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도시, 프랑스 파리. 최근 파리에 다녀온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파리가 뭔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미술관 때문이다. 예를 들어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이 그 재력을 발판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마크 로스코 회고전(지난해까지 열렸다)을 기획한다고 치자. 그럼 경쟁사들이 잇따라 더 대단한 전시로 이목을 끌기 위해 컬렉션을 경쟁적으로 끌어모은다. 명품과 미술은 ‘공감각적 경험’이라는 차원에서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이런 분위기 덕분에 파리는 실험적 예술의 하이엔드 도시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생로랑·구찌·보테가 베네타·발렌시아가 등 유명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Kering) 그룹, 그리고 창립자 프랑수아 피노(89)가 있다. 그의 선구안은 미술계에서 언제나 감탄의 대상. 그가 어떤 작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지에 따라 현대미술의 풍향계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2021년에는 파리 중심부의 18세기 곡물 저장소 건물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는데, 지난해 여기서 ‘보따리 작가’로 불리는 한국 설치미술가 김수자의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명품 제국의 수장, 프랑수아 피노 얘기를 해보려 한다.

◇목재상 아들, 거상이 되다

프랑수아 피노가 파리 중심가에 조성한 현대미술관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지난해 열린 김수자 개인전 풍경. /피노 컬렉션

1936년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 시골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가족이 운영하는 목재 사업을 도우며 성장했다고 전해진다. 생마르탱 대학을 중퇴하고, 스무 살 되던 해 군대에 입대했다. 당시 프랑스는 알제리전쟁 중이었다. 제대 후 가업을 계승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고 1963년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목재 거래 회사를 세워 본격 사업가의 길을 걷는다. 파산 위기에 처한 여러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규모를 키워나갔다. 마침내 그의 회사는 1988년 파리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프랭탕(Printemps) 백화점도 손아귀에 넣었다. 1993년 피노는 회사 이름을 PPR(Pinault-Printemps-Redoute)로 바꾸고 유력 기업가로 성장했다.

피노의 인수·합병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명품 브랜드 구찌(Gucci)와 관련된 것이다. 구찌 그룹의 주식 42%를 매입해 자사 브랜드로 편입했다. 이후 생로랑·부쉐론·알렉산더 맥퀸 등의 여러 명품 업체를 차례차례 사 모았다. 마침내 2013년 케링(Kering)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명품 전문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2024년 기준 시가총액 456억유로(약 72조원)의 명품 제국. 케링 그룹에는 세계적 경매 회사 크리스티(Christie’s)도 포함돼 있다. 피노는 현재 회사 경영은 아들에게 맡기고, 자신의 미술관 운영과 미술 작품 컬렉션에 집중하고 있다. 안목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50년 세월, 1만점의 컬렉션

1972년 ‘피노 컬렉션’의 시작을 알린 폴 세뤼시에의 그림 ‘브르타뉴의 촌부’. /피노 컬렉션

사실 피노는 서른 살 때까지 미술관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개인 미술관을 세우고, 세계적 경매 회사를 보유하고, 피카소·몬드리안·앤디 워홀·제프 쿤스 등의 걸작 1만점을 보유한 메가 컬렉터가 됐을까? 작가 레지던시를 세우고, 미술상(賞)까지 제정해 현대미술의 최전선을 격려하는 삶을 살게 됐을까? 피노는 한 인터뷰에서 “오늘 우리의 활동이 역사에 예술을 위한 진정한 노력으로 기록됐으면 좋겠다”고 답한 적이 있다. 최측근 인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앙드레 말로의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빠른 통로”라는 말을 격언처럼 받들고 있다. 지금도 매년 십수 곳의 작가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신작을 발굴하기 위해 전시장에 부지런히 다니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 ‘피노 컬렉션’은 패션을 넘어 미술계의 강력한 브랜드가 됐다. 그가 가장 처음 산 그림은 후기 인상파 프랑스 화가 폴 세뤼시에(1864~1927)가 그린 ‘브르타뉴의 촌부’. 자신의 할머니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1972년 구매한 이 그림은 이후 컬렉션의 ‘부적’이 됐다고. 그러나 그는 금세 알아차렸다. 고전미술이 즐비한 파리에서 그런 스타일의 컬렉션으로는 개성도 경쟁력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을.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본능은 ‘현대미술’을 가리키고 있었고, 안전 자산 대신 모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브루스 나우만·도널드 저드·구사마 야요이·이우환 등 당대를 견인하는 작가의 작품을 사 모았다. 몬드리안의 작품 ‘Tableau Losangique II’를 880만달러(약 123억원)라는 거액에 낙찰받는 등의 과감한 선택도 서슴지 않았다. 1998년에는 앞서 서술했듯, 아예 경매 회사를 인수했다. 미술 시장의 가장 빠르고 정확한 데이터를 가장 가까이서 살필 수 있게 된 것이다.

◇세 개의 미술관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조각 ‘잘린 메두사의 머리’. 2017년 팔라초 그라시와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개최된 개인전에서 선보였다. /피노 컬렉션

컬렉션이 커질수록, 미술관이 간절해졌다. 2005년 피노는 ‘비엔날레의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옛 궁전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i)를 인수한 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미술관으로 개조해달라”고 부탁했다. 2009년에는 근방에 30년간 방치돼 있던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까지 구입해 역시 안도 다다오를 통해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공간 자체가 주는 경외감에 비범한 작품이 어울리자 사람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2017년 두 미술관에서 동시 개최된 영국 설치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개인전 ‘믿을 수 없는 호(號)에서 인양된 보물들’은 지금까지 회자되는 빅 이벤트. 같은 시기 열린 세계 최대 미술 축제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묻혔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피노’의 위상이 급등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정작 모국에서는 컬렉션을 공개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프랑스의 핵심 지역에 미술관을 세우려는 갈망은 깊어졌다. 골똘히 장소를 살피던 그는 ‘부르스 드 코메르스’를 알게 되고, 이 역사적인 건축물을 공략하기로 결심한다. 루브르 박물관 근처 파리의 심장부에 남아있는 옛 곡물 창고. 당국과의 끝없는 협상이라는 지난한 과정이 예정돼 있었지만, 끈질기고 저돌적인 사업가는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파리시가 건물을 사들이고, 피노가 세입자로 매년 1500만유로(약 220억원)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50년간 사용할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미술관 변신 프로젝트는 안도 다다오가 주도했고, 프랑스 출신 젊은 건축가 그룹 NeM이 참여했으며, 건축 유산 보존 전문가 피에르 앙투안 가티에가 힘을 합쳤다.

영국 설치미술가 라이언 갠더의 쥐 연작 ‘The End’. /피노 컬렉션·송은

“오늘날 건축가들이 오래된 건물을 차용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삶이 계속되고 모든 것이 진화함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대 로마의 판테온을 떠올리게 하는 웅장한 스케일, 피노는 “건물 본연의 광채를 되살리되 관람객이 최대한의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총면적 3100평에 크고 작은 전시장 10개를 갖추고 있다. 현대미술만을 위한 공간임을 천명하는 이곳의 진수는 뭐니 뭐니 해도 상설 피노 컬렉션. 시기별 현대 거장의 전시가 열리지만, 언제나 피노 컬렉션과의 상관관계를 해석하는 노력이 시도되기에 그 관계성을 살피는 것도 묘미다.

◇예술에 마음 열기, 최고의 치유

패션계에서 미술계로 확고한 영역 확장에 성공한 프랑수아 피노. /ⓒMatteo de Fina

누구나 인정하는 고전적 미술이 아닌 헛된 시도와 투자 실패의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현대미술에 빠져들었다. 사업가 기질 때문일까? 도전적인 삶을 살아왔고, 그런 자신의 성향을 반영하듯 확고한 컬렉션을 형성해 왔다. 최근 한국인 미디어 아티스트 염지혜, 한국계 미국인 설치미술가 아니카 이의 작품이 피노 컬렉션에 포함됐다. 기계와 생물,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관한 실험적 작업을 거침없이 전개하는 신세대 작품까지 그의 수집망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예술이 스스로 제기하는 질문과 우리가 던지는 질문을 대중과 공유하는 것, 이것이 제가 시작한 문화 프로젝트의 본질입니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 개관을 맞아 진행된 인터뷰에서 피노는 다소 고백적인 어투로 예술품을 마주하는 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가끔 아주 예외적인 걸작을 만나게 됩니다. 숨을 멎게 하고 말을 걸어오죠. 격한 감동의 시간입니다. 우리를 사로잡고, 말을 걸고, 충격을 줍니다. 그러면 작품에 걸려 든 겁니다. ‘이 작품이 다른 곳에 가게 할 순 없지’ 하는 생각이 들고, 컬렉션을 통해 제가 그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기를 바라게 됩니다… 현대미술 중에는 전위적인 작품이 적지 않습니다. 익숙지 않다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하려 노력하고, 마음을 열어보길 바랍니다. 세상과 삶을 달리 보게 될 것입니다. 이야말로 최고의 치유이며, 삶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