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천재는 혜성처럼 경이로운 존재다. 과학과 수학, 스포츠와 바둑 등에서도 놀라운 재능을 가진 이들이 나오지만 천재는 주로 예술 분야에 출현하는 것 같다. 예술 영재의 특징도 음악·미술·문학이 조금씩 다르다.

음악이야말로 천재가 등장하는 대표 영역이다. 세계적 음악 경연들이 보여주듯 타고난 재능이 없는 아이를 훈련만으로 뛰어난 음악가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차르트도 엄격한 조기 교육을 받았지만 천상의 아름다움을 들려주는 그의 음악 앞에서 우린 천재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다. 마음을 울리는 가수들의 명곡을 만날 때마다 음치를 겨우 면한 문외한으로서 감탄하게 된다.

사라 장(장영주)의 코흘리개 소녀 시절 바이올린 연주를 처음 들은 뉴욕의 콧대 높은 지휘자들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날 정도로’ 놀란다. 기괴하고 환상적인 시로 ‘시귀(詩鬼)’로 불린 당나라 시인 이하는 스물일곱 살에 죽었으나 이미 일곱 살에 명성이 자자했다. 문학 천재 이상은 20대에 역작을 남기고 요절했다. 하늘이 내린 재능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하는 실제 사례들이다.

하지만 철학은 예술과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조숙한 신동이 걸작을 남긴 경우를 찾기 어렵다. 현대 철학의 기린아 비트겐슈타인은 30대 초반에야 대표작을 내놓는다. 아이큐가 200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는 존 스튜어트 밀은 세 살 때부터 희랍어와 라틴어를 배웠고 10대 초반에 박사 수준 영재 교육을 받았음에도 책을 펴낸 건 30대 후반이었다.

철학 천재로 거론되는 예외적 인물이 후한 삼국시대 왕필이다. ‘노자주(老子注)’와 ‘주역주(周易注)’를 펴냈을 때 그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이었다. 왕필의 노자 도덕경 주해는 1000종이 넘는 도덕경 주석 중 압권이다. 대학생 나이 청년이 동아시아 형이상학의 역작을 남긴 건 놀라운 일이지만 왕필의 성취도 사실은 집안 가학(家學)의 산물에 가깝다.

청년 왕필이 주석서에 그친 것과는 달리 도덕경 원본은 성숙한 노년의 철학자가 집필했다. 오래 살아 산전수전 다 겪고 삶과 우주를 깊고 넓게 성찰한 철학자가 아니었다면 도덕경은 결코 나올 수 없었다. 세계 철학사 고전들은 거의 모두 원숙한 노년의 산물이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에 직접 가보면 화가였던 피카소의 부친이 어린 아들의 재능에 놀라 미술을 포기한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10대 초반 피카소는 회화 기법에서 스페인 미술계를 휩쓸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피카소를 현대 미술 거장으로 만든 건 반짝이는 소년 시절의 재주가 아니라 평생 지속한 불굴의 노력이었다. 그는 아흔 넘어서도 끊임없는 변신으로 창작 실험을 계속한 ‘노력하는 천재’였다.

우린 천재들에게 감탄하면서도 그런 성취를 가능케 한 땀방울과 시간의 축적은 경시한다. 하나의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작가는 무수한 불면의 밤을 지새운다. 한 작가의 소박한 평작(平作)조차도 수많은 습작과 졸작의 무덤 위에 힘겹게 피어난 한 송이 꽃이다. 모차르트나 피카소도 피할 수 없었던 창작의 고통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예술과 철학도 세월과 함께 숙성한다. 한순간 천재적 영감으로 걸작이 태어난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 거듭된 실패를 끈질긴 창작 노동으로 돌파하는 것이 예술과 철학의 길이다. 속전속결 속성 코스는 학문과 예술의 본뜻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사엔 공짜가 없다. 모든 명작은 힘겨운 시행착오로 얼룩져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시간이라는 대상을 조각해 삶이라는 작품을 만들어가는 창작자라고 할 수 있다. 땀방울 흘리며 여물어 가는 과정이야말로 삶과 철학의 공통점이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은 시간의 담금질을 견디며 천천히 정제되어 간다. 삶과 철학은 하늘이 내린 천재를 허락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