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하루 마지막 일과는 주로 산책입니다. 반려견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을 걷습니다. 진종일 버겁고 무거운 일을 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날에도 산책만은 빠뜨릴 수 없습니다. 반려견은 그만큼 긴 시간 집 밖을 나서지 못했으니까요. 며칠 전에도 밤늦게 산책을 나섰습니다. 순찰 돌 듯 공원 구석구석을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눈으로 소리를 따라가니 벤치 건너편 철로에 한 중년 남성이 서 있었습니다.
동네 공원에 무슨 철로가 있나, 의아하겠지만 실제 열차가 달리는 길은 아닙니다. 조경 목적으로 침목과 신호등과 철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죠. 철로 길이는 채 20m가 되지 않습니다. 중년 남성은 마치 줄타기 하듯 그 철로 위에 올라 양팔을 벌려 중심을 잡은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중심을 잃고 바닥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다시 철로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돌아가 위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보아하니 취기가 오른 듯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모종의 경계심 대신 그를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내는 고요한 응원에도 철로 위를 걷는 일은 쉽지 않은 듯했습니다. 중간도 가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두세 번 정도는 얼마 남기지 않고 아쉽게 실패했는데 이때는 아쉬운 마음에 절로 탄식이 터졌습니다. 시계를 보니 제가 벤치에 앉아 그를 구경한 지도 2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반려견은 지루한 듯 바닥에 턱을 괴고 엎드려 있었고요. 얼마 후에야 그는 철로 횡단에 성공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그는 왜 사소하고 쓸모없는 일에 집착하며 시간과 노력을 쏟았을까요. 그 사소하고 쓸모없는 남자의 행동을 응원하며 끝까지 지켜본 제 집착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필요와 쓸모와 유용을 목표로 하는 일들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그만큼 성공과 실패의 결과도 명명백백하게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가끔 논리에서 잠깐 벗어난 이런 일들도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앞의 성과와는 관계없는 일, 안 해도 되는 일, 서툴러도 잘 못해도 되는 일, 그냥 하고 싶어서 그저 좋아서 하는 일 말입니다.
오래전 서예학원에 다닌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벼루에 먹 가는 일을 배웠고 붓을 쥐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러고는 화선지 위에 천천히 한 일(一)자를 그었습니다. 문제는 학원을 다닌 지 한참이 되도록 같은 것만 반복했다는 것입니다. 지루하고 답답한 마음에 서예 선생님 몰래 아무 그림이나 그려보았던 기억. 돌이켜보니 쓸모없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선 하나를 바르게 긋지 못한다면 하늘(天)과 땅(地)을 분별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부디 우리 곁에 좋아서 하는 일이 더 많아지길, 그리고 그 안에서 목적에 가려지지 않은 온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