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은 시대. 치유가 필요하다.

‘하늘이 내게 재능을 주었으니 반드시 쓰임이 있을 것이요(天生我材必有用)….’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쓴 ‘장진주(將進酒)’의 한 대목입니다. 이 시는 호방한 표현과 심오한 인생 철학이 멋지게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시 제목은 모르더라도 ‘술은 마셨다 하면 모름지기 300잔은 마셔야지(會須一飮三百杯)’라는 시구는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 시는 권주가의 대명사입니다만, 시구 중에서 무엇보다 제 마음속 깊이 새겨진 대목은 술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저 ‘하늘이 내게~’ 부분입니다. 누구든지 재주는 타고나며 언젠가 그 재주가 쓰일 때가 있으니 어려움이 있더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삶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백의 저 말이 과연 소용 있기는 한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 사회 현실은 어떤가요. 개인들은 극한 경쟁에 내몰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밀려나면 ‘루저’ 취급을 받고 패배감에 빠집니다. 불확실한 미래의 벽에 가로막혀 고립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회 전체가 주변을 살뜰히 돌보지 않는 상황에서 홀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요즘 청년층 사이에서는 ‘존재통(存在痛)’이란 단어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아프다’는 뜻입니다.

이번 주 ‘아무튼, 주말’ 1면 커버스토리에 나온 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한국을 한도 용량의 120% 이상으로 달리는 ‘한도 용량 초과 사회’로 정의했습니다. 나 교수는 “계속해서 뛸 수밖에 없는 초고속 트레드밀 같은 사회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견한데 노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사람이 많다”며 “모두가 자신의 한도를 넘어설 만큼 바쁘게 뛰어야만 하는 경쟁 사회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건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대로 놔둘 수는 없습니다. 상처 받은 사람이 치유받을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위로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나 교수의 말을 빌리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사회적 처방’을 내려주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는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갈 문제입니다. 물론 개인의 의지도 중요하겠죠. 장 폴 사르트르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