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 시내 모습. 편리함을 좇는 현대인들은 '불편함의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리함’을 추구합니다. 조금이라도 편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기술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기술의 진보는 더 편리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그 편리함을 온전히 누리기만 하는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편리함을 좇던 현대인들은 어느새 ‘편리함의 역습’을 받고 있습니다. 부족한 운동량 탓에 성인병을 앓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기 중독으로 정신 건강을 위협받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불편한 게 싫어 편리한 걸 찾던 사람들이 그 편리함 때문에 또 다른 불편함에 빠지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편리함 뒤에 숨어 있던 대가를 치르는 거죠.

이쯤에서 ‘불편함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알다시피 편리함과 불편함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불편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편리함을 얻게 됐으니까요. 이 편리함이 내일의 불편함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불편함은 무조건 피하고 편리함만 생각하려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저서 ‘히든 포텐셜’에서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를 강조합니다. 그는 우리가 빠르게 성장하는 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금까지 써온 닳고 닳은 방법들을 포기하고, 싸울 준비가 됐다는 느낌이 들기 전에 링에 올라가고, 다른 이들이 시도하는 횟수보다 훨씬 여러 차례 실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기꺼이 정면에서 불편함에 맞서고, 때로는 불편해질 각오를 하는 자세야말로 우리가 지금보다 한 계단 올라서는 발판이 된다는 뜻 아닐까요. 이번 주 ‘아무튼, 주말’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인 소리꾼 이희문도 편한 길로만 갔더라면 ‘국악의 글로벌 스탠더드’ ‘쇼킹할 정도로 천재적’ 같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을 겁니다. 해외에서 BTS나 임윤찬 같은 인기를 누릴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는 명창의 아들로 국악계에서 순탄한 성장 가도를 밟을 기회가 있을 텐데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여느 국악인과 다른 파격적 의상과 퍼포먼스로 자신만의 예술성을 확실히 각인했는데, 이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도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용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불편함을 넘어서면서 우리는 한층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불편함이 편리함보다 좋을 리는 없습니다. 필요한 건 ‘적절한 불편함’ 아닐까요.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