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리뉴얼’이라는 말이 반갑기보다 불안하게 들린다. “더 좋아졌습니다”라는 문장이, 거꾸로 경고 같다. 뭔가 빠졌겠구나 싶은 불신부터 드는 것이다.
과자 봉지는 더 커졌는데 안은 더 비어 있었고, 맑고 깔끔했던 커피는 어느 날 텁텁하고 탄 맛으로 바뀌었다. 가격은 올랐고 품질은 내려갔다. 누구나 겪어본 실망이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겉모습은 그대로지만, 원단은 얇아지고 마감은 헐거워졌다. “이 브랜드, 예전 같지 않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위스키 브랜드들은 그래서 리뉴얼을 망설인다. 괜히 손댔다가 욕만 먹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일부는 공지 없이 원가를 조정하거나 소재를 바꾸는 식으로 ‘조용한 리뉴얼’을 택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민감하다. 작은 변화에도 반응하고, 품질에 대한 감각은 예리하다.
스코틀랜드 위스키 브랜드 글렌모렌지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입문용 싱글몰트로 자리 잡은 글렌모렌지 10년을 단종시키고, 12년 숙성으로 교체한 것이다. 단순히 숫자만 바꾼 게 아니었다. 향, 질감, 보디감, 숙성 밸런스까지 전면적으로 손봤다. ‘기초 체력’을 새로 다진 셈이다.
글렌모렌지 10년은 누구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위스키였다. 부드럽고 산뜻하고 가벼웠다. 오렌지 껍질, 바닐라, 꽃향기처럼 익숙한 풍미에 가격도 부담 없었다. 대형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어 접근성도 좋았다. 위스키 입문자에게 딱 맞는 술. 그래서 바꾸기 어려운 술이기도 했다. 소비자와 처음 만나는 접점이자 브랜드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글렌모렌지 12년은 확실히 달라졌다. 과실 향은 여전히 상큼하지만, 입안에 가볍게만 머물지 않는다. 40도라는 비교적 낮은 도수지만, 맛은 생각보다 입체적이다. 알코올도 날카롭게 튀지 않고, 두 번째 잔도 물린다는 생각이 안 든다. 기본 골격은 비슷하지만 완성도가 한층 높아졌다. 다만 46도였더라면 구조감이 더 단단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다소 묽은 감이 있다.
가격은 거의 그대로다. 숙성 연수가 늘었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부담은 달라지지 않았다. 보통 이럴 경우 가격이 오른다. 리뉴얼이라는 말 자체가 인상 요인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더 좋아졌는데 가격은 그대로라니,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리뉴얼이다.
위스키 애호가들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구조감이 좋아졌다는 평가가 많고, “기대 이상”이라는 호응도 적잖다. 물론 “난 그래도 10년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품질만 놓고 보면 대부분이 상향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좋은 리뉴얼은 ‘달라졌네’가 아니라, ‘더 좋아졌네’라야 한다.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게, 기준을 흐리지 않으면서 새로움을 더하는 것. 글렌모렌지는 이번 리뉴얼로 그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결국 정공법이 가장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