 나타나 “딸이 이런 걸 사다줘서”라며 쑥스러워하는 거예요.

아, 여름이구나! 동해 바다와 고래 사냥을 드높이 부르던 지난날의 여름! 골목마다 확성기에서 ‘노란 샤쓰의 사나이’와 ‘담배 가게 아가씨’가 귀에 따갑도록 울려 퍼지던 여름! 한때 우리 모두는 고달팠지만 건강한 청춘과 찬란한 여름을 함께 겪어낸 사람들입니다.

두 노인의 튀는 옷차림은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여름들을 삽시간에 소환했습니다. 수십 년을 넘어 지금 이곳 복지관까지. 그날 이후로 패딩 조끼와 등산 조끼가 하나둘 사라지고 밝은 색의 티셔츠와 야구 모자, 화사한 반바지가 등장했습니다. 여자들도 데이트라도 하기 위해 신경 쓴 듯한 옷차림이 눈에 띄고, 운동화 색깔도 다양해진 것 같아요.

젊은이들에게 권합니다. 노인들에게 멋지게 입혀 드리라고. 옷에는 추억과 감정이 있습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 이제부터 복지관의 드레스 코드는 값싸고 품질 좋고 멋진 ‘K패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