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는 20세기 후반부터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를 붓기 시작했다.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아포가토다. 바닐라빈 씹히는 아이스크림과 산미 좋은 에스프레소의 조합은 여름철 거부할 수 없는 별미다.
커피 대신 술을 부어보는 시도도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처음엔 럼이 올라갔고, 미국 남부에선 버번이 올라갔다. 바닐라, 캐러멜, 토피 향을 품은 버번은 아이스크림 위로 얇게 스며들며 천천히 녹아내렸다. 차가운 단맛 위로 따끈한 버번의 풍미가 가볍게 올라탄다. 마치 갓 구운 팬케이크 위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메이플 시럽처럼.
이 조합은 미국 남부 여름 디저트로 자리 잡았다. 일부 바와 레스토랑에선 ‘버번 선디(sundae)’라는 이름으로 메뉴판에 올랐다. 아이스크림 한 스쿠프에 버번 몇 방울을 떨어뜨리면 술과 디저트 사이로 맛의 신세계가 등장한다.
버번은 원래 아이스크림과 잘 어울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버번은 옥수수를 주원료로 만든다. 곡물 특유의 달콤함이 이미 기본으로 깔려 있는 셈이다. 버번은 내부를 불로 태운 새 오크 통에서 숙성되면서 바닐라와 캐러멜 향이 입혀진다. 아이스크림도 바닐라와 크림을 베이스로 한다. 결국 종목은 다르지만 비슷한 계열의 단맛이 서로 만나면서 거부감 없이 어우러지는 것이다.
특별한 레시피랄 것도 없다. 그냥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쿠프 퍼서 그 위에 버번을 살짝 흘려주면 된다. 몇 방울이면 충분하다. 욕심은 금물. 버번이 과하면 그냥 바닐라 맛 술이 되고 만다.
버번을 부은 아이스크림은 생각보다 맛이 복합적이다. 처음에는 차가운 단맛이 부드럽게 퍼지다가 곧바로 버번 특유의 바닐라와 시럽 풍미가 입안을 감싼다. 술이 녹아들면서 향신료와 따뜻한 온기가 뒤따른다. 아이스크림이 단순히 차가운 디저트가 아니라, 천천히 녹아내리는 칵테일처럼 변한다.
예를 들어, 호두마루 아이스크림엔 와일드 터키 101이 어울린다. 고소한 단맛 위로 버번의 묵직함이 올라온다. 좀 더 부드럽게 즐기고 싶다면 우드포드 리저브도 괜찮다. 구운 오크와 바닐라 풍미가 크리미한 단맛과 어우러진다. ‘민초파’를 위한 조합도 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라이 위스키로 도전해 볼 만하다. 벤앤제리스 체리 가르시아에 와일드 터키 레어브리드도 쿵짝이 잘 맞는다.
위스키는 겨울 술이라는 말이 많다. 하지만 여름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냉동실을 열어 아이스크림 한 통을 꺼내고, 그 위에 버번을 한 숟갈 얹어보자. ‘한여름 밤의 위스키’가 그렇게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