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박사’를 아시는지. 얼음·박카○·사이다를 조합한 음료의 줄임말이다.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찜질방에서 땀을 흠뻑 뺀 뒤 기력 보충을 위해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전국의 많은 찜질방 메뉴판에 ‘얼박사’ 혹은 ‘박사’라는 명칭으로 등재돼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웬만한 에너지 드링크 못지않다더라”라는 소문이 나며 이 음료가 PC방까지 점령했다. 밤새 ‘맑은 정신’으로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그나마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마시는 것으로 보인다.

맨 오른쪽은 찜질방에서 자주 보이는 물통에 담긴 '얼박사'. 가운데 컵에 든 음료는 박카○와 갈아만X배, 파워에☆드를 섞어 만든 '파워박갈배'.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현대인이 피곤에 찌들어 살기 때문일까. 이런 조합의 음료가 한둘이 아니다. 박카○와 갈아만X배를 섞어 만든 ‘박갈배’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파워에드까지 넣으면 이름만 들어도 힘이 솟을 것 같은 ‘파워박갈배’가 된다. 비율은 타는 사람 마음이지만 통상 1:1:1. 얼음과 포카리○웨트, 비△500을 섞은 ‘얼포비’도 있다.

대부분 카페인과 전해질, 비타민 등이 든 음료를 혼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른바 ‘붕붕드링크’라 불리는 에너지 음료 혼합법은 2000년대 시험 기간 밤샘 공부 비법으로 유명했다. 완제품으로 출시되는 에너지 음료 종류가 상대적으로 적던 시절, “커피보다는 몸에 좋지 않겠느냐”며 각성 효과를 위해 카페인이 든 음료, 몸에 좋다는 비타민 음료, 심지어 가루형 비타민제 등까지 섞어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얼박사’ 등에서 기대하는 건 피로 해소와 잠 깨는 효과다. 요즘도 소셜미디어에는 “약사가 알려주는 피로 해소 ‘꿀조합’” “식품영양학과 교수도 먹는다는 피로 해소제” 같은 제목의 영상이 쏟아진다. 많게는 조회 수 수백만 회를 기록하며 ‘고등학생이 먹어도 되느냐’ ‘부작용은 없느냐’는 질문 댓글이 줄을 잇는다. ‘밤샘 공부가 가능하다’ ‘짧게 자도 푹 잔 듯 개운하다’는 후기도 흔하다.

전문가들은 “반짝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과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말한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어떤 음료를 얼마나, 어떻게 섞고 본인의 몸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결과가 매우 다르기에 획일적으로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효과가 좋다는 말만 믿고 여러 잔 마시지 말고, 당류나 카페인 과다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전해질 음료는 운동 선수 등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땀을 많이 흘리지 않은 상태에서 과하게 마시면 오히려 몸에 부담이 될 수 있단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역시 “빈속에 카페인과 비타민을 섞어 먹으면 위장에 자극이 될 수 있다”며 “심장이 뛰거나 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피로 해소에 도움 된다는 이런 음료가 50~60대가 아닌 젊은 층에서 오히려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한 과잉 경쟁 속에서 만성적인 번아웃에 시달리는 젊은 층 모습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요즘은 영어 유치원에 입학하면서부터 경쟁이 시작된다고 하지 않느냐”고 했다. 부족한 잠과 피로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 자화상이 담긴 음료 한 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