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한상엽

얼마 전, 신간 출간을 기념해 동네 서점 ‘일일 서점원’이 되었다. 일일 서점원이란 서울 신촌에 있는 한 동네 서점이 만든 개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작가가 하루 동안 서점에 머물며 독자와 만나 대화하고, 책에 사인하거나 좋은 책을 추천하는 행사다. 설레는 마음으로 서점에 도착해, 서점원용 앞치마를 두른 채 손님을 맞았다.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내 책에 사인하며 좋은 책을 추천하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행복했다.

기분 좋은 피로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낯선 생각이 들었다. 잠깐이어서 좋았던 것 아닐까. 만약 서점이 내 일터라면 과연 오늘처럼 내내 웃을 수 있었을까.

매일 서점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내가 머물던 짧은 시간 외에 벌어지는 일을 끊임없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좋은 손님만 오지 않을 테고, 책이 팔리는 날보다 안 팔리는 날이 더 많을 것이고, 무거운 책 짐을 이고 지고 나르느라 근육통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기껏 사들여 정성껏 책장에 꽂아뒀는데도 끝내 안 팔리는 책들은 또 어쩌고. 겉으로는 평화롭게만 보이는 장소일지라도 그 안에는 일과 산업에 대한 고민과 불안이 가득할 것이다. 누군가의 직장에서 단물만 쏙 빼 먹고 가는 사람이 어찌 그 일의 기쁨과 슬픔을 헤아릴 수 있을까 싶어 조금 멋쩍어졌다. 나는 일일 서점원이 아닌, 일일 서점원 체험 놀이(!)를 하고 온 것이리라.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당사자에게는 속상해 못살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우스운 일이 될 때가 많다. 직업 세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그만두지 못해 꾸역꾸역 하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 모든 직업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 하고 있지만 자신 없는 일, 셋 중 하나가 아닐까. 내가 하는 글쓰기는 어디에 해당할까. 아무래도 셋째 같다. 계속하고 싶지만 계속할 자신 없는 일.

나는 3년 전부터 1인 출판사를 만들어, 쓴 글을 직접 책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의 업무 능력에 매일 질리고 있다. 얼마 전, 20년 넘게 출판업에 종사해 온 선배를 만나 답답한 속을 털어놓았다. “왜 책은 만들어도 만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을까요? 왜 매번 어려울까요?” 그 말에 선배는 대꾸했다. “나도 매번 모르겠어. 늘 너무 어려워. 매일 헤매고, 실수해.” 선배에게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조금만 버티면 너도 익숙해질 거야. 나도 처음엔 그랬어’ 혹은 ‘몇 년 지나면 나처럼 눈 감고도 하게 돼’처럼 초연한 고수의 말을 기대했는데. 20 년 차 선배 역시 여전히 헤매고 있다니, 그렇다면 이 일에는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선배와 나눈 말을 곱씹었다. 한없이 아득하게 느껴지던 대화가 어느 순간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렇지. 세상 모든 일은 익숙해진 것처럼 보일 뿐, 잘하는 것처럼 보일 뿐,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일 뿐, 당사자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걸 깨닫자 글 쓰는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계속할 자신 없는 내 마음이 조금 이해되었다. 나는 20년 가까이 해 온 이 일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이다. 더 잘하고 싶고, 더 오래 하고 싶어서. 20년 넘게 책을 만들면서도 매번 헤맨다는 선배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자신 있다는 확신보다 잘 모르겠다는 의문이 어쩌면 더 큰 욕심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잘 모르니까 더 알고 싶다는 마음, 아직 자신 없으니까 더 애써보겠다는 마음이 열정에 더 가깝지 않을는지.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알면서도 노력해 보겠다는 마음은 얼마나 미련한가. 또 얼마나 순수한가. 어엿한 프로임에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던 선배의 말을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에게 선배는 모든 걸 갖춘 어른이었는데, 그날 그에게서 열정 가득한 젊음이 보였다. 모든 걸 갖춘 것 같은 사람이 열정까지 가졌다니, 가질 수 있는 건 다 가졌다는 얘긴가. 하긴. 선배는 어른이지만 어른 행세를 하지 않는 사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다. 뭐든 아는 것처럼 구는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부른다. 꼰대는 아무도 안 좋아하고. (죄송. 저 방금 되게 꼰대 같았죠!)

잘하니까 자신 있다는 믿음 없이도 일을 계속해나가는 태도는 힘이 세다. 확신보다 의문이 사람을 한발 더 나아가게 한다. 일단은 버티고, 계속해 나가고, 가끔은 허둥대다 넘어지고. 그러다 다시 한번 일어서고. 세상의 모든 직업인이 비슷한 모양으로 살아갈 것이다. 단지 하는 일이 다를 뿐. 모두가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헤매고 있다.

여전히 모르겠다는 의문을 품은 채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