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100세 가까운 노교수가 하루 한 끼로 자족한다는 보도가 인상적이었다. 평생 소식(小食)하면서 맑은 정신으로 업적을 남기는 분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식탐이 있어 배고프면 못 견디는 나로선 ‘1일 1식’의 삶은 갈 수 없는 길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적어도 먹거리만큼은.

며칠 전 친구들 모임에선 쇠고기를 포식했다. 그것도 한우 안심과 등심이다. 평소 육식을 즐기진 않지만 ‘연례행사’인 만큼 사양하지 않는다. 국가가 엄금했는데도 쇠고기 열풍이 휩쓸던 조선 시대 선조들 심정을 추체험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이 금상첨화였다. 농수산시장 정육점에 주문해 상차림 식당을 이용한 친구의 알뜰함이 컸다.

‘니 얼굴이 마치 부처님 같네!’ 작년 가족 모임에서 맛있는 식사 후 형님이 내게 웃으면서 한 말씀이다. 해탈하거나 득도했다는 얘기가 아님은 물론이다. 대웅전 본존불상처럼 얼굴과 몸집에 넉넉하게 살이 올라 편안해 보이는 모습에 대한 비유일 터.

먹는 것의 유혹에 약한 자(者)가 할 수 있는 최대치는 절식이었다. 그것도 간신히 이룬 습관이다. 아침을 풍성하게 먹되 오후 늦게 단출한 점심 겸 저녁 식사(이른바 ‘점저’)를 한다. 4년 전 퇴직 이후 일상이 됐다.

청년 시절엔 청량음료와 패스트푸드를 달고 살았다. 유학생 땐 라면과 달콤한 간식거리를 사랑했고 잔병치레가 잦았다. 나이 들면서 가공식품을 절제하고 생활 습관을 바꾸게 되자 탁한 얼굴이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부처님 얼굴 닮았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괄목상대가 됐다. 간소한 식단과 몸과 마음의 건강은 동행한다.

장년에 접어든 후에는 아침 식사가 가장 풍요로웠다. 떠먹는 요구르트와 걸쭉한 두유를 직접 만들어 매일 상식한 지 30년째다. 요구르트 제조 과정에서 무념무상 수행자의 심정을 느낀다면 과장일까? 내심 해외 호텔에서 먹은 플레인 요구르트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요새도 아침 모임에서 요구르트를 한 사발씩 해치우는 모습을 본 친구들이 신기해한다.

과일과 견과류를 더해 되직한 요구르트와 곱게 간 진한 두유를 음미할 땐 황제가 부럽지 않다. 사람마다 음식 취향이 달라도 이 둘은 검증된 장수 건강 식품이다. 요구르트와 두유가 입맛에 맞는 건 삶의 행운이었다. 담백한 수제 두유와 요구르트에 익숙해지면 대량생산돼 인공 향료와 설탕이 첨가된 공장 제품은 입에 거슬리게 된다.

비만이 사회적 질병이 된 시대에 중요한 건 개인 맞춤형 식사다. 각자 체질과 취향에 맞는 음식을 ‘적당량’ 즐기는 게 좋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들르는 화덕 생선구이 집 총각김치와 돌솥밥 식당의 나물을 만날 때마다 감탄한다. 언제나 손님들로 붐비는 소박한 신토불이 밥집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보다 훨씬 끌린다.

미국 지식인 스콧 니어링(1883~1983)의 자연 친화적 삶은 많은 이들을 감화시켰다. 대학에서 해직된 이래 시골에 직접 집을 지어 먹거리를 자급하는 농사일과 독서, 친교로 살아간 그는 건강하게 살고 건강하게 죽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100세 생일날부터 맑은 정신으로 곡기를 끊어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매하고 금욕적인 스콧 니어링이 아니다. 그는 그고 나는 나다. 가끔은 절제된 육식과 외식도 괜찮다.

먹는 행위의 고귀함은 역설적으로 소박한 식사를 즐기고 음미하는 능력에서 우러나온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을 말해준다. 어느 고담준론보다 삶의 비밀을 깊이 꿰뚫는 담백한 진실이다. “평중이는 안 먹으면 죽어야! 죽는당게!”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말씀이다. 참으로 만고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