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나는 신입 회원이 아닌 기존 회원입니다. 나보다 늦게 온 회원들에겐 처음 내가 그랬듯이 나 또한 그들의 관찰 대상이 된, 실버타운의 주역으로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은 운동 아니면 게임으로 진행됩니다. 젊었을 때는 게임이나 퀴즈에 도전하기를 꺼렸습니다. 지는 게 겁이 나서였을 거예요. 심심해서 ‘브레인 플러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보았습니다. 오직 뇌에 자극을 주기 위한 게임입니다. 앞에 놓인 모니터로 단어 거꾸로 외우기, 뺄셈·덧셈 속도 측정, 그림으로 길 찾기…. 결과는 각자의 모니터에 점수로 뜹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신입 회원 권사님(여기는 권사님이 많습니다)이 내 점수를 곁눈질로 보는 거예요. 살짝 불쾌했습니다. 거기다 한마디 덧붙이기를 “그 연세에 어르신도 잘하셨네요.” 지도 강사까지 거듭니다. “많이 맞히셨네요.” 참가자 중 내가 최고령이라 주목과 배려의 대상임을 알았습니다. 80대 초반의 젊은 권사님은 그 뒤로도 내 점수를 자신의 점수와 비교하며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띱니다.
나는 우산 없이 소나기 맞을 때의 쾌감을 압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직전, 비가 쏟아질까 봐 초조한 순간이 지나고, 막상 좍좍 비를 맞아 온몸이 흠뻑 젖었을 때의 안도감을 잊지 못합니다. 절대평가임에도 권사님의 승부욕과 나를 통한 비교는 계속됩니다. 게임에는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하니까요. 나는 일부러 져주는 게 아닙니다. 단순하면서도 녹록지 않은 게임에 온 신경을 기울인 결과를 점수로 확인하지 않을 뿐, 나는 나의 노력과 능력을 믿습니다.
권사님의 의기양양한 승리감과 내가 처음 맛보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형 뽑기 게임의 스릴. 30분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지고는 못 사는 사회의 주역으로 살아온 K노인의 에너지가 여전히 감지되는 이 시간, 권사님과 나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게임의 굿 파트너.
※필자(가명)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은 한 실버타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