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지드래곤이 지난 10~11일 일본 도쿄돔 공연을 전석 매진(약 8만명)시키며 월드 투어를 시작했다. 서울에는 번듯한 아레나가 없다. /유튜브 캡처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 콘텐츠 수출국인 대한민국의 수도다. K팝은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서울은 BTS, 블랙핑크, 스트레이키즈, 뉴진스 등 이름만 들어도 세계 팬들이 환호하는 아티스트들을 배출한 도시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위한 공연장은 서울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전용 아레나’가 없다. 창동에 2027년 아레나가 생길 예정이나, 복합 문화 클러스터 차원의 아레나는 아니다.

서울에서 1만명을 수용하는 실내 공연장은 잠실실내체육관, KSPO 돔(구 올림픽 체조경기장) 정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스포츠 행사나 행정적 사용에 우선권이 있어 공연 기획에 제약이 크다. 결국 K팝 아티스트들은 일본의 돔 투어나 미국 스타디움 투어부터 기획하고, 서울 일정은 조정하거나 아예 건너뛰기도 한다. 문화의 수도에 무대가 없으니 문화 주권의 결핍이다. K컬처를 경험하고 싶은 세계 팬들에게 서울은 ‘목적지’가 아닌 ‘출발지’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지난해 2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에라스 투어' 공연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스위프트는 이날 일본을 시작으로 호주, 싱가포르 등을 순회공연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공연이 산업이고 경제다

2024년 테일러 스위프트의 글로벌 투어는 ‘공연(Live Concert Industry)이 경제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싱가포르에서는 그녀의 6회 공연으로 3억달러의 경제 효과가 창출됐고, 관광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상승했다. 이 도시국가는 스위프트의 공연을 보러 온 외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숙박·교통·외식·쇼핑 등에 쓴 지출이 싱가포르 전체를 움직였다.

앨런 크루거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저술한 ‘Rockonomics’에 따르면, 음악 산업의 중심은 공연 수익으로 이동했다. 디지털 기술은 음악을 무한 복제 가능한 ‘공공재’로 만들었고, 음원은 더 이상 희소성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공연은 시공간에 제약이 있어 ‘유일무이한 경험’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도 음원 수입보다 공연을 통한 수입이 더 많을 정도다.

이러한 변화는 “음악은 앞으로 전기나 수돗물처럼 된다. 공연만이 아티스트가 수익을 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데이비드 보위)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스트리밍 시대가 되자 상위 1%의 아티스트가 전체 재생 수의 90%를 차지하고, 상위 5%가 공연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수퍼스타 경제학’이 현실화됐다. 서울의 K팝 아레나는 이 구조에서 더 많은 아티스트에게 ‘등장할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자 K팝 산업의 저변 확대 전략이다.

지난해 데뷔 후 첫 도쿄돔 입성 공연으로 이틀간 9만여 관객을 모은 걸그룹 뉴진스. 왼쪽부터 멤버 혜인(16), 다니엘(19), 해린(18), 하니(20), 민지(20). /ADOR

◇“재주는 서울이, 돈은 도쿄가 가져가”

서울이 아레나를 만든다면, 공연장 하나를 짓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일본 도쿄는 공연 산업 전체를 도시 구조 속에 통합한 대표적 사례다. 도쿄는 대형 스타디움과 중형 전용 공연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다층적 공연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예컨대 도쿄돔(5만5000명), 닛산 스타디움(7만2000명), 신국립경기장(6만7000명)은 K팝 스타들이 관객 수만 명을 동원할 수 있는 스타디움 공연장이다. 2024년 브루노 마스와 테일러 스위프트가 이곳에서 공연했고, K팝 아이돌 그룹도 점차 이 무대에 진입하고 있다. 도쿄는 이런 대형 공간을 기반으로 ‘수퍼스타 투어’를 흡수하는 산업적 조건을 확보하고 있다.

그 밑을 받치는 중형 공연장들도 체계적으로 분포돼 있다. 사이타마 수퍼 아레나(2만~3만명), 요코하마 아레나(1만7000명), K 아레나 요코하마(2만명), 아리아케 아레나(1만5000명), 도쿄 가든 시어터(8000명) 등은 2010년 이후 리노베이션되거나 신축된 고품질 시설로, K팝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활발하다.

이런 공연장들은 음향 설비, 접근성, 팬 전용 부스, MD 판매 공간, 주변 상업 시설과의 연계성 등 공연 자체를 하나의 산업화된 패키지로 수용한다. 아티스트들에겐 최적의 퍼포먼스 조건을, 팬들에겐 머무를 이유와 소비할 공간을 제공한다. 공연 하나가 도시 전체의 숙박·교통·외식·쇼핑 매출을 견인하는 셈이다. K팝 팬들은 K팝 공연을 보러 도쿄로 간다. “재주는 서울이 부리고, 돈은 도쿄가 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

◇서울형 복합 문화 클러스터 ‘K팝 시티’

도쿄돔은 거대한 ‘도쿄돔 시티 개발 프로젝트’의 한 부분일 뿐이다. 도쿄돔 앞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대형 쇼핑몰과 테마파크를 지나야 한다. 도쿄돔 뒤에는 거대한 호텔이 있고, 바로 옆에는 음악 공연이 가능한 ‘도쿄돔 시티홀‘과 중소 공연장들이 자리한다. 하나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클러스터 안에 돔구장, 다양한 규모의 공연장들, 쇼핑·숙박·테마파크가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미국 LA 레이커스 홈구장인 LA 다운타운의 크립토닷컴 아레나(구 스테이플스 센터)도 ‘도심 속 엔터테인먼트 클러스터’의 모범 사례다.

팬들은 음악만 소비하지 않는다. 공연장에서의 경험, 굿즈를 구매하는 즐거움,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설렘을 찾는다. K팝 또한 단순한 콘텐츠가 아닌 ‘라이프스타일’이다. 서울이 그 중심이 되려면 ‘번듯한 무대’를 갖춰야 한다.

필자가 제안하는 ‘K팝 시티’에서 아레나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주변과 연계돼 팬덤이 머무를 장소이고, 도시가 산업을 재편할 기회이며, 창작자가 꿈을 펼치는 플랫폼이다. 그리고 반드시 서울 요지(인천공항에서 대중교통으로 연결)에 입지해야 하며, 그 최적의 장소는 용산역 앞 용산정비창 부지(용산국제업무지구)다. 용산 부지는 개발이 수십 년간 방치돼, 이 지역의 미래 비전이 무엇인지 서울 시민은 알지 못한다. 서울 중심부에 마지막 남은 거대 부지다.

‘K팝 시티’는 아레나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창발하며, 도시 산업을 재편하고 도시 전체 브랜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서울은 단순히 콘텐츠를 ‘수출’하는 도시를 넘어 세계 팬들이 ‘찾아와 머무르고, 소비하고, 창작하는’ 글로벌 문화 수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