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놈들이 돌아왔다. 지긋지긋한 흡혈귀 모기의 귀환. 일본뇌염을 옮기는 모기는 지난해보다 21일 빠르게 발견됐고, 감시 체계에 잡힌 모기 수(5월 11~24일)는 전년 동기 대비 20% 늘었다. 최근 기온이 오르고 비가 많이 내리면서 지난해보다 ‘빠르고 독하게’ 모기가 돌아왔다.
게다가 해를 바뀔수록 녀석들의 능력치도 경신되는 느낌이다. ‘스텔스에 회피 기동까지 탑재했다’ ‘가을 모기를 넘어 겨울까지 버텨낸다’ ‘은신술로 교란한다’.... 인터넷엔 이렇게 피와 살을 바쳐 겪은 관찰기가 차고 넘친다.
모기에 대한 인류의 증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 터. 그런데 화형, 참수, 질식사, 식충식물 동원 같은 온갖 희한한 방식으로 이 종족을 처형하는 방법이 공유된다. 큰 격려와 지지까지 받고 있다.
모기 처형식에 초대합니다
살에 붙은 모기를 작은 플라스틱 통을 이용해 생포한다. 금방 피 냄새를 맡아서인지 펄떡펄떡 생명력이 넘치는 녀석을 잠시 뚜껑을 덮어 가둔다. 이 통에 1~2㎜ 남짓한 작은 구멍을 뚫고 일회용 라이터에서 부싯돌 역할을 하는 부품을 빼낸다. 라이터의 가스 사출구를 구멍에 끼운 뒤 점화 스위치를 꾸욱 누른다. 1초, 2초, 3초.... 쌩쌩하던 모기가 비척거리기 시작한다. 출구를 찾는 듯 더듬더듬 통 안을 헤맨다. 다리 6개를 파르르 떨다가 발작하듯 몇 차례 격한 날갯짓. 투둥퉁퉁퉁 여기저기 부딪친다. 마침내 배를 까뒤집은 채 바닥에 털썩. 다리와 날개의 리드미컬한 경련. 푸드득 푸득 푸드득. “살려주세요!!!” 앞다리를 길게 뻗으며 최후의 단말마를 외치는 듯하다. 그러다 그만 굳어버렸다. 가스 투입 후 29초쯤. 사체를 거두어 스카치테이프로 노트에 붙인 뒤 메모를 남긴다. ‘2025.5.9.’
이 ‘데스노트’에는 전날에도 한 마리가 모셔졌다. 자세히 보니 5월 3일에는 무려 8마리. 뒤편의 선반에는 생포된 채 ‘가스실의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모기가 열 마리쯤 있다. 모두 각자의 플라스틱 독방 감옥에 갇힌 채.
구경꾼(인간)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이 동영상 조회 수는 600만, 하트는 8만개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상이네요’, ‘나치 화학무기 개발자가 환생했다’, ‘통쾌합니다 절 받으십시오’ 유의 댓글들이 이어졌다. 더러 ‘모기도 생명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너무 잔인하다’ 같은 지적도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사실 나도 해봤다’ 유의 간증이 꽤 있다. ‘모기 많은 집에선 잠도 못 자니 사람이 미치더라. 파리채가 아닌 손으로 잡아 흔들어 기절시키고 유리병에 한 마리씩 모아 넣었는데 절반 이상 채우면서 충일감을 느꼈다’ ‘필리핀에 살 때 벼룩을 테이프로 잡아 일기장에 붙여 놓은 적 있다’ ‘나는 불개미를 테이프에 붙여 전시했지’ 등등.
모기 처형식을 인증하고 자랑하는 모임도 꽤 활성화돼 있었다. 각종 처형 사진·동영상이 공유되고, 잔인할수록 또 기발할수록 인정을 받았다. 불에 태우거나 얼음에 얼리거나, 주사기를 꽂아 도로 내 피를 ‘환불’받거나, 단두대를 만들어 몸을 베거나, 개미나 식충식물의 먹이감으로 던져주는 식이다.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과학자들은 호박(琥珀)에 갇혀 화석이 된 모기를 이용해 공룡을 복원시키는데, 송진으로 ‘인조 호박’을 만들어 모기를 가둔 사례도 있었다.
이쯤 되면 광기이거나 오버액션 같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적어도 열광하는 사람이 많은 건 그만큼 공감대가 있다는 것. 이 ‘모기 처형식’을 주기적으로 찾아본다는 직장인 김모(38)씨는 “하등 이로울 게 없는 하찮은 생명체를 다소 과하게 응징하는 게 웃기면서도 만족감을 준다”며 “일상 속 짜증 나는 상황에 대한 ‘대리 복수전’ 같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유모(41)씨는 모기 때문에 식충식물을 키웠다. 모기 퇴치향, 기피제에 포충기까지 쓰다가 ‘파리지옥’을 들이게 된 것. 유씨는 “파리채로 때려잡는 것보다 파리지옥이 앙~ 하고 입을 다물어 모기를 섭취하는 걸 보면 더 통쾌했다”며 “하지만 스스로 사냥하는 능력이 없고 키우기 쉬운 식물은 아니라 모기 박멸용으로 효용은 크지 않았다”고 했다.
모기의 스텔스·회피 기동 진짜?
모기 처형식이 날로 기발하고 잔혹해지는 건, 모기의 진화가 자초한 일이라는 얘기도 있다. 적과의 동침이랄까. 적이 강해질수록 내 투지도 올라간다.
일반인들이 느끼는 ‘인상 평가’에서 나오는 모기 진화론의 현장은 이런 것들이다. 렘수면에 들기 직전 귓전을 때리는 ‘앵앵’ 소리, 몇 차례 팔을 휘적여 보지만 결국 불을 켜고 전투 태세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요즘 모기들은 조용히 공격하는 무소음·스텔스 기능을 탑재한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한 방향과 속도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회피 기동까지 갖춰 원샷 원킬이 어려워졌다. 눈에 띄기 쉬운 흰 벽이 아니라 얼룩덜룩한 옷가지 틈새로 숨어드는 은폐술도 습득한 것 같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모기 전문가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부 석좌교수에 따르면 이런 가설은 대부분 허구다. 우선 모기의 ‘앵앵’ 소리는 날개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감출 수가 없다고. 모기는 우리가 숨 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쫓아 얼굴 주위로 날아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용한 수면 시간에야 비로소 ‘앵앵’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생활 소음이 많은 낮이나 야외에서는 못 듣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 또 모기는 원래 전후좌우로 날고, 모기의 형태나 크기는 중생대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이 교수는 “생활 환경이 나아지면서 모기에 노출되는 경우가 줄어들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이 높아져 이러저러한 분석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모기가 살충제에 내성이 생겨 독해졌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확인됐다. 특정 화학물질에 강한 유전자를 가진 모기들이 살아남고, 몇 세대를 반복하면 강한 살충제에도 잘 죽지 않는 저항성이 생긴다. 영국 킬(Keele)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암컷 모기가 살충제에 노출됐다 살아남은 뒤에는 이를 피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험 물질에 대한 학습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또 온난화가 모기의 전성시대를 불러왔다는 데 일정 부분 동의한다. 모기는 보통 온도가 높아지고 강수가 잦으면 많이 나타나는데, 온난화 영향으로 모기의 활동 기간이 길어진 건 분명하다. 모기는 섭씨 9도 이상이 돼야 날고, 13도 이상에서 흡혈한다. 25~27도에선 활동량이 가장 왕성하다. 4~5월부터 여름이 시작되고, 11월까지도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1년의 절반가량은 모기 서식이 가능해진 셈이다. CNN이 “기후변화의 승자는 결국 모기”라고 했을 정도다.
역대 일본뇌염주의보 발령 시기를 보면, 1970년부터 1982년까지는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 사이에, 1983년부터 2004년까지는 5월 초부터 6월초 사이였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는 매년 4월 중에 주의보가 발령되더니, 2020년 들어서는 대개 3월 중으로 당겨졌다. 올해도 3월 27일 자로 전국 일본뇌염주의보가 발령됐다. 50년 만에 석 달 가까이 ‘공습’이 빨라진 것이다.
백해무익이라면 멸종시키면 되지 않나. ‘할 수 있지만 안 하고 있다’는 세간의 의심도 크다. 하지만 이 역시 불가능하다고. 세계보건기구(WHO)는 모기에 ‘박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대신 ‘통제한다(control)’고 표현한다. 물이 없는 사막을 제외하고는 모기가 살지 않는 곳이 없다. 북극 가까이에서도 모기는 기온이 오르는 여름에 순록의 피를 빨며 종족 번식을 이어간다.
모기와의 전쟁도 진화 중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모기 처형식은 아니더라도 방역 작전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이동규 교수는 “유충 방제가 핵심”이라며 “도시에서도 모기 발생 민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서울시는 작년보다 한 달 빠르게 올해는 3월부터 모기 채집을 시작했고, 지난달부터 곳곳에서 모기 소탕 작전을 벌이고 있다.
강남구는 지난해 서울 25구 중 처음으로 드론 방역을 진행했는데, 올해는 4월 초부터 가동 중이다. 사람이 진입하기 어려운 하천변이나 공원 경사면, 재개발·재건축 현장 등에 효과적이라는 분석. 강남구보건소 관계자는 “드론 방역을 한 곳과 안 한 곳은 모기 개체 수가 30% 정도 차이를 보였다”고 했다. 북한과 가까운 인천 강화군 등도 말라리아 확산 방지를 위해 드론을 활용한 방역기동반을 편성했다.
서울 용산구는 모기가 많은 주택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방역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서울 중구는 모기 전용 ‘방역 소통폰’을 운영하며 주민이 문자로 ‘모기 민원’을 보내면 찾아가는 방역 소독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모기와 전쟁은 이제 시작이고 올해는 더 치열할 전망이다. 기상청은 6월은 평년보다 기온이 높고 강수량도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여름 수준 더위가 11월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1~2일 이미 서울시 모기 예보제 기준 최고 수준인 4단계(불쾌)를 기록했다. 장엄한 모기 처형식이 또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