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장편소설 공모 심사를 맡았습니다. 그간 저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장편소설을 책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또한 시를 쓰다가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소설책을 펴고 서사 속으로 도망치는 버릇도 있었습니다. 장편이라는 소설의 형식을 좋아하고,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껏 한 번도 직접 써본 적은 없습니다. 저를 제외한 다른 심사위원 모두가 활발히 활동하는 소설가였기에, 뒤처지지 않으려 더 꼼꼼히 응모작을 들여다봤습니다.
제가 살펴야 하는 작품은 약 100편. 검토 기간은 50일 정도가 주어졌습니다. 하루에 두 편꼴로 읽어야 했습니다. 장편소설은 보통 800장 내외의 분량입니다. 이때 800장은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합니다. 요즘 우리가 즐겨 쓰는 문서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편집 구성으로는 100장 분량이 되는 것이고요. 제 경우에는 장편소설 한 권을 읽는 데 2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중간중간 메모를 해가며 읽으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요.
문제는 하루에 1편도 읽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다가도 길을 잃고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때도 많았습니다. 작품 구성이 모호하거나 개연성이 어긋난 탓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제게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난겨울부터 긴 글과 담을 쌓고 지냈습니다. 오랜만에 신간 시집을 출간하는 부담 탓에 다른 글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고, 보살펴야 하는 가족이 늘어난 현실적 이유도 한몫했습니다. 긴 글을 읽는 능력이 손실된 것입니다. 다행히 며칠 밤 고생하고 나니 조금씩 읽는 속도가 붙었습니다. 기한 내에 무사히 본심 심사를 위한 추천작을 꼽을 수 있었고요.
운동 좋아하는 분이라면 ‘근손실’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근손실은 말 그대로 몸의 근육 조직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을 때 혹은 운동 자극이 오랜 시간 생기지 않았을 때 우리 몸의 근육 조직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물론 충분한 단백질 섭취와 적절한 운동 및 휴식을 병행하면 어렵지 않게 회복하는 것이고요.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근육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근육을 가장 효과적으로 발달시키는 방법은 문학 작품 읽기입니다. 아시다시피 문학은 마냥 흥미와 재미만을 좇지 않습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와 납득할 수 없는 사유가 펼쳐질 때도 많습니다. 그러니 책 한 권을 읽는 일에는 많은 노력과 힘이 필요합니다. 마치 무거운 바벨을 들거나 먼 거리를 빠르게 달리는 것처럼. 운동이든 독서든 내가 오늘 가진 힘을 온전히 쏟아야만 내일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학을 읽는 일은 물음표와 친해지는 일입니다. 잘 모른다고 구겨버리거나, 당장 이해되지 않는다고 멀어질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곁에 잘 두었다가 다시 펼쳐보는 것입니다. 이해하려는 태도입니다. 읽기를 통해 얻은 능력은 삶 속에서 빛을 냅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사실 그 어떤 두꺼운 책보다 더 자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곁에 있는 이의 마음과 눈빛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